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러시아의 코레안/까레이치
앞서 6. 코리언 아메리칸의 목소리 (brunch.co.kr)에서 처음 얘기한 영힐 강(강용흘)은 소설 'Grass roof'가 성공을 거두고 1933년과 1934년 2년간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아 유럽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얘기를 했다.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행동 반경에서 아주 재미있는 연결고리를 보게되었다. 바로 다름아닌 '압록강은 흐른다'로 유명한 독일의 이미륵이다. 이미륵 역시 3.1 운동 직후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와서 지내고 있었는데, 1932년 무렵부터 문예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둘다 대단히 비슷한 배경의 작가들이다. 이북 출신에 3.1 운동으로 인해 망명, 개신교와 가톨릭 네트워크로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미국과 유럽으로 가서 문학가가 되었다. 평전 '강용흘, 그의 삶과 문학'에서는 그가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이미륵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글을 쓰도록 영향을 주었다고 되어있다.
*이미륵 박사 찾아 40년 - 어느 이방인의 향기', 정규화, 범우, 2012, 초판 1쇄
이미륵의 기억을 갖고 있는 독일의 지인들을 광범위하게 만나고 조사하여, 이들에게 남은 그의 기억들로 구성한 이미륵 전기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지인들의 증언으로 구성되어서 물론 이 책에서는 강용흘에 대한 얘기는 없다.
*Der Yalu fliest, Mirok Li, neobooks, 2021, eBook version
'압록강은 흐른다'의 원 독일어 버전 전자책이다. 흐음... 대충의 한국어 버전을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어 솔직히 읽어보겠다고 하고 미뤄둔 책이다. 원본은 1946년 R. Piper Verlag 출판이다.
*탈출기, 이미륵, 한국어 번역 사본
원래 '탈출기'는 1984년 이미륵의 유고를 모아 한국에서 펴낸 'Vom Yalu bis zur Isar: Erzählungen'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독일어 제목은 직역하면 '압록강에서 이자르강까지: 이야기들'이다)에 수록된 'Der Weg nach Westen'(서양으로 가는 길)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파일을 프린트한 복사본이다. 그리고 내용은 상해를 거쳐 유럽까지 과정과,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와 이후의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코리언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자전적 스토리이다.
*고투 40년, 이극로, 범우, 2013, 초판2쇄
한글학자 이극로 역시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 유학한 인물이다. '고투 40년'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아가는 자서전이다. 독일에서 오래 생활한 것에 비해 얘기가 너무 소략하여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귀국을 하여 조선아학회에서 활동하다 투옥되었다 해방되어 풀려났고 얼마되지 않아 북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였다. 원래 이 글은 잡지 '조광'에 연재하였던 글을 1947년 묶어 출판하였던 것인데, 2008년이 되어서야 다시 이름을 내걸고 채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극로의 한국어 음성은 1928년 5월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녹음한 것이 프랑스 국립 아카이브 Consultation (bnf.fr)에 전해오고 있다. 그 중 하나 말소리에 대한 녹음은 [Archives de la parole]. , Alphabet et sons [du] coréen. 1 ; Sons [du] coréen. 2 : (suite) / Hubert Pernot, éd. ; M. Li Kolu, voix | Gallica (bnf.fr) 인데, 20세기 초반 서부경남 방언이 제대로 들려진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산지니, 2019
산지니는 부산에 있는 지역 출판사인데 놀랍게도 좋은 책을 많이 내고 있다. 그래서 산지니가 서영해의 전기를 출판한 것은 서영해가 부산 초량 출신의 독립운동가라는 것이 기획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서영해의 이름은 박석윤이라는 식민지기 문제적 인물을 추적하다 알게되었다. 대단히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서 인터넷의 토막 정보만 보다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전기가 나왔다. 상하이를 거쳐 1920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파리평화회담등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세력들의 유럽 연락소 역할을 했고 1929년 'Autour d'une vie coréenne'(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라는 자전적 소설을 프랑스어로 출간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이름은 Seu Ring-Hai. 이 책에서는 이 소설이 한국인이 쓴 첫번째 프랑스어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원 책은 프랑스 국립 아카이브에 Autour d'une vie coréenne / Seu Ring-Hai | Gallica (bnf.fr) 에서 볼 수 있다.
