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

by 고갱이

진수가 죽었을 때도 이렇게 화려한 날이었다. 파란 계절이 가을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딛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동네 여자들을 만나 집 앞 공원에 꽃구경을 하러 갔다. 이 공원은 봄여름 내 꽃무릇을 관리한다. 꽃무릇은 매년 9월 중순이면 피는데, 3,000평이 넘는 잔디가 레드 카펫으로 변하는 장관은 이 지역의 명물로 입소문 난 터였다. 타지역 사람들이 차를 끌고 몰려들기 전에 꽃구경하기 위해 나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를 입고 일찍부터 내리쬐는 진한 가을볕을 막기 위해 선글라스를 썼다. 그날, 아들이 죽었다. 동네 여자들과 공원에서 꽃을 좀 보고 사진 좀 찍고 카메라 앞이 어색해서 좀 웃었던 게 얼마나 큰 잘못이라고, 아들이 죽어버렸다. 나는 이제 시뻘건 꽃밭만 떠올리면 포클레인 밑에서 납작하게 눌린 진수가 생각난다. 그 젊고 건강한 아이가 흘린 피도 저렇게 태양 아래에서 빨갛게 반짝였을 것이다. 아이가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누워 있을 때, 어미인 나는 같은 하늘 그 한가운데 서서 웃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포클레인 운전기사는 진수를 보지 못했다고 중얼거렸다. 경찰이 당신은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졸았다고 말했다. 아기가 있는데,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애 엄마는 신장 투석을 받던 중 증세가 악화되어 입원을 했다. 운전기사는 돌이 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다 1주일 만에 일을 하러 나왔고, 작업을 시작한 지 3시간이 채 안 된 시각에 사고가 났다. 졸지 않았다던 운전기사는 나중에 어쩌면 졸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졸았는지 몰랐다고, 솔직히 저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저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꿈속을 헤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기 엄마의 고장 난 신장 자리에 진수의 건강한 신장을 이식했다. 나도 모르는 새 이놈의 새끼가 장기기증 신청을 해 놓았고, 남편이 사인했다. 기가 막혔다. 구치소까지 포클레인 기사를 찾아가 내 아들 신장이 그렇게 탐났냐고 그래서 내 새끼를 죽였냐고 악을 썼다. 내 아들 목숨으로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고 발광했다. 기사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고, 내 아들 살려내라고.

기사는 아들을 살려내지 못했다. 죽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피 같은 꽃무릇이 범벅이 된 가을은 몇 번이고 돌아왔지만, 나는 그 시간을 내 기다렸지만, 진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긴 기다림 동안 나는 공원의 꽃밭을 태워버릴 것을 결심했다.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여느 아줌마들 사이에 숨어 꽃밭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꽁초를 버려 불을 낼 계획이었는데, 그날따라 담배 맛이 너무 좋았다. 계속 피다가 그만 습관적으로 비벼 껐다.

“에이씨.”


다시 한 대 물어 불을 붙인 뒤 버렸다. 숨어서 담배가 타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닐봉지와 집게를 든 노인들이 몰려와서 욕을 하고는 내가 버린 담뱃불을 끄고 주워 담았다.


“어떤 놈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지랄이여?”

“세상에, 큰일 날 뻔했네. 이 예쁜 꽃밭이 다 망가질 뻔했어.”


행복복지센터인지 뭔지에서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고 써 붙여 놨더니 거기서 일하는 동네 노인들이었다. 세상이 행복에 환장했다. 늙은 것도 서러울 텐데 고작 쓰레기를 주우며 행복하자는 건가. 이건 농락이다. 농락당하는 줄도 모르고 돈 몇 푼에 넘어간 순진한 노친네들. 어쨌든 내가 너무 소심했다. 좀 더 과격하게 나가야겠다.

밤에 불을 지르려고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 왔다. 똥수가 그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짖어 남편에게 알렸다. 똥수는 진수가 6학년 때 데려온 유기견 똥개인데, 몇 살인지 모른다. 그저 우리 집에서 같이 산 시간만 10년이 넘었다. 다 늙은 개새끼가 왜 죽지도 않고 저 지랄이냐고, 죽으려면 곱게 죽으라고, 빨리 나가 죽어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당분간 떨어져서 지내보자더니 시골 본가로 내려갔다. 내 눈앞에서 밥 먹고 잠자고 눈 뜨고 일어나는 꼴이 보기 싫던 차에 똥수까지 데리고 사라진다고 하니 속이 시원했다. 짐을 싼 남편이 내 앞에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진수 사망보험금인데... 그동안 내가 보관하고 있었으니 이제 당신이 갖고 있어. 이것까지 갖고 가기 너무 무겁네. 당신이 쓰고 싶은데 써도 되고.”

