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로 통하는 고전서평

#13.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케트

by 모색

1. 한줄 서평


"기다림조차도 삶의 일부이기에"





2. 작품 소개 및 배경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대에서나 책에서나 반복되는 부조리와 공허함, 그리고 영원한 기다림의 구조로 독자를 맞이하는 20세기 현대문학의 대표적 부조리극입니다.
두 명의 떠돌이(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가 어떤 사건이나 결말 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무대는 변함없이 황량하고, 대화 역시 반복되며 목적 없는 하루가 흘러갑니다.
베케트는 사건이나 결말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상태’에서 비롯되는 텅 빈 공백 그 자체에 시선을 집중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희망을 탁월하게 그려냅니다.

3. 줄거리 요약

1부
황량한 길가, 쓸쓸한 나무 한 그루 아래 블라디미르

와 에스트라공 두 친구가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립

니다.
두 사람은 기다림의 이유, 고도와의 약속, 고도의 정체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언젠가 올 사람이니 기다려야 한다”는 막연한 믿음을 품습니다.
하루가 흘러가는 동안, 신발을 벗고, 모자를 바꾸어 쓰고, 배고픔과 피곤함, 기억의 혼란에 시달립니다.
이들은 수시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서로의 질문과 답변이 엇갈려, 진정한 소통에 도달하지 못하고 공허한 말만 주고받습니다.
중간에 포조(지배자)와 럭키(종속자)가 등장하여 권력과 복종, 삶의 무의미를 이용한 기묘하고도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여줍니다.
포조와 럭키가 떠나고 어둑해질 무렵, 소년(고도의 전령)이 나타나 “고도는 오늘 오지 않을 것”이라며 “내일은 꼭 온다”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두 인물은 “이제 떠나자”라고 말하지만, 다시 그 자리에서 멈춰서며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2부
다음 날, 같은 장소, 같은 인물. 세부 상황만 조금 달라집니다.
나무에는 잎이 한 두 장 돋아 있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또 다시 고도를 기다립니다.
포조와 럭키가 다시 등장하지만, 이번엔 포조가 시력을 잃고 럭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이전과 같이 두 인물의 명확한 목적이나 고도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제시되지 않습니다.
또다시 소년이 등장해 “고도는 오늘도 오지 않는다. 내일은 올지 모른다”고 전하고 떠납니다.
절망에 빠진 두 친구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허리끈

이 끊어져 실패합니다.
마지막까지 “이제 떠나자” “안 돼, 고도를 기다려야 해”라는 대화로 반복이 이어지고, 결국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은 채, 또 하루가 끝납니다.

4. 명대사


-"우린 늘 이렇게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뭘해야 하는가를 따져보는 거란 말이다. 우린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지금 뭘하고 있지?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참 그렇지.”

5. 작품 해설

반복되는 부조리함의 조리함이란,

『고도를 기다리며』의 가장 강렬한 인상입니다.
변화가 없는 삶, 되풀이되는 언어와 행동, 기다림 속에서 만나는 공백 - 이 조리(질서)는 인간이

무의미를 견디며 살아가는 역설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고도라는 부재한 존재는 오히려 그 결핍을 통해 존재에 대한 갈망을 더욱 각인시키며, “기다림”

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삶의 구조적 일부임을 이 작품은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들에게 고도는 희망, 구원, 삶의 목적일 수 있지만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대상입니다.
베케트는 작품 내에서도, 외적으로도 고도에 대해 논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질의에도 불구

하고 아무런 정답을 내놓지 않았죠. 그래서 고도는 성직자에게는 신(God), 재소자에게는 자유와 희망, 연인에게는 사랑하는 애인 등 읽는 사람마다 모두 그 의미하는 바가 달랐습니다.
이 작품이 부조리극의 대표작인 것은, 작가가 의미

를 전혀 부여하지 않은 부조리한 존재인 고도에 대해 저마다 가지각색의 의미를 부여해 조리있는 존재를 투영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아닐까요.
그것이 베케트가 궁극적으로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던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불안, 소통의 불완전

함, 그리고 매일의 작은 희망에 기대는 나약함이었

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허무와 반복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베케트가 생각한 인간성의 마지막 긍지이자 삶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P.s.
작품에서 기다림은 가장 수동적인 행동이자, 주인

공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행동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기다리는 동안'에 나오는 문장

처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기다림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닌, 스스로의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아주 적극적인 삶의 행동인 것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계속 붙잡으며 걸어가고 있을까요?
저마다의 '고도'를 향한 그 끝없는 질문은 어제도, 오늘도 반복되고, 내일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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