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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린 Apr 22. 2021

의사한테 모든 걸 맡기지는 마세요.

똑똑한 소비자 되는 법

피부과에 갔다. 베드에 누워보니 이 소리 저 소리가 다 들린다. 레이저기기 모드를 잘못 맞춰 원장에게 혼나는 간호사의 동동거리는 발소리. 얼굴에 진득한 팩을 올려놓고 전화로 한창 수다를 떠는 옆 자리 환자까지... 어제 간 내과와는 사뭇 다르다. 시럽약 같은 묘한 병원 냄새도 없고, 조명도 아늑하다. 세상에서 제일 안 떨리는 병원에서 부드러운 마취크림을 바르고서 편안히 40분 동안 휴식을 취해본다. 잠시 후 베드에 옮겨 눕는다. 오늘이 레이저 치료 마지막 회차인걸 어떻게 아시고서는 "아휴 얼굴이 많이 붉네. 열 번은 더 받으셔야겠네."라며 능숙하게 내 지갑을 여는 원장님의 친절한 목소리도 들린다.


피부과에 가면 권위와 긴장, 압박이 별로 안 느껴져 늘 편하고 좋다. 생명의 촉각을 다투는 긴박함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 역시 정신 똑띠 차려야 하는 '병원'은 맞다. 제일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베드에 한참 누워있다 보니 갑자기 예전에 들은 충격적인 병원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몇 년 전 내 친구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몸이 아파 내원하였더니 암 재발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병원 두 곳에 내원하였는데 명의 두 분이 '수술파'와 '비수술파'가 나눠져서 할아버지와 가족들 모두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단다. 


할아버지는 전직 직업 군인답게 자신의 의욕과 도전정신에 맞춰 '수술파'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지셨고, 결국 수술을 하셨으나 한 달만에 온 몸에 전이되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시 초록창에 검색해봐도 할아버지가 걸린 암은 재발되었을 때 수술을 안 하는 편이 낫다는 글들이 많았었다. 손녀딸은 평소 할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싶기도 하여 그냥 놔뒀지만, 말리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이 섞인 슬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서울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병원의 명의가 단순히 수술 실적을 올리려고 그런 판단을 내린 건 아니었을 거다. 그 의사 역시 할아버지처럼 위험회피나 안전 추구 성향보다 도전정신이 강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 외할머니도 72세에 심장병에 걸리셔서 유명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자 하였는데, 당시 할머니의 연세가 마음에 걸린 이모는 그곳 레지던트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선생님 어머니였다면 수술하셨을 거예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황한 레지던트는 '다른 의사들과 회의를 해보겠다'며 이틀 정도 후에 답을 줬다고 한다. '아마 안 했을 거라고...' 이모는 외할머니를 설득하여 결국 수술을 하지 않았고, 다행히 외할머니는 15년 넘게 건강하게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 중 가장 적합한 대안을 선택하는 것을 우리는 '의사 결정'이라고 부른다. 정보를 수집하고 가치 갈등 내역을 분석한 후 가능한 대안을 생각하는 것 말이다. 대안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분석하여 기준에 따라 문제점을 짚어보는 작업은 무척 귀찮은 일이지만 결코 생략해서는 안 된다. 거기다 하나 더하여 우리 이모처럼 절박한 의사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도발적이고 무모한 질문 하나쯤 용기 내서 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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