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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작가 Oct 31. 2022

[Chapter.10]’배려’가 뭐예요?

-내 마음대로 말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중학교 시절, 제 친구 중에는 또래보다 키가 아주 작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시선을 보내고 싶지 않아도 눈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친구의 병명에 대해 묻거나, 무례한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친구는 우리의 얕은 시선이, 궁금한 듯한 표정이 참 부담스러운 듯했습니다. 우리는 시선을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어린 마음에, 그저 그 친구가 궁금했던 것뿐이었지만요. 저는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동정과 연민이 절대 아닌 친구 대 친구로서 알고 싶은 것도 많고 대화도 나누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도 참 어렸는지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꺼내는 말과 질문이 그 친구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너무나도 신경 쓰였습니다. 결국 그렇게 첫인사를 끝으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나아간 것일까요? 저와 가장 친한 친구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 "교복, 진짜 불편하지?'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그 질문을 옆에서 듣고 친구에게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실례되는 말이잖아.."라고 속닥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돌아온 대답은 "맞아, 정말 불편하다. 앞으로 매일 이런 치마만 입고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걸까?"였습니다. 제 친구는 곧이어 "그러니까! 나도 치마가 너무 불편해."라고 맞장구쳤죠. 저는 그 대화를 들으며 제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 친구에게 하는 '교복, 진짜 불편하지?'라는 질문을 듣고 무례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중학교를 갓 들어온 새 학기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대화였는데 말이죠. 저는 혼자 너무 앞서 나간 것이었어요. 친구 대 친구로 생각하고 싶었으면서, 사실은 제가 혼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게 굴었던 것이죠. 그 친구에게는 어느 질문을 했어도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 오는 오르막길 힘들지 않아?", "학교에 계단이 너무 많고 다리 아프지 않아?"와 같은 질문들이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는 질문이었죠. 그 친구뿐만 아니라 모두가 교복이 불편하고, 오르막길이 힘들고, 계단이 많아서 다리가 아프니까요.


 담임선생님은 반장이었던 저에게 그 친구를 잘 챙겨주라고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불편한 티는 내지 않아도, 사실은 많이 불편할 거라고. 저도 당연히 친구가 불편한 부분은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친구는 제 생각보다 훨씬 강한 친구였습니다. 학교의 지리는 이미 다 외워놓은 채 제가 함께 가지 않아도 이동수업실을 잘 찾아갔고, 체육시간에도 참여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참여했고, 성적도 우수했습니다. 제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볼 때마다 '괜찮아, 혼자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며 얼마나 멋있다고 느꼈는지 몰라요. 동시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왜 저는 그 친구가 당연히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왜 우리와 함께 하는 이 생활이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딱 하나, 친구가 제게 직접 도와달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급식을 받아주는 일이요. 급식 대가 너무 높아 친구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건 꼭 도와줘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급식받는 거 도와줄 수 있어? 내가 받기엔 너무 높아서 네가 조금 들어줬으면 해.'라고 말을 건네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때 느꼈습니다. 드디어 내가 친구를 도울 부분이 생겼다고. 나도 이 친구의 즐거운 학교생활에 조금은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말이죠. 저에게 고마워하며 맛있게 밥을 먹는 친구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게 진짜 배려구나. 내가 돕고 싶어서 도움을 주는 게 아닌, 친구가 도움을 받고 싶어서 나에게 부탁했을 때 주는 도움.' 제가 아니어도 그 친구는 뭐든지 충분히 잘 해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배려 아닌 배려를 한 것이죠.


 배려는 배우면 배울수록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만큼 딱 그 정도만. 뭐든지 양보하고, 뭐든지 물러나는 것이 배려가 아닙니다. 배려는 '슈퍼맨'같은 것, 우리가 동경하는 영웅처럼 위기의 순간, 꼭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배려는 배려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제가 만약 과도하게 배려심이 흘러넘쳐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주고 양보했다면 어땠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입니다. 그 친구는 배려를 느끼기보다는 '불쌍함,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더 느꼈을 수도 있고요. 


 '배려'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보입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는 '배반되고 어그러짐.'이라는 문장이 눈에 띕니다. 정말 상반되는 뜻이자, 모순되는 정의라고 생각되지만 어쩌면 전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쓸 때,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어그러진 배려라고 할 수 있죠. 배려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말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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