이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바락바락 악을 썼지만, 남편은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떠났다. 똥수도 그동안 때맞춰 밥 준 사람은 난데 뒤도 안 돌아보고 남편을 따라갔다.

겨우내 나는 매일 공원에 갔다. 시꺼멓게 진 꽃무릇밭 위를 걸으며 누더기처럼 시든 풀을 발로 지근지근 밟았다. 한 송이도 한 줄기도 남김없이 밟으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나에게 다 떠넘기고 가버린 남편도, 똥수도, 조는 줄도 모르고 졸았던 포클레인 기사도, 정상적인 신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아기 엄마도, 하필이면 그때 돌이 채 안 되었다는 아기도, 멀쩡한 사람을 이렇게 미친년으로 만들어 놓은 진수도,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철마다 피어오르는 이 뻔뻔스러운 꽃도, 병신 같은 것들. 다 밟혀 뒈져버려라.


봄이 왔다. 나는 아기 엄마를 찾아갔다. 여자는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말고 있었다.

“내 아들 신장이 잘 있나 보러 왔소.”

여자는 유치원 간 아이가 돌봄까지 끝나기 전,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김밥을 만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에 130만 원을 벌어 아이와 둘이 살고 있었다. 병원비가 크게 들지 않아 살 수 있었다.

“내 아들 목숨 덕인 줄 아시요.”

운전기사의 형기는 2년 정도 남았다.


다음 날, 나는 남편이 두고 간 통장을 들고 부동산에 갔다. 그리고 공원 옆 상가에 10평짜리 분식집을 열었다.


<진수 분식>


“그동안 천국에서 김밥 마는 기술이나 익히면서 편히 살았으니, 이제 여기 와서 김밥을 말아요.”

나는 떡볶이와 어묵, 순대를 맡고 아기 엄마는 가게 청소와 재료 준비 포함 김밥에 관련한 일 일체를 맡으라 했다. 주문과 계산은 전부 주인인 내가 할 것이니 넘볼 생각 말라 분명하게 일렀다.

“제가 김밥 경력 5년 차예요. ‘김밥천국’보다 여기서 더 많이 벌어야 제가 옮길만하지 않겠어요?”

정희는 철저한 성과급제를 제안했다. 기본급 100만 원에 김밥 한 줄당 50%의 이익을 요구하길래 일단 30%로 합의를 보고 1년 후에 다시 협상하기로 했다. 그것도 <진수 분식>을 <진수 김밥>으로 바꾼다는 전제다.

가게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정희는 50%를 가져가고 있다. 김밥 한 줄에 기본 3500원, 치즈나 참치 김밥은 4000원, 정희가 개발한 진미채 김밥은 4500원인데, 이 중 진미채 김밥이 제일 인기 많다. 동네 엄마들은 툭하면 김밥 속 진미채를 반찬으로 팔라고 조른다. 4500원의 50%면 2250원, 재료비를 제하면 나에게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나는 내 밥벌이를 위해 정신없이 떡볶이를 볶고 어묵을 끓이고 순대를 썬다. 주문을 받고 계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주문도 제대로 못 받고 계산 실수도 잦다. 그래도 정희년이 워낙 많이 떼어가서 쉴 수 없다.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한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공원에 꽃무릇을 보러 온 사람들로 조용하던 동네가 이른 아침부터 북적인다.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웃으면서 지나간다. 종종 우리 가게에 들러 김밥과 떡볶이와 순대를 포장해 가기도 한다. 그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까 아니면 불이라도 낼까 완장을 두른 노인들이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뒤따른다. 노인들은 공원 청소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가게에서 어묵 국물에 김밥을 먹는다. 추석 전 2주가 <진수김밥> 대목이다.

“저 할머니 오늘도 출근하시네요. 일주일째 하루도 안 쉬시네. 어제도 오후에 오셔서 김밥 사가셨는데. 제가 할머니라고 했더니 기분 나빠하셨어요. 아직 할머니가 아닌가... 그럼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할까요? 하긴 저도 누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포기한 상태고요.”

바깥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피던 정희가 이내 재료 준비를 위해 손을 바삐 움직였다.


“내일 태호 아빠 나오는 날이죠? 우리도 가게 문 하루 닫읍시다.”


다음 날, 나는 공원으로 향했다. 3년 만이다. 꽃들이 여전히 그 화려함을 잔인하게 휘두르고 있을까 겁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것같다. 손에서는 진땀이 배어 나오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공원에 도착했을 때, 아침 햇살을 받은 빨간 꽃무릇은 더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에 주저앉았다. 꽃은 여전히 꽃이었고, 한없이 아름다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