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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Aug 24. 2023

고양이와 산다는 것

고양이와 산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는 시구처럼,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는 이 문장을 봄이와 보내는 첫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렸다.


하루 두세 번 삽을 들고 화장실 모래를 파고 치우고, 밥그릇 물그릇을 설거지하고, 정수기를 분해 세척하고, 거실 사방에 흩뿌려진 모래를 치우고, 그 모래와 먼지, 털과 머리카락이 엉겨 붙은 청소기 먼지 통을 비우고... 식탁과 싱크대 위에 먹다 남은 음식이나 사용한 프라이팬이 있지 않도록 바지런을 떨고, 끼니때마다 스틸 소재로 제작된 인덕션 덮개를 열고 덮고, 고양이의 눈곱 콧물 침이 눌어붙은 쿠션 커버를 벗겨 빨고, 사방에 널브러진 낚싯대와 카샤 카샤, 양털공을 정리하고, 그 치열했던 사냥 처절하게 뜯겨나간 깃털과 비닐 조각, 물어뜯긴 택배 박스 잔해를 쓸어 담는다. 가뜩이나 맨살이 보이는 엉덩이가 애잔해 여기저기 방석삼아 천조가리들을 깔아놓았는데 어김없이 들러붙은 하찮기 짝이 없는 잔 털을 털어내고, 볕이 좋으면 한 번씩 뛰쳐나가니 베란다의 굳은 먼지와 낙엽, 헤집어 놓은 화분의 흙을 쓸고, 의자를 밟고 서야 닿을 수 있는 곳(주방 레인지 후드 위나 냉장고 위 같은)까지 올라가 길게 팔을 뻗어 걸레질을 한다.


심심할 때 유튜브에서 영상 좀 찾아보며 천천히 적응하면 되겠지는 뻔뻔할 만큼 안일한 착각이었다.


봄이는 호기심이 많다. 대부분 가만히 앉아 인간보다 10배 이상 뛰어난 동체시력을 발휘하며 집안일을 하는 나의 움직임을 눈으로만 지켜보지만, 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경우 기어코 일어나 폴짝 따라나선다. 꼬리는 한껏 치켜들고 엉덩이와 코를 실룩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졸졸졸... '잘하고 있나?' 감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야 뭐야?'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한없이 조용하고 날렵하여 오감이 둔한 인간인 나는 바로 발밑에 있는 이 작은 생명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발걸음과 맞물려 자주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왼발을 딛고 오른발을 들어 한 걸음을 떼는 찰나 작은 고양이가 오른발이 놓일 자리로 치고 들어오는 사고다. 하지만 정작 놀라서 소리 지르는 것은 나다. 자신보다 10배가 넘는 크기인 인간의 발에 치인 고양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유유히 걸어간다. 그러다 문득 분하다고 생각되면 걸음을 멈추고 가차없이 기습 공격을 날린다. 점프하며 발톱과 이빨을 세운다. 그 옛날 시골 마당의 사나운 닭처럼.  


고양이는 가축화된 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생성이 강한 동물이라 한다. 개보다 본능에 더 충실하다는 뜻일 게다. 항간에는 고양이의 털만 견디면 반려하기에 최적의 동물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한 달 동안 빠질 털이 별로 없는 고양이를 키워본 나의 반응은 글쎄... 이렇게 많은 고양이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남아있는 야생 본능 때문일텐데, 각종 플라스틱 장난감과 인공 모래, 사료 등으로 그 본능을 억누르거나 눈속임하고 심지어 인간이 맞춰주면서 사는 것이 정말 '최적의 반려'동물인 걸까. 모르겠다.


유튜브에서 유명한 고양이 전문 수의사(개들의 이찬종 소장과 강형욱 훈련사 같은 존재가 고양이 세계에도 존재한다)들의 영상을 보고 고양이용 장난감을 몇 개 샀다. 굴리면 벌레나 새소리가 나는 양털공을 갖고 노는 모습은 그나마 귀엽다. 다이소에서 2천 원에 구매한 갈색 깃털과 방울이 달린 낚싯대가 정말 압권이다. 대를 길게 늘여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 이는 일단 자세를 고친다. 영락없이 100m 달리기 출발선 앞에 선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의 포스다. 그는 몸을 낮춘 채 뒷다리 무릎은 반쯤 세우고 앞발은 단단히 힘을 주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는 준비 자세를 취하고 딸랑거리는 참새를 노려본다. 눈 한번 깜짝 안한 채 숨을 죽이고 있다 빈틈이 보이면 순간속도 200km/h쯤 되는 스피드로 튀어나가 낚아채는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가 사냥할 때 달리기 속도는 평균 70km/h. 30평짜리 아파트에 시속 70km/h로 질주하는 3.5kg짜리 생명체, 그것도 식탁과 책장, 테이블, 소파, 캣타워, 에어컨 위까지 가리지 않고 점프와 낙하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내 집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살게 되다니. (SNS에 사람들이 왜 고양이들이 잠자는 모습이나 멍 때리는 모습을 많이 올리는지 알 것 같다. 이 속도로 날뛰는 미친 고양이 사진은 별로 안 예쁘다.)


