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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륜재 Jan 10. 2023

9. 모던이라는 삼족정(鼎)

- 제일 먼저 근대 학교부터

8. 모던 동아시아 독서록에서 근대주의 혹은 모더니즘이 먼저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대중문화나 풍속에 대한 책들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한 사회 또는 국가가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3개 영역에 대한 책들을 소개하려한다.

고대 중국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된 제사의기 중에 정(鼎)이라는 솥이 있다. 당연히 제사의기란 신성하게 다뤄진 것이고 이 솥이 바로 서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텐데, 이 솥에는 다리 세개가 있다. 다리가 세개 달린 솥이 바로 서있으려면 세 다리가 동일한 길이와 각도로 붙어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짧으면 솥이 설 수가 없다. 근대사회라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것 같다. 그동안 공부해온 결론이라면 한 국가나 사회가 근대적 국가/사회로 탈바꿈하려면 3개의 기관이 견인차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다른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배양배지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3개의 기관은 학교, 군대 그리고, 은행인 것 같다. 물론 사법기관이라든가 회사라든가 하는 다른 의견도 있겠지만 이 세가지 기관이 근대화되지 않으면 그 사회/국가는 근대의 문턱을 넘을 역량을 기를 수가 없다는 게 지금의 나의 결론이다.


먼저 교육부터 살펴보자.

*학교의 탄생 - 100년 전 학교의 풍경으로 본 근대의 일상, 이승원, 휴머니스트, 2007, 1판2쇄

학교의 탄생은 이 근대 시기 학교에 대한 좋은 입문서이다. 대중서라고 하지만 근대 학교에 대한 다양한 시점을 소개하고 있고, 참고문헌이 붙어있어서 더 읽을 방향을 제공해준다.

*구한말 근대학교의 형성, 古川 昭, 이성옥 역, 경인문화사, 2006, 초판1쇄

 이 책은 갑오개혁으로 소학교가 창설되면서 보통교육이 시작된 시점부터 사범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외국어학교, 농상공학교, 여학교와 의학교에 이르기까지 1910년 식민지 시기 시작되기 이전 "구한말"의 학교에 대한 상세한 자료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조선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으로 근대학교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조선의 교육에 참가한 일본인들에 대한 연구를 함께 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묘한 입장이긴 하지만 인간의 일이란 간혹 두부자르듯 자르기 어려운 점도 있기는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관립 실업계 전문학교 혹은 고등 실업학교에 대해 관심이 조금 특별히 많다. 모교가 이 학교 중의 하나였던 연유도 있고 근대화에 이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어로는 근대적 실업계 고등교육에 대한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대신 현대 한국 교육제도의 빛과 그림자 모두의 얼티밋 오리진으로 간주되는 경성제국대학에 대해서는 몇몇 연구자들이 꾸준히 연구를 해서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일제 시대의 조선 생활상, 한말 외국인 기록 23, H.B. 드레이크, 신복룡.장우영 역, 집문당, 2000, 1판1쇄

이 책은 경성제대 예과 영어교수였던 드레이크의 회고록이다. 경성제대가 설치될 당시 아직 조선에는 대학교 진학을 준비할 수 있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보통 일본에서 "구제 고등학교" 旧制高等学校라고 부르는 이 고등학교는 지금의 대학교 1-2학년 교양과정 정도에 해당한다. 제국대학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학제 상의 고등학교가 없으니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제국대학 예과를 먼저 설치하여 운영을 하였다. 드리이크는 이 경성제대 예과의 영어 선생 혹은 교수이었고, 책 속에서도 자신이 '선생이기도 하고 교수이기도 하다'고 언급을 하고 있다. 다만 번역자가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서울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사실이 있으나"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할까. 하지만 나중에 영어 원문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부분은 충실하고 큰 오역이 없어서 괜찮았다. 경성제국대학 예과 학생들과의 교류와 에피소드가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마음으로 적혀있다.

*경성제국대학, 이충우, 다락원, 1980, 초판

이 책은 모든 경성제국대학에 대한 연구의 할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1979년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저자 이충우가 주간 한국에 '경성제국대학'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에는 여전히 대부분 생존하고 있던 경성제대 출신을 인터뷰하여 게재하였던 글을 엮어낸 것이다. 심지어 경성제대 2회의 이희승이 발간에 즈음하여 추천사를 쓰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 즈음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회고담들이 약간 과장되어서라고 할지 그 나이라서 그랬는지 덕분에 약간의 판타지를 갖게 해주었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래서 오래 이 책을 가지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절판된지 오래다가 2013년 다시 보는 경성제국대학(이충우 최종고 지음·푸른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업데이트가 되었는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 경성제국대학연구, 정근식, 정진성, 박명규, 정준영, 조정우,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이 책은 꽤 벽돌책이다. 2010년대 이전에 앞서 말한 회고담 수준의 자료집정도 이외에는 본격적인 연구서가 사실 없었다. 그래서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경성제국대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부터 새로 따져가면서 나온 책이 이 책이다. 서울대 도서관의 경성제대 도서와 문서를 헤집어 식민지에 세워진 '제국대학'은 어떤 위상이었으며, 어떤 조직으로 구성되었고, 어떤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가를 엄청난 1차 자료와 함께 엮은 책이다. 그러니까 경성제대 연구의 시발점인 그런 책이랄까.

