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갱이 Sep 25. 2023

인연의 다양한 형태

Happily ever after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집 근처에서 고양이를 분양하는 카페의 광고를 봤다. 가정집에서 고양이들과 살며 분양사업을 하다 월 초에 카페를 오픈했단다. 매장의 절반 정도 되는 면적을 홀과 분리하여 고양이 전용공간으로 꾸며놓고 카페 손님과 분양 손님을 받는 가게였다.  


나는 방문 예약을 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사장에게 고양이와 사는 얘기나 좀 들어볼까.


공사 정리가 덜 된 카페 내부는 군데군데 아직 혼잡했지만, 고양이들의 공간은 깨끗했다. 우리 가족은 음료 빨대를 쪽쪽 빨며 유리창 너머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털이 북실북실한 성묘들 사이에 끼어 혼자 놀고 있는 작은 고양이를 봤고, 그 똘망한 눈망울과 별나게도 헐벗은 몸매에 빠져들었다.


봄이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봄이는 만 7개월이 꽉 차도록 부모묘와 함께 살고있었는데, 며칠 전 공사가 끝난 날짜에 맞춰 매장으로 나왔단다. 3남매 중 첫째로, 동생 두 마리는 이미 분양되었다. 그간 봄이만 분양되지 못한 채 여태껏 남아있었다는 말이다. 고양이가 분양되는 평균 연령대(2~3개월)를 감안하면 8개월은 파양을 의심할 법한 개월수다. 이 점을 의식했는지 브리더는 그간 봄이의 자취를 기록한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기록은 3주 전 중성화 수술을 받은 직후의 모습이었다.


사장은 엄연히 허가를 받은 정식 업체임을 강조하며 여름에 태어난 새끼와 어미묘를 돌본 비용과 건강 검진, 세 번의 예방 접종, 중성화 수술 비용 그리고 난방비, 사료, 모래 값에 약간의 수고비를 더한 금액을 불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제공해 드리는 이벤트 특가라 했다. 나는 잠자코 돈을 냈다. 그리고  품목란에 '고양이용품'이라 찍힌 영수증을 받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저 예상치 못한 돈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영수증을 받자마자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화장실, 모래, 밥그릇, 사료... 전부 쓰고 먹던 것을 받아왔으니 첫날부터 우리가 걱정할 거리는 없었다. 그저 낯선 환경이 무서워 숨어있는 어린 고양이를 위해 폭신한 담요를 구석구석 깔아주고 평소보다 조금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 고양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숨숨집'이라는 것과 '스크래처'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해 줬다. 그것들을 검색하고 주문하던 중 캣타워의 중요성과 지금 있는 화장실과 밥그릇은 이미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 성묘에게는 특대형 화장실과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밥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 모래 사막화 방지 깔개, 정수기, 장난감, 간식, 이동장, 화재대비용 인덕션 덮개 같은 기발한 용품에 이어 일주일도 채 못 갔던 사료와 모래... 계속되는 택배회사 파업으로 인한 배달 지연, 품절, 결제 취소.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끝이 없었고, 나는 무지해도 너무 무지했다. 화장실에서 모래를 파던 중 발생하는 가루 때문에 재채기를 하는 것을 보고 먼지가 안 날리는 모래를 검색하다가 재채기로 눈곱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뭘로 어떻게 닦아줘야 하는지 몰라 다른 검색창에서 또 검색하고 그렇다면 혹시 목욕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목욕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 연관 글에 화장실 청소가 제대로 안될 경우 신장이 약한 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는 글이 이어져 벌떡 일어나 삽을 들고 화장실 모래를 뒤집으러 가고, 지금 이것들이 제대로 된 똥 모양인지 오줌 양은 적당한 건지도 잘 모르겠고. 안 되겠다. 결국 고양이 카페에 가입했다.


카페 회원들은 대부분 구조된 유기묘나 길냥이를 데려와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게시판은 건강이 안 좋은 고양이를 걱정하는 이야기나 질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몸이 약한 탓에 예민해진 고양이들은 야생에서 얻은 질병 외에도 모래 혹은 사료의 종류에 따라 결막염이나 피부병, 설사, 구토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회원들은 대부분 몇 달 동안 동물 병원에 다니며 약을 처방받고 그 약을 먹이기 위해 각종 입맛 도는 사료와 간식을 찾아보는 등 말 그대로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쓰며 지극정성으로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었다. 한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를 키우는 사람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건강한 고양이 한 마리에도 이렇게 큰돈이 들어가는데 아픈 고양이 여럿이라니. 막말로 사룟값만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경제 형편에 맞게 골랐을지도 모르는 저렴한 사료를 먹인다는 글에는 꼭 친절한 댓글이 달려있다. 그 사료는 성분이 안 좋다 하니 바꿔주세요.


등업 전에 볼 수 있는 글만 골라 읽던 나는 금세 피로를 느꼈다. 고양이 한 마리에 이렇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봄이가 별 탈 없는 고양이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병에 걸리면 내가 이 사람들처럼 올인하다시피 하여 돌볼 수 있을지 덜컥 겁도 났다. 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거람.  


