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우리는 그 긴 시간을 아기를 기다리며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은 행복했던 부부였던 우리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무너뜨렸다. 그 3년은 마치 솜털처럼 가벼운 이불이 내 눈물로 흠뻑 젖어 소금이불로 변하여 심장을 옥죄었다. 갈수록 들숨과 날숨이 버겁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칠수록 늪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감정들이 나를, 그리고 남편을 짓눌렀다.
우리 집에는 밝은 해가 들어오는 남향집임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묵직한 적막이 흘렀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시간들. 나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남편을 맞이하려 애썼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어느 날은 욱하는 감정이 나를 덮치면 눈물이 쏟아져 나와 이불속에 숨어버렸다. 나조차도 감정을 다스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흘러간다고들 하지만, 내겐 무척 더디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해는 뜨고, 저녁의 태양은 어김없이 졌다.
시간이 지나며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연애할 때 즐거웠던 순간들, 함께 떠났던 여행지들. 그러면서도 왜 지금 우리는 원수처럼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남편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겠지만 너그러이 남편을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참 못되고 이기적이었던 나는 내 욕심만 채웠다.
점점 다정하게 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퇴근 후에는 거의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쳤다. 그럴수록 남편은 일부러 나를 피하기 위함인지 매일 회식을 하고 늦은 시간에 잠을 자고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왔다. 대화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들이 트집이 되어 큰 싸움으로 번졌다.
의도한 일이 아니었는데 손에서 컵이 미끄러져서 식탁 위에 물 잔을 놓친 적이 있는데 마치 화가 나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걸고 넘어갔다. 고요했기 때문에 더 소리가 크고 깨졌을까 나도 아차 싶었다. 그렇게 아주 작은 행동조차도 싸움의 시작이었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
"무슨 불만?"
대화가 되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기보다는, 시비를 걸고, 마음의 벽을 더 단단히 쌓아가기만 했다. 우리는 마치 정을 떼려는 사람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그런 마음으로 부대찌개를 끓여놓고 남편을 기다리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연락도 없이 회식에 갔고, "혼자 밥을 먹어야겠다"는 문자를 남길뿐이었다. 친절하고 다정했던 남편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는 집보다 밖이 더 편한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그를 불편하게 만든 것일까?'
그때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었다. 집을 지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모든 것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계속되면서,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더 커져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상처받고, 화를 냈다. 가족들에게조차 꼬투리를 잡으려 했고, 내 불쌍함과 억울함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마치 나는 험난한 세상에서 나 홀로 맞서 대항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점점 검은 그림자로 물들어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침 해는 떠오르고 저녁 해는 지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도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지 않을까. 한때 우리는 분명 서로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니까. 우리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그리고 나 자신도 다시 건강하게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금 떠오르는 그 사랑스러운 순간들과 여행의 기억은 단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작은 불빛이 되었다. 우리는 그 불빛을 따라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다시 열고,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 과정이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깊은 고통과 혼란 속에서, 나는 얼마나 외로움을 느꼈는지, 그리고 남편과 나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하고 상처받았는지를 깨달았다. 그 모든 감정 속에서 혼자 센 척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지쳐가고 있었다.
부부 관계는 작은 말투와 행동에도 쉽게 영향을 받고, 때로는 작은 오해가 폭풍 같은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러면서도 쉽게 관계를 끝낼 용기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닫는다. 그런 시간이 끝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것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