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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Sep 01. 2023

나의 완벽한 고양이

좋아한다고 만져도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인터넷에 질문을 올렸다.


"저의 동거묘는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쁘고 잘 생기고 멋지고 건강한, 한마디로 완벽한 고양이입니다. 그는 자존감이 강하죠. 놀고 먹고 싸고 자는 자신의 삶 그 어떤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의 외모가 증명합니다. 크고 동그란 눈, 그 안에서 빛에 따라 활발하게 움직이는 역동적인 눈동자, 한 발 한 발 사뿐하고 우아한 걸음, 살랑거리면서도 동시에 꼿꼿한 꼬리. 그의 생김이 그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목표를 향한 날카로운 질주와 이어지는 날렵한 점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캐치. 저는 지금 그의 사냥 실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뿐이에요. 한바탕 달리고 나면 그는 물을 마십니다. 후적 후적 물을 마시는 소리는 새벽에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물을 마시는 토끼의 꼬리가 바르르 떨리는 것만큼 청아하죠. 들리는 대로 말하는 것일 뿐, 허풍이 아닙니다. 똑,똑, 모래 위로 똥이 떨어지는 소리는 댕, 댕, 월정사 풍경소리만큼 시원하고요, 쉬 싸는 소리는... 네, 더러우시다니 그만하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완벽한 고양이의 똥오줌은 완벽합니다.  완벽한 고양이의 똥과 오줌을 보신 적 없겠지만.


성격도 완벽하죠. 도도하면서도 애교 있고, 쿨하면서도 따뜻한. 요즘 이런 성격을 츤데레라 한다지요? 우리 때는 외유내강이 유행이었는데.


츤츤해 보여도 용기를 내야 할 때는 그 누구보다 용감합니다. 지난 여름 어느날이었어요.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붙어있었습니다. 요즘 매미, 생긴 것처럼 참 겁도 없지요. 글쎄 이 녀석이 아파트 16층까지 날아올라와 울지 뭡니까. 뻔뻔하기도 해라.  방충망에 달라붙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집 안에서 사이렌이 울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소리에 온 식구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깼어요.  난리통에 인간들은 비몽사몽 저 놈 잡아라, 뭘로 잡냐!, 막대기! 아니 에프킬라! 없어, 효자손갖고와! 그게 어디있는데! 하면서 우왕좌왕 허우적거리는데, 글쎄  어딘가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봄이가 벌처럼 날아와 스파이더 맨 뺨치는 벽 타기 솜씨로 방충망에 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매미를 향해 타노스 건틀렛의 주먹을 날렸지 뭡니까. 나가떨어진 매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주먹에 정통으로 맞았으니 최소한 다리 하나는 부러졌을 텐데. 방충망은 찢어지고, 그 뒤로 창문을 제대로 못 열고 살고 있습니다만, 그의 용맹함은 정말이지, 천하 제일의 장군감이지요.


반면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합니다. 한 번은 제 친구가 강아지를 데리고 놀러 왔어요. 솜이라고, 꼭 솜사탕처럼 생긴 한 살 된 강아지였습니다. 놀이동산에서 할아버지들이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주던 솜사탕이요. 솜사탕 한 덩어리가 현관에서 또르르르 굴러들어 오자 제 동거묘는 재빨리 주방 레인지 후드 위로 올라갔습니다. 손님이 편히 머물다 가라는 배려였지요. 그는 솜이가 자신의 사료와 물을 싹싹 긁어먹어도, 그걸로 모자라 사료통에 달라붙어 뚜껑을 닥닥 긁어도 허허했습니다. 애정하는 카사카사와 양털공을 물어뜯어도 가만 있었지요. 솜이가 갈 때까지 동거묘는 바닥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말에 남편은 안방여포라고 놀렸지만, 글쎄요. 저는 젠틀함의 표본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얼마나 다정한 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제가 화장실에서 이를 닦거나 세수할 때, 그는 변기 뚜껑 위에 말없이 앉아 가만히 지켜봅니다. 부엌에서 요리할 때는 벽 선반 위, 설거지를 할 때는 정수기 위에 앉아 저를 그윽하게 바라보지요. 그 눈빛의 따스함이란. 세상 누가 허드렛일 하느라 종종걸음 치는 제 곁에 그렇게 말없이 정성을 다해 있어 주겠어요?  청소기를 밀 때는 집안 곳곳을 졸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러다 일이 길어지면 한 편에서 앞발을 다소곳이 모으고 꼬리를 감은 채 끝나길 기다려요. 힘들고 외롭고 더럽고 귀찮은 집안일이 그의 다정함 앞에 전부 녹아내립니다. 오히려 이렇게 한 공간에 너와 나, 이마 맞대고 가깝게 있을 수만 있다면 이 일을 더 오래 하고 싶어 집니다. 나의 삶이 점점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변하는 것 같아 그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까울 정도예요.


제 동거묘가 얼마나 완벽한지, 이쯤 되면 설명이 됐을까요? 그냥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점이 완벽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만 빼면요. 그게 말입니다... 아,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까. 음....


