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다는 것은 때로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순간을 선택했다. 임신을 위해 모아둔 모든 도구들인 엽산제, 영양제, 쑥뜸, 배란테스트기, 수지침 등을 버리는 행위는 단순한 물건 버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찾는 상징적인 의식과도 같았다.보란듯이 남편앞에서 말끔하게 서랍장을 비웠다.
누구보다 열렬한사랑으로 시작한결혼이었기에 쉽게 식지도 놓아지지도 않았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우리의 관계가 어느 순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고통스러웠다. 나는 더 이상 '임신의 도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남편과의 관계도 끊임없는 긴장과 싸움의 연속이었고, 우리 사이에 있던 사랑의 감정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 나는 놀랍도록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해방감이 온몸을 감싸주었다. 이제는 우리 둘만의 삶,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삶을 선택했다. 내려놓음은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지난 몇 년간 겪은 극한의 스트레스와 고통은 때로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차라리 내가 문제였으면 좋았을걸. 입으로 삼키고 씹어서 먹는 음식마다 체하고, 입맛을 잃어 음식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 정신줄을 놓고 싶어서 마시는 술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마셔도 취하지 않는 그 기분- 이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체감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가?"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더욱 가슴 아팠던 건 내 고통이 주변 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부모님까지 아프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 자신을 못난 존재로 여기며, 부모님께 죄인처럼 대우받는 느낌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 고통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용서해야 했다. 누군가의 실패작이 아니라, 그저 힘겹게 살아가는 한 인간임을 인정해야 했다.
눈을 뜨는 아침이 두려웠다. 내일에 대한 기대는 없고, 그저 막연히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만 가득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제 공허하게 들렸다. 내 삶의 결과가 이거라니, 깊은 후회와 허탈감이 밀려왔다.
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더욱 복잡했다. 아기를 낳지 않아도 나와 함께 살겠다고 하는 남편, 그리고 끊임없이 손자를 재촉하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남편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문득 내가 떠나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를 떠나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나 자신을 희생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나의 고통, 나의 존재, 나의 감정을 지워버리는 또 다른 방식.
내려놓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아주 희미한 빛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두렵게 했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혹시 기적처럼 아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그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 마음 깊숙이 숨겨둔 나만의 비밀스러운 바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6개월이라는 긴 기다림 동안 내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울함과 공허함만이 나를 에워쌌고, 그 어떤 기쁨의 신호도 보이지 않았다.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달아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