어린 고양이는 이렇게 사냥 (혹은 낚시)에 성공한 참새(혹은 생선)를 입에 물고 유유히 구석으로 간다. 그리고 차분히 앉아 앞발로 들고 가차 없이 물어뜯는다. 방울소리가 점점 사그라들고 어느새 윤기를 잃은 깃털은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너덜너덜해진 빈 낚싯대가 남은 뼛조각 같아 왠지 다이소 앞에 묻어주고 묵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잠자리 날개 모양의 얇은 플라스틱 조각과 폭신한 볼을 달아 흔들면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장난감, 카샤 카샤의 최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택배 상자를 뜯어놓은 것을 봐도 놀랍다. 일부러 송곳으로 구멍을 뚫은 것처럼 그 두꺼운 박스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남편은 이렇게 세게 물 줄 아는 애가 우리는 안 무니 참 감사하다, 고 한다. 아직 한 살도 안 돼서 사료도 키튼 식을 먹는 고양이가 이게... 도대체 Sweet litte kitty는 어디 있는 걸까. 엄친아처럼 남집고같은게 있는 걸까. 남의 집 고양이는 안 이럽디다... 뭐 그런.


엊그제는 밤에 가족이 모여 하하 호호 TV를 보고 있는데, 문득 모골이 송연해졌다. 남편이 봄이의 행방을 찾았다. 숨숨집에도, 밥그릇 앞에도, 냉장고 위에도 없던 고양이는 조용히 앞발톱을 잔뜩 새운 채 커튼을 타오르고 있었다. 이는 봄이의 잘못이 아니다. 봄이가 자신이 지금 오르고 있는 커튼이 세 달 전 새로 맞춘 암막 커튼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고양이와 함께 살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짐승이 발톱을 세우고 타 오르고 싶게 짜인 커튼을 설치한 나, 나의 잘못이다. 스탠드 에어컨 꼭대기에 두 발로 선 채 커튼레일과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모든 것을 고양이에게 다 내주기로 결심한다. 싹 다. 전부.

 

덜걱덜걱 에어컨이 흔들리는 소리.

갑자기 커피 맛이 좋아졌다.


방문객

고양이가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고양이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수기도 쉬울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카샤 카샤는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손이 그런 카샤 카샤를 흔들어댄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나와 남편은 오늘도 낮과 밤에 번갈아가며 무당 굿하듯 낚싯대와 카샤 카샤를 흔들고 던진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똥을 치우고 모래를 쓸어낸다. 정수기 물을 갈아주고 깨끗한 물이 담긴 유리그릇이 한층 더 반짝거리도록 햇빛이 잘 드는 위치를 골라 자리를 잡아준다. 숨숨집 입구 커튼을 잘 내려주고 얼려둔 고기 한 조각을 녹여 잘게 잘라 간식으로 준다. 후식은 직접 만든 꾸덕꾸덕한 그릭 요거트 한 스푼. 배불리 잘 먹여야 성질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브리더의 말을 되새겨본다. 새로 빤 쿠션 커버를 씌우고 눕기 좋게 토닥토닥해 놓고 커튼을 타고 올라가는 대신 스크래처를 긁으라고 은근히 코앞에 내밀어보기도 하고. 그래봤자 세상에는 스크래처보다 재밌는 게 많을 나이. 지금은 화장실로 달려가 욕조 마개와 거름망에게 시비를 걸어 2:1로 싸우고 있다.


사회화라는 작업이 불가한, 야생의 본능이 남아있는 고양이의 행태는 인간에게 신기하지만 거북하고, 재미있지만 힘들다. 인간에게는 거의 남아있지 않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봄이는 이렇게 나를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한다.  낯섬은 불편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혹시 고양이를 통해 내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는 야생 DNA가 깨어나 나는 지금과 조금쯤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인데, 나는 지금 그 어마어마한 일을 시작했다. 머지 않아 나는 어마어마한 사람이 될 것이다. 어마어마해진 사람이 사는 삶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패러디한 시의 원본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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