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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Sep 02. 2021

나는 대부분 소외되는 쪽을 택했다

무리하지 않는 관계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친구 무리에 끼려고 노력해야 되는, 내가 나이길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나는 싫었다. 한 무리에 속하는 일은 한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 힘의 강도를 조절해서 조화롭게 그 안에 머무는 일은 내겐 늘 어려웠다. 무리해서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조금 소외되는 쪽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중학교 체육시간, 짝을 지어 줄을 서야 하는 순간도 비슷했다. 나와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 나에게 보냈던 어색한 미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는 결국 짝을 찾지 못하고 뒷줄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 옆에 서야 했다. 그때의 순간이 내게 묘하게 남아 있다. 불쾌감과는 다른, 불편함과는 다른, 약간의 불안과 안도가 적절히 뒤범벅된 공기의 흐름이 그 순간에 머물렀다. 내가 먼저 그 친구의 손을 끌어당겼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면 역시 혼자 남는 쪽이 낫다. 무리해서 내쪽으로 친구 손을 잡아당기는 행동을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은, 좀 끔찍하다. 그렇다고 뒷줄에 혼자 어색하게 서 있는 것이 좋을 리는 없었다. 나랑 더 친하면서, 다른 친구와 짝을 맞춰 서 있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유쾌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의미 없는 말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에 없는 말들을 허공으로 내뱉으며 맺어진 관계는 늘 오래가지 못했다. 적당한 단어를 찾아서 괜찮은 타이밍에 던지는, 그런 말들을 하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다.


내일 봐.


학교가 끝나고 버스를 타면서 손을 흔들며 스친 얼굴들은 내일이면 또 만날 것처럼 익숙했다가 어디서 만나도 모를 사람처럼 멀어졌다. 한 학년이 끝나고, 학교를 졸업하고,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보다 그런 헤어짐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에 더 울컥해진다.


셋이 있으면 한 명은 소외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럴 경우 나는 대부분 소외되는 쪽을 택했다. 무리하면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적당한 거리에서 힘을 빼고 유지하는 관계, 관심을 기울이되 참견은 하지 않는 관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는 관계,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체육시간 맨 뒷줄에 서서 내키지 않는 얼굴로 나와 짝이 된 아이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짝이 없는 아이들은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처럼 원래의 모습을 잃고 모래 바닥에 초라하게 서 있어야 했다. 우리가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비슷했을까? 운동장 모래에 운동화를 의미 없이 앞뒤로 찍어내며 그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 기다린 나처럼 그 아이도 여전히 무리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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