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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Aug 31. 2021

잊는데 도움이 될 거야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그 사춘기 시절, 첫사랑을 만났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상대가 나를 알아채고,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정확한 나이는 밝히지 않겠다.) 우리는 PC통신 하이텔을 통해서 만났다. 엄마가 사준 일체형 컴퓨터에 전화선을 꽂으면 전에 없던 파란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띠띠띠띠- 띠띠-


요란한 소리가 끝나면 접속이 완료되었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전화요금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우리는 하이텔에서 자주 마주쳤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와 자주 대화를 했다. 대화가 계속되던 어느 날, 우리는 부평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서로 얼굴도 몰랐던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알아본 것일까? 그 아이는 나보다 키가 훨씬 컸다. 나이에 어울리 않게 옷을 한벌로 빼입고 있는 그 아이가 나는 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또래 남자애 중에 저런 애가 있나 싶을 정도로, 그 아이는 여러모로 돋보였다.

솔직히 한번 만나고, 다음에 또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옷을 못 입고, 얼굴이 못 생기고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하이텔은 우리를 또 재회시켰다. 그 아이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자신이 어울리는 애들보다 촌스럽고 조용한 내가 신기하게 여기진 정도였지, 나와 사귀거나 알고 지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럼 사귀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춘기라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런가, 우리는 또 만났다.

그 아이는 오락실과 콜라텍이 이어져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콜라텍에 들어가지 않고, 오락실에서 그 애를 기다렸다. 문 하나 사이를 두고 우리는 다른 공간에 있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보였다. 콜라텍은 시끄러웠고, 나는 그곳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는 누가 봐도 날나리였고,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나를 굳이 그곳에 데려가서 기다리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자신이 콜라텍을 수시로 드나드는 남자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건지, 아는 여자 애들이 많다는 걸 내게 과시하고 싶었던 건지,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더 이상 그 아이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으니 안 만나면 그만이었다. 


나는 오락실에서 나와 혼자 역으로 걸어갔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 아이가 뒤돌아 봤을 때 내가 희미하게 보이는 건 싫었다. 


"야! 어디 가!"


그 아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뭐가?"


"말도 없이 가?"


"왜 기다려야 되는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삐딱하게 서로를 향해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계속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동네에서 잘 나가도 내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그런 이상한 어긋남은 호기심 발전했고,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예상치 못하게 시작된 첫사랑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나를 '축구공'이라고 불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내 얼굴이 축구공처럼 둥글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때만 해도 내 볼은 상당히 빵빵했다. 지금은 나이가 먹어서 '축구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 아이는 학교 다니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지각도, 조퇴도 자주 했다. 집안 형편은 분명 좋아 보였는데 어디서 온 결핍 때문인지 여기저기 구겨진 옷처럼 형편없이 굴곤 했다. 연애 초반에는 이 여자, 저 여자에게 호출도 자주 왔다. 그렇지만 결국 그 아이는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순정만화의 여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아이는 달라졌다. 희미했던 미소가 선명해지는 게 느껴졌다. 서툴렀지만 마음을 표현하려고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도 느껴졌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자주 만났다. 첫사랑의 마음이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어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밸런타인데이, 그 아이는 내게 편지와 함께 초콜릿 선물을 주었다. 성격상 그런 걸 준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동그란 통에 담긴 모든 것들에서 섬세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 선물을 꽤 오래 간직했다. 초콜릿 선물이 들어 있었던 동그란 통 안에 담긴 향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향기는 달콤하고, 그윽했다. 문구점에서 파는, 화장실에서 자동으로 분사되는 그런 싸구려 향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그 향을 맡아본 적이 없다. 

한 번은 그 아이와 인천대공원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김밥'을 싸온다고 하길래, 어디서 사서 오려나보다 했는데 정말 직접 만든 김밥을 가지고 왔다. 먹어보라고 할 때 그 아이의 표정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화려한 티셔츠를 입고 수줍은 표정을 하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건들거리며 걷는 모습도, 눈이 보이지 않게 활짝 웃던 얼굴도, 헤어지는 순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순간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 아이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줄 수 있을지, 나는 겁이 났다. 서로에게 모든 것을 쏟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다. 나를 보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그에게 나는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했다. 정말 헤어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서로에게 집중되는 모든 순간들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잊는데 도움이 될 거야."


그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내 뺨을 살짝 밀었다. 따귀라고 하기에는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픈 건 그 아이가 작정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러설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말과는 달리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그 아이가 싫어져서 헤어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만난 시간보다 잊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 아이가 쓴 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축구공'과 내 얼굴을 합쳐서 그려놓은 편지에는 우리의 순간이 담겨있다. 사실 이사할 때 아니면 그 편지를 꺼내볼 일도 없다. 일부러 꺼내지는 않으니 말이다. 다시 펼쳐볼 일이 없는 편지라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계속 간직할 생각이다.


그 아이와 나는 가장 순수한 마음을 서로에게 주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에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들이 때때로 마음에 봉긋 솟아오른다. 그 무엇도 그 시절의 우리를 대신할 수 없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 아이와 만날 것이고, 서툰 마음을 어쩌지 못해 헤어지고야 말 것이다.

촌스러운 옷을 입고, 어정쩡하게 잡은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던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우리가 조금 늦게 만났더라면, 더 나은 결말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첫사랑'하면 바로 내 얼굴이 떠오를지, '축구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를지, 다 잊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띠띠띠띠- 띠띠-


요란한 소리는 이제 없다. 접속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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