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로 통하는 고전서평

#14. 구운몽 - 김만중

by 모색

1. 한줄 서평


"충만한 삶을 실현하는 충실한 욕망"




2. 작품 소개 및 배경


『구운몽(九雲夢)』은 조선 숙종 시대, 정치의 소용돌이와 정쟁 속에서 김만중이 남해 유배지에서 집필한 한국 고전문학의 백미입니다.
흔히 ‘몽자류 소설’의 효시로 불리지만, 그는 당시 현실의 권력암투,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삶에 주어진 유배라는 극한의 조건까지 다 받아들이며 “현실을 회피하는 그 순간마저 치열하게 살아내겠다”는 각오로 이 작품을 창조합니다.
『구운몽』은 화려한 몽중몽(꿈 속의 꿈) 구조를 빌려 부귀영화와 사랑, 명예, 권력, 숭고한 이상 등 인간 보편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불교적 “공(空)”과 무상, 그리고 삶의 본질적 의미를 거듭 되짚어줍니다.
그러나 김만중의 구운몽은 단순히 무상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그리고 그 행위의 근저에는 누구도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의 힘’이 있음을 오롯이 보여줍니다.

3. 줄거리 요약


주인공 성진은 명망 높은 승려 육관대사의 총애를 받는 젊은 스님입니다. 어느 날 성진은 스승의 명으로 지상에서 용왕의 생일잔치에 다녀오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용궁에서 술과 미녀, 음악, 유희에 노출된 그는 인간의 쾌락과 욕망에 처음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이내 팔선녀와 인연을 맺고, 현세에 대한 미련과 환상에 사로잡힌 성진은 결국 인간 세상으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진은 ‘양소유’라는 이름의 남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양소유는 양반가 자제로, 어릴 때부터 뛰어난 용모와 재능, 유복한 환경을 갖춘 인물입니다. 성장하면서 여덟 명의 아름다운 여성, 즉 팔선녀가 환생한 여인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 환생한 여인들은 명문가 규수, 기생, 공주 등 각기 다른 신분과 개성을 지닌 여인들이 되어 태어났고, 양소유는 각각의 여성과 사랑, 우정, 모험을 나누며 다채로운 체험을 합니다.
그는 권력, 돈, 학문, 명예, 사랑 등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세속의 모든 것을 손에 넣게 됩니다. 조선 최고 관직인 승상(정승)에까지 올랐고, 여덟 부인과의 화려한 적적, 지역 사회 내의 명성과 부귀, 수많은 문화적 향유까지 풍요로운 인생의 정점을 누립니다.
그러나 양소유의 인생은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정적의 모함, 관직 경쟁, 세부인의 죽음, 가족사 슬픔, 인간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인생의 부침 등을 겪으며, 그는 점차 세상사의 덧없음과 무상을 절감하게 됩니다.
결국 팔선녀들과 함께 조용한 삶을 선택하면서, 불가(佛家)의 세계를 동경하게 됩니다.
어느 날 외로운 산중을 배회하던 그 앞에 전생의 스승(육관대사)이 다시 나타나, “꿈을 잘 꾸었느냐? 아니면 아직도 꿈을 꾸는 중이냐?”라는 말과 함께 지팡이로 정수리를 두드리자, 양소유는 그 모든 화려한 인생이 한순간의 꿈이었음을 깨닫고 본래의 스님 성진으로 돌아옵니다.
깨어난 자리에는 팔선녀(과거의 여덟 부인)또한 함께 있었고, 성진은 무로 귀의하여 불도에 전념하기로 다짐합니다.


4. 명대사


- “네가 또 말하되, 인간 세상에서 윤회하는 꿈을 꾸었다하니 이것은 인간세상에서의 꿈이 다르다 함이라. 네 꿈을 온전히 깨지 못하였다.”
- “네가 가려 하기 때문에 가라 하는 것이라. 만일 네가 있고자 한다면 누가 가라 할 수 있으며 또 어디로 갈것이리오? 하지만 네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곧 네가 갈 곳 이라.”
- “정신이 멍하여 오랜 후에 비로소 제몸이 연화도장 성진 행자인줄 알고 생각하니, (중략) 이 분명 사부께서 내 생각의 그릇됨을 알고 꿈을 꾸게 하시어 인간세상의 부귀와 남녀 간 정욕이 다 허사임으로 알게 함 이로다.”

5. 작품 해설


일반적으로 『구운몽』의 주제는 부귀를 탐하는 욕망의 허무함, 불교적(정신적)해탈로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구운몽에서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제한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먼저 실현하고, 실현을 통해 무상함과 참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립니다.
김만중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초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꿈 속(욕망의 세계)에서 실존의 전부를 경험해보고, 현실(각성 혹은 유배지)에서 다시금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로 귀결합니다.
즉,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힘 덕분에 삶을 가장 충실하게 살아내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축복합니다.
구운몽은 세속적 성공과 쾌락(부귀영화)과, 궁극적 각성(불도)의 이원적 구도를 넘어, “어디에 있든, 어떻게 살든, 그날그날 삶에 충실한 사람이 결국 각성에 다다른다”는 실존적 명제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또한 그를 통해 신분, 상황,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이 자리에서 욕망을 긍정하고 그 힘으로 내일을 꿈꾸며,
“삶의 충만함과 각성은 늘 ‘욕망’에서 시작한다”는 보편적 진실을 되새겨줍니다.

P.s.
김만중에게 유배지는 결코 현실을 피한 ‘한순간 꿈’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 꿈과도 같은 고립의

시간 속에서 가장 생생하게 현실을 살아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였으며, 욕망을 더 드러내게 된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구운몽은 단순히 욕망의 끝이 허무임을 말하는 고전이 아니라, 누구든 지금 이 자리에서, ‘아직 깨지 않은 꿈’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각자의 욕망을 받아들이고 ‘깨어 살아가라’는 격려이자 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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