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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22. 2021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가 사라졌다

운동화 도난사건


중학교 1학년 시절, 내가 겪었던 불행한 사건을 하나 소개하겠다. 등교 준비를 마치고 나와 신발장을 연 순간, 내 아침잠은 순식간에 달아났다. 아무리 봐도 신발장에 내 운동화가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가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살던 집 신발장은 집 밖에 있었다. 큰 대로변 상가 1층 옆 계단을 올라가 오른쪽에 보이는 곳이 우리가 살던 집이었다. 집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닫이 문을 열어야 했다. 그 미닫이 문 옆에 카키색 철제 신발장이 있었다. 그 안에 훔치고 싶을 만큼 좋은 신발은 없었다. 신발이 많을 리도 없었다. 도둑도 참 너무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발장도 어디서 주워온 고물에 가까웠다. 문을 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신발장을 열어보면 그 집의 가정형편을 대략 추측해 볼 수 있다. 도둑은 우리 집 신발장을 보고도 기어이 내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를 훔쳐갔다. 그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야 하는 청소년의 당혹스러운 기분은 헤아리지 않기로 한 도둑이 원망스러웠다. 어떤 디자인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운동화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사실 그 운동화가 그런 존재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 운동화 말고는 신을 신발이 없었다.

나는 당장 내 운동화를 가져오라고 시위하듯이 신발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렸다. 미간을 찌푸리며 화가 난 내 앞에 서 있던 엄마는 그저 난감해할 뿐이었다. 이른 아침 운동화를 사러 나갈 수도 없었다. 운동화 가게가 열지도 않은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엄마 얼굴에 쓰여 있었다. 당장 운동화 살 돈이 없다고.


우리가 문 앞에서 소란스럽게 한 탓인지 주인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주인 할머니는 이 집의 주인답게 해결책을 내놓았다. 결국 나는 신발을 빌렸다. 주인 할머니의 낡은 아식스 운동화를 엉성하게 구겨 신었다. 신었다기보다는 발을 얹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운동화는 사이즈가 전체적으로 너무 컸다. 적어도 10년은 신발장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운동화였다가 이내 슬리퍼처럼 막 신었던 모양을 하고 있었다. 3년쯤 열심히 신다가, 1년쯤은 슬리퍼처럼 구겨 신다가, 그것도 버리기 아까워 방치해둔 운동화에 생기가 있을 리 없었다. 당장 갖다 버려도 될 정도로 낡고 볼품없는 그 운동화를 신어야만 했던 사춘기 여중생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양말이 운동화 깔창에 닿는 것조차 싫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노인의 주름처럼 운동화 가죽은 깊게 파여 있었다. 내 이상한 뒷모습이 그려졌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깔창에 닿는 내 양말은 불행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쩐지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발이 시리는 기분이 든다. 우리  신발장이 다른 집처럼 집안에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운동화가 하나만  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주인 할머니 신발을 신고 가는 내내 나는 애써 외면했던 서글픈 감정을 마주해야 했다. 운동화를 훔쳐간 도둑과 운동화를 하나밖에 사주지 못하는 부모의 무능력을 거의 비슷한 비율로 원망하며 나는 교실에 들어가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신발을 벗었다. 1교시가 시작하기 전 겨우 학교에 도착한 나는  엄청난 사건을 학교 친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운동화를 누가 훔쳐갔다는 이야기를 시작하 남의 집에  들어 사는 상황부터 설명해야 기 때문이었다.


그날 학교를 마치고 엄마를 만나 새 운동화를 샀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에게도 고맙지 않았다. 운동화가 하나뿐인 걸 보고 몇 년은 더 이 집에서 살겠지, 주인 할머니가 안타까운 얼굴을 하는 동시에 안도하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제멋대로 그려졌다.


고급과는 거리가 먼 거친 고동색 페인트칠을 한 미닫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걱정했다. 이번에는 운동화가 없어졌지만 다음에는 그 도둑이 집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쩌지 싶었다. 미닫이 문은 살짝 흔들어도 쉽게 열릴 것처럼 부실했다. 운동화를 훔치는 것에 성공했으니 도둑이 다음 계획을 세우기는 더 쉬워졌다. 바짝 긴장한 나와는 달리 가족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굴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 시절 매일 아침이면 신발장을 열어 운동화의 존재를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나는 타고나길 밝지 못한 사람처럼 늘 무표정을 지었다. 이제 신발장은 집 안에 있다. 운동화도 여러 켤레다. 그 시절 운동화 도난사건의 영향으로 나는 아이의 발에 맞는 신발을 항상 두 켤레 이상 신발장에 넣어 놓는다. 이제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얼마 전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좋은 운동화를 한 켤레씩 선물했다. 신기 아깝다며 새 운동화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그날을 떠올려본다. 그 요란하게 열리던 철제 신발장으로 돌아오지 못한 운동화처럼, 내 마음도 주인을 잃고 그 시절을 종종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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