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한 걸음씩 걸으면서도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정말 끝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터널 속에는 불빛이 없었지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걸었다. 그런데 그 희망이라는 게 점점 불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끝까지 갈 수 없으면 어쩌지?’
‘내려놓는다면 이 모든 시간이 헛된 것이 되는 건 아닐까?’ 끝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며 멈출 수 없었다.
수많은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병원 대기실에서 조용히 손을 비비며 차례를 기다리던 시간들, 결과지를 받아 들고도 차마 펴보지 못했던 순간들, 그리고 매달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가는 내 마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보이는 일상이 내게는 이렇게도 먼 이야기라니. 때로는 그런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고, 나 자신이 한없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 번은 의사 앞에서 "이제 포기할까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내뱉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희미한 가능성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두려웠고, 무엇보다 내가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내려놓는다는 게 뭘까?
정말 포기라는 의미일까?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내 안에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필요 없는 것을 비워내야 한다는 의미를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거친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나서야 알게 되어있다.
그러다 문득,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본 사람들의 말을 떠올렸다. 인생의 쓴맛을 먼저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조언은 이랬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서 살아야 한다." 부와 명예, 권력과 욕망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아주 작은 사소한 욕심들조차 세상의 이치에 맞게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는 말이었다. 처음엔 그 말이 허황되게 들렸다. 모든 것을 흘러가게 둔다니, 그건 내게 너무 무책임하고 무력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그 말의 무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터널 끝을 향해 달려가던 내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려놓는 건 실패를 인정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내가 최선을 다했음을,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내려놓음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충분히 노력했기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손을 풀어 쥐고 있던 것을 놓아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손을 놓는다고 해서 내가 걸었던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길은 여전히 나의 일부로 남아 있었고, 나의 삶을 이루는 소중한 조각이었다. 내려놓는 순간, 나는 알았다. 그간 내가 집착했던 건 단지 아이를 얻는 결과가 아니라, 어쩌면 실패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었음을. 나 자신을 더는 괴롭히고 싶지 않다는 내 속마음이었음을.
“그냥 살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끝까지 붙잡고 싶었던 간절함이 녹아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간절함조차도 나의 삶을 이룬 소중한 부분이었다. 그 간절함이 있었기에 나는 걸었고, 그 길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내려놓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간들을 품어 안는 일이었다.
어쩌면, 내려놓는다는 건 나를 용서하는 일이다.
"너는 부족하지 않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는 일이다.
내가 놓아주지 못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내려놓는 순간,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그 길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시작했다.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당신이 걸어온 길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