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내 손길이 묻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길이 진득하게 묻은 것. 내 마음이 아니라 다른 마음. 오로지 나를 떠올리며 적혀진 단어들이 가득한 편지가 그 중 하나다. 요즘처럼 앱을 켜서 엄지손가락 분주하게 키패드 두드리고 전송을 누르면 오차 없이 바로 그 시간에 도착하는 연락망이 하나도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아진 세상에서, 시차를 가지고 전달되는 마음이라니. 그 시차를 지나고 보내지는 마음은 어떤 오해와 미움 없이 오히려 감동을 배로 가지고 도착한다. 그의 손에서 내 손으로. 그래서 나는 보통 편지를 줄 때는 우체국에 들리지 않고 그 사람과의 약속을 정한다. 우리 이날 만나자. 아주 평범하게 넌지시 묻는 제안의 말로. 대답은 항상 내가 먼저 그러기만을 바라왔던 사람이라 긍정뿐이다. 나는 그 대화 속에서, 내가 그날은 당신을 위한 편지를 써서 챙겨갈거라는 말을, 뱉어내고 싶어서 혼자 다리를 떤다. 한 사람만 가지게 되는 설렘이다. 편지를 건네주는 그 순간까지, 그 사람의 미소를 당연코 확신하면서 말이다.
제일 놀라운 건 그 만남에서 알 수 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몰래 편지를 꺼내 그에게 건넨다. 환해지며 올라가는 입꼬리가 좋아서, 고맙다고 연신 말하는 목소리가 어딘가 살짝 떨려오는 것 같아서 내가 더 기쁘다. 그렇게 편지를 받아 집에서 꼭 읽어 보겠다고 하는 말까지 들으면 완성인데. 마침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사실 나도 몰래 편지를 써왔다는 답장. 아니지, 답장이 아닌가. 우리는 둘 중 누가 먼저 마음을 보내고 싶었을까. 나는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속에서 열심히 감정을 저장해 보내주면 우습다는 듯 바로 다시 곱절은 큰 사랑을 보답받을 때. 내가 주고 싶은데, 받기만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편지는 초등학생부터 지금까지 즐겨 써왔다. 그러면서 터득한 나름의 구성이 있는데, 요즘은 이런 정형화된 구성을 뒷전으로 미뤘다. 대신 나를 솔직하게 까놓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을 거짓말을 하고 위선이 가득한 삶을 사니까. 내 손으로 눌러 적는 글자들은 거짓말을 하게 시키고 싶지 않아서. 이 편지를 읽을 네가 어떤 모습의 나도 받아줄 걸 아니까. 그런 사람에게 쓰는 편지는 한없이 솔직하다. 내가 편지를 받았을 때도 비슷한 것 같다. 어떤 마음을 건네받아도 그저 한없이 끌어안고 싶다. 동시에 내일의 내가 네 옆에 머무를 수 있기를. 우리의 관계가 영원은 아니겠지만 조금만 오래 지속되길. 내가 그걸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렇게 어느 정도의 서사와 신뢰를 쌓은 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받은 편지들도 내 서랍장에 몇 십 개 있다. 그건 감정보다는 어떤 시절의 조각을 담고 있다. 단지 그때의 나와 주변에 함께 했던 그 사람이 떠오르니까. 사람보다는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무엇을 좋아했고 무얼 싫어하던 어떤 아이였는지 지독하게 궁금해지면 그 시절 편지를 꺼내 본다. 얄팍한 서사에서 작성된 편지는 가볍고 즐겁다. 그 정도가 우리에게 딱 걸맞는 농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꺼내 읽다가 비로소 다른 숨이 생각에 끼어들 때가 되면 떠올리는 거다. 걔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하고. 다시 또 날아갈 아주 가벼운 상상을 한다.
뭐 이런 것으로 다짐을 하나 싶지만, 굳이 다짐을 해보자면, 나는 평생 편지를 쓸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편지를 자주 주고 받는다고 하면 요즘도? 라는 가벼운 의문이 쉽게 나오는 세상이지만. 속내보다는 돈이 조금더 가치가 있을 삶에서도 꺼내 쓸 것이다. 내가 갈고 닦아온 단어들을 소중하게 종이 위에 그 사람만을 떠올리며 중얼거릴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변하든 여전히 서랍장에 편지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처럼, 그의 서랍장에도 이 편지가 담길 수 있길 바라며. 그렇지만 버려져도 여전히 다음 편지에 옮겨가 더욱 증식해질 내 문장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