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젼정 Oct 06. 2021

엄마의 가계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 엄마의 등을 어루만진다.

그때 그 서랍을 왜 열었을까?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 서랍을 열게 된 건, 엄마의 가계부를 보게 된 건, 그저 시간이 좀 남아 돌아서였다. 와인색 가죽 표지를 붙잡고 앞장을 몇 장 넘기면 날짜별로 수입과 지출내역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없는 살림이 한눈에 확인되는, 특별한 내용은 없어 보이는, 그냥 평범한 가계부였다.


뒤적뒤적, 멈칫.


가계부를 더 넘겨 보니 짧은 글이 흘림체로 적혀 있었다. 자신의 심경을 적은 글이었다. 가계부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깨알 같은 글자들 속에서 절망이 배어 나왔다. 싸구려 볼펜에서 나온 볼펜 똥처럼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 그 작은 네모칸에 갇혀 있었다. 나는 엄마가 쓴 절망을 훔쳐보는 것을 빠르게 멈췄다. 더 읽다 보면 그 절망이 내게 다 옮겨올 것만 같았다. 삶은 엄마에게 성실하게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 고통을 방패 하나 없이 온몸으로 받았다.

가계부에 숫자를 쓰면서 녹록지 않은 현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엄마는 느껴지는 대로 무엇이라도 적을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네모칸을 순서 없이 채워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절망의 끝에 가본 사람이었다.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낭떠러지가 아니었다. 이미 엄마는 낭떠러지에서 허우적거린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 누구도 손을 내밀어 구해주지 않자 결국 엄마는 스스로를 구원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살고자 결심한 엄마는 그 어떤 것이라도 믿어야 했다. 엄마를 따라다닌 교회에서 나는 삶의 민낯을 보았다. 없는 살림에 엄마가 쪼개 냈던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그랬고, 내 용돈에서 내는 십일조와 헌금이 그랬다. 헌금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12년 넘게 다닌 교회에서 내가 빌었던 건 결국 나와 내 가족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린다고 찬송을 부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내가 잘 되길 빌었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불안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수없이 외쳤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것들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현실적인 대안은 없었다. 모든 말이 비현실적이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을 준다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그 말을 하는 목사는 교인들의 헌금을 챙겨 본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굳센 다짐이 느껴지는 목사의 얼굴을 나는 왜 그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그쯤부터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다. 엄마도 잠시 휘청이는 듯싶었지만 교회를 옮기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주님은 유일하지만 교회는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들은 모두 선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선한 사람은 엄마였다. 인간의 배신과 반복되는 고통에도 주님을 져버리지 않는, 내가 본 유일한 선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구원을 믿고 있을까? 어쩐지 엄마가 여전히 그 무엇이라도 믿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괜스레 마음이 쪼그라든다. 엄마는 모른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해왔다는 사실을, 그 구원이 우리를 살게 했다는 사실을. 서랍 속의 가계부는 이제 없다. 삶에 대한 미련조차 남지 않았던 한 여자의 절망감은 낭떠러지 밑에서 형체가 없어진 지 오래다. 내가 그날 가계부에서 본 건 내일을 계획할 수 없는 잔액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당장 도망쳐도 비난받지 않을 만큼의 처절한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말로 설명해도 진짜인가, 그럴 수가 있나 싶은 일들이 우리의 삶에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지난한 세월들이 지나도, 꽃다운 날들만 남아있지 않은 현실이 때로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부터였을까. 엄마는  이상 가계부를 쓰지 . 자신이 얼마나 쓰는지 알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지금껏 쓰지 못한 돈을  써야 되는 사람처럼 엄마는 조금씩 소비를 늘렸다. 마음의 가난을 음식으로 채우는 사람처럼  먹을 것을 열심히 사다 날랐다. 집에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택배를 주문했다. 음식으로도, 택배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이따금 엄마의 이마 주름에 숨어 있다. 활짝 웃기보다는 근심에 가득  얼굴로  많은 세월을 보낸 엄마의 어여쁜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엄마, 그때 많이 힘들었지?


그렇게 물을 수 없었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 엄마의 등을 어루만진다. 글자들이 하나씩 걸어 나와 엄마의 목덜미에 숨는다. 나는 이 글자들을 종이로 보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노트를 한 권 선물해야겠다. 가계부가 아닌 멋진 노트 한 권을. 그걸 받으면 엄마가 좋아할까? 기분이 좋을 때면 두 뺨에 있는 보조개가 움푹 파이도록 웃는 엄마의 미소가 자동으로 눈앞에 어른거린다.





이전 08화 우리는 한여름의 대낮을 사랑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