*볼프, 이헌, 갈무리, 2004, 초판 1쇄
이헌이라는 소설가는 작품이 몇되지도 않고 그나마도 출판시장에서 거의 사장되었다고 보인다. 게다가 이 볼프라는 소설책은 약간 장르물로 소화가 된 것인지 이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소설인데, 사실 책이 대단히 재미있다. 주인공 현영과 덕한은 바로 이 20세기 초반 1941년 베를린에 있엇던 두 명의 조선인으로 설정되어있다. 한명은 이극로나 이미륵이 모델인 독립운동으로 인해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온 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친일파 고관대작의 아들로 추축국 독일로 유학온 이이다. 이 둘이 베를린의 반히틀러파 독일 학생운동가들과 엮이면서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유럽의 조선인이란 소재를 상당히 능숙하게 다루고 있고 '조선 독립운동'이 아니라 '반 파시즘'이라는 더 큰 세계관을 다뤘다는 점에서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다. 다만 후속작이 더 이상 없다는게...
*Koreans and Central Europeans: Informal Contacts up to 1950, vol. 1 - Berlin Koreans and Pictured Koreans, Frank Hoffmann, Praesens Verlag, 2015
*Koreans and Central Europeans: Koreans in Central Europe: To Yu-ho, Han Hŭng-su, and Others, vol. 2, Andreas Schirmer (ed.), Praesens Verlag, 2018
*Koreans and Central Europeans: Central Europeans in Korea, vol 3, Andreas Schirmer (ed.), Praesens Verlag, 2020
이 코리언과 중부 유럽 시리즈는 5년에 걸쳐 3권으로 이어진 독일 및 중부 유럽의 20세기 전반기 코리언들을 추적한다. 위의 이미륵, 이극로, 서영해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 민족 독립운동 혹은 일본제국 소속의 코리언으로 여러가지 활동을 벌인 것들을 유럽 한국학자들이 면밀하게 연구한 성과물이다.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이승우 지음, 김영사, 2019, 1판1쇄 전자책
2017년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했을때 이위종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삼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준과 이상설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는데, 기념관에 있는 사진에서 보니 이상설의 아들 이위종은 정말 젊은 아이돌같은 모습이었다. 유럽쪽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고 러시아제국군으로, 이후 혁명 후 적군 장교로 불꽃같이 산 인물에 대해 자세한 리서치를 소설형식으로 쓴 글이다. 서영해의 책에도 있지만 후손들의 인터뷰 기사란 것은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우리는 흔히 식민지 시기를 2차 대전과 연관지어서만 생각하지만 1차 대전 시기 역시 식민지 시기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앞서 소개한 '이석 엠슨 차'처럼 미국 군대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지만, 러시아의 조선인들이 상당히 대규모로 러시아 군대에 입대하여 독일과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에 대항해 전투를 하였다. 이후에 이들 중 독일군에 포로가 된 고려인 러시아병들이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아리랑이나 독립운동가 같은 한국어 노래를 녹음한 것이 발견되어 알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들 포로병의 통역을 맡은 이는 김중세 金重世라는 인물로 1909년 독일로 와서 대학을 다니고 왕립프러시아 아카데미에서 동양학 연구실에서 일을 하던 중 민족학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뮐러 교수의 조수로 이들 고려인 포로병의 통역을 하게되었다는 이야기가 위에 소개한 Berlin Koreans and Pictured Koreans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 녹음이 발견되었을 당시 한겨레의 기사 고려인 한 담은 100년전 아리랑에는 '김충세는 독일어를 할 줄 알아 수용소 내 통역을 맡고 있으며'라고 미처 어떤 사람인지 몰라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형용사 '까레이스키'라고 잘못 알려지기까지 한 러시아의 '고려사람'(Корё-сарам)은 그동안은 독립운동 아니면 민족의 수난으로만 소화되고 있었는데, 한국학의 범위가 이제 조금 넓어지는지 흥미로운 책들이 나오고 있다.
*Burnt by the Sun - The Koreans of the Russian Far East, Jon K. Chang, University of Hawai't Press, 2018 print edition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극동지역의 고려인들에 대한 연구서이다. 특히 이 커뮤니티가 어떤 구성이었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떻게 러시아와 소비에트에 적응하였는지, 스탈린 치하의 민족 대이동은 어떤 과정이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오래 추적하고 있는 고려인 사회의 구심점이었던 '한창걸'이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사료가 담겨있다. (표지 사진의 맨 오른쪽 인물이 한창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 다 못읽었으니 더 이상의 소개는 나중으로 미루겠다.
그나저나 처음에는 야심차게 책장의 책들을 모두 이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한권 한권 쓸데없이 옆으로 빠졌다가 산으로 갔다가 아직 책장 반개도 커버하지 못했는데 몇년 걸려야 끝나려나 불현듯 생각이 들고 있는 중이다. 흐음....
*커버의 사진 이미지는 Koreans and Central Europeans: Informal Contacts up to 1950, vol. 1 - Berlin Koreans and Pictured Koreans에서 발췌한 사진의 일부로 왼쪽부터 신성모, 이극로, 안호상의 1927년 봄 이극로의 박사과정 수료 기념 사진모습이다. 20년 후 이들의 길은 뿔뿔이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