그러던 중 하나의 또 다른 게시글을 보았다. 분양에 대한 글이었다. 품종묘를 키우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자랑하듯 자신의 고양이를 보여주면 그때부터 한동안 그 품종의 가격이 폭등한다, 펫샵에서는 해당 품종을 무리하게 교배시켜 공장처럼 생산한다, 그러다 유행이 지나면 한바탕 길거리에 해당 품종묘들이 버려진다는 내용이었다. 방송과 유기된 품종묘 간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그들은 가정분양 역시 공장형 펫샵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봄이의 브리더는 자신들은 수년간 출산만 하는 고양이를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펫샵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어미와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쾌적한 환경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사진에서 본 집안 풍경은 고양이에게 최적화된 환경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카페 회원들의 시선에 그들은 특정 품종을 생산, 판매하기 위해 일부러 중성화 수술을 안한 암컷과 수컷 고양이를 키우는 장사꾼일 뿐이었다. 중성화 수술을 하면 10년 넘게 살 수 있는데 출산을 할 경우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들 만큼 고양이라는 종에게 출산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첫배 아기예요."

브리더가 봄이를 넘겨주며 자랑스레 했던 말이다. 봄이는 어미가 처음으로 출산한, 그래서 아주 건강한 고양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나는 두 번, 세 번 출산할수록 점점 건강하지 못한 새끼가 태어나나요, 몇 번까지 출산하게 만드실 계획이세요,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출산을  하게 되나요, 더 이상 임신하지 못하게 어미묘는 어떻게 되죠 같은 질문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알게 될 현실이 무서웠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겠다. 알게 될 경우 봄이를 데려오기를 주저하게 될 것 같아 모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언제든 결국 드러난다. 영수증을 구겨버린다 해서 그 안에 적힌 글씨가 사라지진 않듯이.


그날 밤 카페에서 탈퇴했다. 분양받은 내 행동이 비난받는 것 같아 그곳에서 버티고 있기 싫었다. 나는 그들처럼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그렇게 정의로움을 갖고 실천할 만한 에너지가 없다. 나는 고양이의 온기와 위로가 필요할 뿐인, 피로에 찌든 평범한 아줌마에 불과하다.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느긋해지고 싶었다. 편안함을 느끼며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돈을 주고 건강이 보장되는 고양이를, 샀다. 그 행동을 힐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로서는 무시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괴롭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인연을 맺은 고양이와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오직 기쁨과 즐거움, 편안함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일 것이다. 심지어 그 철없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부끄럽긴 하다. 하지만 지탄받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그 글을 읽은 뒤로 나는 봄이를 볼 때 더 이상 한없이 예쁘다는 생각만 하지 못한다. 자꾸 어미가 생각난다. 지금쯤 뭐 하고 있을지, 건강할지, 행복할지, 브리더들에게 사랑은 받고 있을지. 마음 한쪽이 자꾸 저릿저릿.


지릿지릿.

찌릿찌릿.


합법적인 가정 분양을 하면 이런 생각을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생명은 당장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어떤 과거를 갖고 있든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애틋한 것이었다.


어떤 이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던 내내 발치를 떠나지 않던 아기 고양이를, 어떤 이는 캣맘으로 활동하다가 따라온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인다. 어떤 이는 유기묘 보호소에서 데려오고, 어떤 이는 그 유기묘의 출산을 기다려 아기 고양이를 데려온다. 또 다른 어떤 이인 나는 카페에서 고양이를 만났는데, 데려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길래 냈다. 어찌 보면 남들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인연일 수도 있다. 미분양 8개월 차 봄이는 그 어려운 틈을 비집고 내게 가느다란 끈 하나를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잡았다. 나는 그렇게 인연을 맺은 우리가 나무랄 더없이 소중하다. 나의 선택이 부끄럽지 않다.


오늘 하루 봄이는 참 많은 사고를 쳤다. 온 바닥을 화장실 모래로 범벅 친 것으로 모자라 내가 좋아하는 여인초 화분을 타고 올라 한 줄기를 씹어 먹었다. 제법 두꺼운 줄기를 야무지게 뚝, 부러뜨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닥치는 대로 식물의 이파리를 질겅질겅 씹고, 특히 친정아버지가 잘 키웠다 칭찬해 주신 바나나 크로톤에는 애꿎은 펀치와 발톱을 쉴 새 없이 날린다. 느닷없이 화장실로 달려가 하수구 덮개를 열길래 요놈 쫓아내면 그대로 싱크대 위로 돌진... 결국 내가 집을 나갔다. 내가 집을 나가야 이놈이 잠을 자지... 하루에 두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빗자루로 쓸고 똥오줌 푸고... 화장실과 싱크대 청소 시간은 세 배쯤 늘어난 듯싶다. 퇴근한 남편은 벌써 벽지가 긁혔다고 짜증을 냈다.


돈에 팔려온 고양이와 귀엽다고 덥썩 들여놓고는 화를 내며 후회하는 인간들이라니. 지독한 현실이다. 고양이와의 느긋하고 편안한 삶은 상상이나 SNS 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한번 더 고백하자면 최소한 아직까지는 봄이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끈을 잡았다. 그러니까 피할 수 없이 앞으로 가족이 될 것이다. 어떤 가족이 될 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봄이네 네 식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전 01화 고양이가 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