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겨울을 지날 때
난임의 긴 터널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중심으로 돌아주지 않았고, 나의 존재감은 연기처럼 희미해졌다. 한때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소통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이제 허수아비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기다림은 점점 길어졌고, 초조함과 불안은 마음속 깊은 곳을 갉아먹어 구멍을 냈다. 내 생각은 통제불능으로 굴러가 조각난 무거워서 옮겨지지도 않는 걱정덩어리가 되었다. 주변을 의식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오히려 나를 더욱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올라오지 못했다.
가족들의 걱정 어린 시선은 나에게 더 큰 부담이었다. 특히 엄마의 눈빛은 말없이 나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그 눈빛은 때로는 따뜻했고, 때로는 애절했다. 나는 엄마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역으로 밝은 척 연기를 했지만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바람에 더 가슴 쓰리고 아팠다.
난임의 고통은 단순히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를 넘어섰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의문이었고, 존재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냉혹한 자기비판의 시선은 나를 점점 고립시켰다. 더 이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이나 마트조차 무겁고 숨 막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자연은 달랐다. 겨울은 삶에서 받은 풍성한 선물을 나누는 시기다. 이때는 휴식을 취하되 게으름에 빠져서는 안 되며, 수고한 대가로 얻은 열매를 음미하되 지나치게 탐닉해서는 안 된다. 결국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가올 봄에 피어날 씨앗이 결정된다.
겨울은 겉보기에 삭막하고 건조하며 차갑지만, 그 이면에는 놀라운 생명력과 희망이 숨 쉬고 있다. 눈 덮인 나무를 보라. 겉으로는 모든 생명력이 멈춘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나무는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겨울의 혹독함 속에서도 뿌리 깊은 곳에서는 조용히 다음 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제비꽃의 작은 구근은 얼음장 같은 대지 아래에서 이미 봄을 준비한다. 겨울의 혹한 속에서도 그들은 죽지 않고 오히려 내면의 생명력을 축적한다. 마치 나의 난임 여정과 닮아있는 듯하다. 뒷산의 나무와 풀, 바람은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였다. 매일의 산책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태양은 내 머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고, 바람은 내 마음의 상처에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남편은 언제나 말없이 눈빛으로 대답했다. 의미 없는 대화는 기싸움의 불씨가 되기 때문에 서로 말을 아꼈다. 그래도 그의 묵묵한 지지와 이해는 나를 붙들어주는 힘이었다.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시간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경계를 치고 나를 보호하려 했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내면의 성장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겨울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망을 품고, 조용히 준비하며, 언젠가 반드시 피어날 생명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난임의 여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성장의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점점 더 깊이 있는 나를 발견해가고 있었다. 나의 가치는 아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나 자체로 완성되는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알았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치유하는 과정임을. 희망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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