*경성제국대학과 동양학 연구,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윤해동, 정준영 편,    2018

그런 다음 경성제대 연구는 우선 보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지평에 영향을 미친 문과계에 좀더 치우치고 있다. 이 책에 엮어진 연구들은 제국대학이면서 식민지 대학인 특성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는가 특히 '제국의 관심 내에서 대륙 침락을 위한 동양학 연구'라는 방향으로 좌표가 정해졌는가를 밝히고 문학과 사학, 그리고 법학의 분야에서 경성제대가 어떤 위상을 형성하였는가를 다룬다. 동양학 연구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그보다 경성제대 문과의 연구라고 하는게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학 - 지양으로서의 조선, 지향으로서의 동양, 정준영, 사회평론아카데미, 2022

경성제대에 대한 위의 책 3권 모두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 서울대 규장각 정준영 교수의 최근작이다. 정준영 선생은 꾸준히 경성제대를 연구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에서는 경성제대 법문학부의 일본인 교수들의 동양학 혹은 조선학 연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짚어준다. 어찌보면 위의 "...동양학 연구"에서 한층 더 확장 심화된 책이다.

경성제대를 이해하려면 '제국대학' 시스템을 좀더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국대학-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장치, 아마노 이쿠오, 박광현,정종현 역, 산처럼, 2002, 1판1쇄

이 책은 일본 제국대학 제도에 대한 알찬 입문서이다. 제국대학의 시초에서부터 제도, 과정, 전개 그리고 전후에 제국대학의 해체에까지 자료를 잘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7개 일본 내지의 제국대학을 다루고 있지만 '두 자매'라고 언급하면서 경성제국대학과 타이베이제국대학에 대해 시작과 과정, 그리고 뒤에 이 두 학교 출신의 전후 수용에 대해 짧게 다루고 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정종현, 휴마니스트, 2019, 1판 2쇄

 책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인데, 글의 톤도 약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책들에 비해 문과와 이과가 고루 다뤄지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 모두에 남긴 영향들에 대해서도 다 잘 다루고 있다. 원래 개인적으로 이 책은 유진오의 '만세보'와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원래 기대했던 박석윤이라는 인물에 대해 너무 소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서 좀 실망하기도 했었다.


*大学の誕生 <上> 帝国大学の時代 (中公新書), 天野 郁夫,中央公論新社, 2009

*大学の誕生 <下> 大学への挑戦 (中公新書 ) ,天野 郁夫, 中央公論新社, 2009

이 두권 '대학의 탄생 - 제국대학의 시대 / 대학에의 도전'은 전자책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아마노 이쿠오 天野 郁夫가 일본의 대학 제도가 시작된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제국대학뿐 아니라 사립대학들, 실업제 전문대학들이 어떻게 형성되어서 제국대학과 관립전문대학, 사립대학들의 생태계를 만들고 이어졌는지를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무렵 마침 한국 최초의 건축학 유학생에 대한 논문을 같이 하고 있던 중이라 맥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읽고 싶어 해오던 연구도서가 나왔다.


*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학교, 김자중, 지식의 날개, 2022, 초판1쇄

이 책은 경성제국대학 바로 아래에 위치한 모든 관립, 사립 전문학교들에 대한 총론적인 연구도서이다. 개항기 처음 접하게된 근대 교육기관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조사와 관심부터 시작하여 제도의 도입, 운용, 그리고 어떻게 현대 한국에까지 이어지게된 서열화와 학벌주의의 오리진을 해방전까지 추적한다. 경성제대에 대한 연구들에 비하면 아직 너무 초기단계이고 범위가 너무 넓어 심도가 좀 부족하지만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길어져서 일단 학교에서 마무리하고 다른 두개 기관은 다음으로 넘겨야겠다. 마지막으로 소장하고 있는 가장 "고심하고 있는 책"을 소개하겠다.

*수원고등농림학교동창회 개조기념 쇼와18년 동창회보 제97호,  수원고등농림학교동창회, 1943

거의 바스러질 것같은 80년 된 수원고등농림학교 동창회보 원본이다. 소장자가 아마 동창회의 일을 맡아 있었던 것인지 오랜 기간 동창회원들의 업데이트를 달필의 수기로 적어두고 있다. 명부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학생들이 모두 기록되어있다. 이 책은 언젠가 좀더 공부를 하려고 두고 있는 중이다.  


여기 소개한 소장본들 외에, *부산교육 50년사, 리진호, 지적박물관출판부, 2009 를 구하고 싶었는데 품절 상태라 언제 연이 닫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책과 정확히 같은 제목과 목차의 釜山教育五十年史가 쇼와2년(1927) 부산부와 부산교육회가 같이 편찬한 책이 있다. 내 생각에는 2009년에 나온 책은 이 책의 번역본이 아닌가 추정 중이다. 부산의 근대 도시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별도로 책들을 소개하려고 생각 중이다. (링크는 일본국회전자도서관이다. 여기서 디지털로 볼 수 있다.)


한편 한국 근대 학력 엘리트 데이터베이스 메인 - 근대 한국의 학력 엘리트 데이터베이스는 "대한제국기 고등정도학교 9개교와 일제시기 중등․고등교육기관 348개교에 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학력엘리트’ 30여 만명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는데, 실제 상당히 유용하여서 이래 저래 리서치에 활용을 했다. 


*표지 이미지는 1899년에 설립된 관립 농상공학교의 교사 모습. 출전: 농상공학교(農商工學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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