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젼정 Jun 20. 2021

아빠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

꿈은 살아있는 존재다

“지 작가!”


큰 이모네 집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길,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아빠의 외침이었다. 오밤중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예고 없이 날아온 그 말은 20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몹시 곤란하게 만들었다. 버스 하차벨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마음 때문인지 집에 가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내 장래희망이 작가라는 것을 아빠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날 버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술에 취한 아빠가 더 이상 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표정을 가다듬었고, 나는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리는 저 분과 일행이 아닙니다' 모드로 얼굴을 변환시켰다. 빨리 퇴근하고 싶은 버스 기사님은 한적한 길을 자유롭게 달렸다. 나는 창밖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들을 계속해서 보았다. 그 사이 유난히 주황빛으로 빛나던 가로등을 꺼지지 않게 내 마음에 담았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내게는 참 모욕적인 날이었다. 촘촘히 떠올리는 그날은 딱 지금 정도의 날씨로 기억된다.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기 전의 서늘한 밤공기가 버스 안을 적당하게 채웠다. 거의 멈추지 않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웃지 않았고, 울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다만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내게, 그 말은 약간의 상처로 남았다. 상처는 상처고, 공부에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길로 가라는 말이 내게 통하진 않았다. 나는 어중간한 표정을 하고 살아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선명한 선택을 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촌스럽게 여긴 고등학생은 결국 인문계로 진학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내버려 두었다. 사실 모든 일에 그런 편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해줄 뿐이었다. 결정은 언제나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아빠는 내게 바라는 바가 거의 없었다. 동생과는 달리 어릴 때부터 조용했던 내가 아빠와 부딪힐 일은 거의 없었다.




형사가 사건 현장을 분석하듯 그날 버스 안에서의 상황을 최대한 세밀하게 머릿속에 그려본다. 늦은 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당차게 나를 작가라고 부르던 아빠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총명했다. 지금은 절대 볼 수 없는 눈빛이다. 아빠는 내게 왜 작가가 되고 싶은지, 작가가 돼서 뭘 할 건지도 묻지 않았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아빠에게 그때의 내 꿈이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진다.


아빠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빠가 왜 그날 버스 안에서 나를 '지 작가'라고 동네방네 떠벌리듯 외쳤는지 궁금하다. 그랬으면서 왜 내게 열심히 하라고 응원 한번 해주지 않았는지도 알고 싶다. 그 말이 그저 술주정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빠는 지금도 그렇다. 내가 무엇이 되든 상관이 없다는 듯이,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내게 기대감이 없어서인가? 내가 뭐가 되든 정말 상관이 없는 건가? 아빠의 얼굴은 언제나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말과 글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가뿐히 뛰어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아빠는 술과 함께 마음을 삼킨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사실  말이 듣기 좋았는지도 모른다. 아빠의 외침으로  나는  순간 작가 되었다. 아빠라는 열성 구독자가 있는 작가,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젊은 작가였음이 분명하다. 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 적었던  시절 나의 어린 글들은 작가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아빠가 그렇게 날 불러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내 모습을 그려본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이름이 찍힌 책을 가슴에 품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술에 적당히 취해 있는 아빠에게 안주 대신 네모 반듯한 책을,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처럼 밥상 중앙에 올려놓고 싶다. 허겁지겁 입안으로 밀어 넣고야 마는 감칠맛 나는 국물 한 모금처럼 내 글이 아빠의 목구멍을 넘어가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빠, 나는 작가가 되었어.


그럼 아빠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말끔하게 비우고, 넘치게 가득 찬 소주잔을 내게 건네주겠지. 나는 웃으며 그 달고 쓴 한 모금을 마시겠노라 다짐한다.


아빠의 그 말을 지금껏 잊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내가 아직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꿈은 살아있는 존재다. 그 시절의 엄마, 아빠, 나는 결국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까만 골목길을 함께 지나 남의 집 문턱을 넘어야만 했던 우리의 기억은 자고 나면 사라지는 꿈처럼 나약했다. 내 꿈은 그날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나약한 채로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버스에서 내려야겠다.






         

이전 11화 나는 대부분 소외되는 쪽을 택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우리에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