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산

by 한잔잔


목이 자주 막혔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주전자에 팔팔 끓여 김을 식히곤 부어 놓았던 보리차가 음료 칸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항상 있는 콜라나 사이다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몸에 좋지 않다는 아주 단순하고 반박할 수 없는 명료한 이유. 그렇게 몇 년을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먹으니 집에 콜라가 늘어갔다. 건강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잠시 집 밖에만 나가면 들어올 때 콜라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목이 막혀서 그렇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김이 빠진 콜라 한 통과 어젯밤 누군가 사 왔을 새것의 콜라 한 통이 자리 잡았다.


나는 탄산이 빠진 콜라를 싫어한다. 그럴 거면 왜 굳이 수많은 음료 중에서 김 빠진 콜라를 마시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는 이유는 목구멍을 넘어가며 부글부글 끓면서 터지는 탄산 때문에 아니었나. 남는 건 어딘가 개운치 못한 단 맛과 텁텁함이라고 해도 그 순간에 중독되어 다시 마시게 되니까.


막힌 목구멍에 탄산을 들이붓는다. 3초 뚫리고 다시 막힌다. 그러면 다시 마신다. 다시 또 3초 뚫리고 막힌다. 진짜 목구멍을 막고 있던 건 대체 뭐길래 이렇게 탄산을 마셔도 해결이 되지 않는 걸까. 손이 심심해진 어느 날에는 검색창에 호기심을 입력한다. 실제 소화 작용과는 무관합니다. 그렇군. 그래서 실제로는 막혀 있으니까 답답한 거네.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마셨다. 속을 뚫고 싶어서. 한 해를 넘길수록 목구멍이 좁아지는 것 같았다. 숨이 넘나드는 공간은 비좁아지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뱉고 싶어지는 말은 늘어가고 먹고 싶은 단어들도 늘어만 간다. 제대로 소화를 한 적은 까마득해지는데. 소화를 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씹고, 삼키고, 가벼운 운동까지 해주면서 속을 달래줘야 하는데. 그런 것 따위는 귀찮아서 대충 탄산 가득 밀어 넣으면서 핑계를 때운다. 나는 착각을 돈 주고 사서 3초 만끽한다. 그리고 다시 또 괴로워한다.


올바르게 소화하지 못한 건 밤새 나를 괴롭힌다. 잠에 들락 말락 내 눈이 현실과 허상을 오가며 생각이 내 방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들 때까지, 지겹도록. 콜라를 마셔야 해. 이불을 걷어차고 냉장고 문을 연다. 콜라를 들이켠다. 탄산이 필요했다.


하지만 안다.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다시 또 이부자리에 누우면 나는 또 막혀가는 숨구멍을 뚫고 싶어서 새우등을 한 채 뒤척대겠지. 속으로 원통형 관을 목구멍에 꽂아 넣는 상상을 하면서. 결국 탄산 따위는 아무것도 나를 바꾸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방울이 터지고, 또 터지고, 그게 전부라는 걸.


속이 더부룩하다. 목이 막힌다. 눈을 질끈 감는다. 나는 생각 공간 중 가장 구석으로 밀어둔 이불 끄트머리를 살짝 들춘다. 정말 보기 싫다. 정말 소화시키기 싫다. 탄산으로 대충 해결되면 좀 좋나. 막혀오는 가슴팍을 주먹을 쥔 손으로 쿵쿵. 그러면 뼈가 울리고 변하는 건 욱신거리는 진동뿐이다. 괴로워.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편백나무 냄새가 들이찬다. 맑고 오래됐고 어른 같은 향. 몸을 뒤덮는 위로는 숨 한 번 내뱉으면 사라진다. 그 정도면 더 퀭해진 눈 밑의 다크서클을 달고 다시 냉장고 앞으로 나간다. 문을 연다. 콜라를 컵에 따른다. 그걸 마신다.


통로를 타고 탄산이 부글부글 내려간다.

여전히 탄산 중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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