그러니까,

물어요.

네, 완벽한 고양이이니 이빨도 턱도 완벽하겠죠. 그 완벽한 이빨과 완벽한 턱근육으로 뭅니다.

흐음.... 꽤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 번씩 골골골골하며 제 주변을 빙빙 돌아요. 얼굴도 비비고 몸도 비비고 다리 사이로 스윽 지나가면서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저에게 햇빛을 닮은 그의 체취를 묻히지요. 그럼 저는 저는 밥 먹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외출했다 막 돌아와 화장실이 급하더라도 그 어떤 일을 하다가도 멈춥니다. 그리고 응답하라 고갱이, 세상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는데, 그렇게 5,4,3,2,1 땡 하면 갑자기 방! 시한폭탄이 터지는 거예요. 그 완벽하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나며 뭅니다. 얼마나 아픈지 저도 모르게 꽥하는 비명을 지르고 오늘은 그만, 싸웠습니다. 흔히 말하는, 단호한 '안돼!' 혹은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기 같은 방법은 이미 써봤지만 통하지 않아요. 처음에 저는 제 손이 너무 투박하고 거칠어서 그런가 싶었어요. 저는 주부거든요. 마흔이 넘어가며 제 손은 점점 옛날 배앓이를 할 때 배를 만져주던 할머니의 손처럼 두꺼워지고 거칠어지고 있어요. 내 손이 너무 아픈 걸까 싶어 자기 전에 핸드크림도 듬뿍 바르고 또 화장품 냄새날까 봐 그 손도 물로 박박 씻어 제법 보들보들하게 만들어봤습니다. 그래도 소용없어요. 손을 피하면 분이 풀릴 때까지 팔이나 종아리도 뭅니다. 겨드랑이 아래 팔뚝살이 물렸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났어요.


제가 가만있는 애를 만진 것도 아니고 제 옆에서 골골골골하며 온몸으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분명한 고양이를 만져줬을 뿐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그날 밤 달린 댓글은 놀라웠다.  


"우리 집 고양이도 그래요."라는 댓글이 절반인 것도 놀라웠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댓글이었다.


기분 좋을 때만 골골 거리는 것은 아닙니다.
설사 기분이 좋아 골골거린다 할지라도, 그게 '만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요.

경이로운 깨달음이었다.

내가 좋고 내 옆에 있고 싶고 함께 하고 싶지만 그 뜻이 '만져도 된다'는  아니다라니.


'만져도 된다' 함은, 만져달라고 몸을 내밀 때, 그것도 딱 만짐을 받고 싶은 동안만(내 동거묘의 경우 5초) 만져야 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만짐은 사랑을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폭행이 되는 것이라, 고양이는 자기 방어 차원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감히 고양이 따위가.'라는 미련하고 구차스러운 내 고집의 밑바닥까지 완벽하게 붕괴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내가 베푼 모든 '자비'에 대한 '보은'을 '당연'하게 바라고 있진 않았을까. 상대방에게 사랑이라는 포장을 씌운 시간적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자비를 내 멋대로 베풀고 나서, 너는 그것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요, 마땅히 고마워해야 함과 동시에, 그 대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으라는 복종까지 요구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 어린 고양이에게 '내가 널 이만큼 예뻐하고 좋아해서 널 만지는 거니까 싫어도 참아야 해.'라고 말하고 있었나 보다. 소름 끼친다.


나는 지난 40여 년동안 그런 세상에서 살았다. '공짜가 없는 세상'에서 살면서 '오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가야 할 것'이었다. 여기에 인간의 도리인 '염치'가 있다면, 받은 것에 마땅히 '감사'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거나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거절은 상대방의 선의와 정성 전부를 무시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사랑과 베풂을 당했으면, 싫어도 참고 받고 감사했다. 그래야 '경우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동거묘는 그 작은 이빨로 그게 아니라고, 틀렸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온몸으로 말한다.


동거묘는 타인의 마음을 넘겨짚으며 제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의 필요를 상대방에게 강요할 시간에, 내 마음부터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충실해져서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거기에 무게를 둬. 원하지 않는 것, 필요하지 않는 것, 싫은 것은 거절하는 거야. 거절에 큰 의미를 두지 마. 거절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동거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가와 골골거리고 비비고 배를 보여준다. 그리고 5초간 쓰다듬어 줄 것을 요구한다. 5초 후 허공에서 멈춘 내 손을 보고 있으면 나의 사랑이 가난하고 남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봄이가 더 이상은 싫다고 하니, 나는 참아야 한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괘씸하다. 

복수할까. 너도 나에게 딱 5초 동안만 골골거리고 비벼. 더 이상은 안돼. 흥.


하지만 그의 골골거림은 그 시작과 동시에 나의 복수심에 불씨 하나 붙지 못하게 초장박살을 내 버린다.

그래그래, 네가 다 맞아. 그러니까 계속 골골거려...

비비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비벼...

엉덩이도 얼마든지 들이밀어...

난 괜찮아.


정말이지, 완벽한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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