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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Aug 08. 2021

0. 즐겁고 재밌게 철학과 사고력 논술 배우기

초등학생을 위한 철학논술 탐험기 서문


초등학생 아들이 잠들기 전 자꾸만 '이 세상은 무엇일까?', '나는 뭘까요?'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길래 농담으로 웃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방법을 이런 기회에 시켜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이죠. 서점에 가보니 초등학생용 논술과 글쓰기 책이 서가에 그득히 꽂혀 있었습니다. 책들을 살펴보니 대개가 긴 지문이 나오고 글의 주제를 파악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지문과 관련된 글감 중심으로 쓰도록 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독해력과 작문 중심으로 구성을 해서 수학능력시험과 논술 시험 등을 미리 대비해보자!라는 의도와 파이팅이 들어간 책이었습니다.


독서 논술 글쓰기 책의 문제점

맥락없는 지문과 단문으로 사고력과 논리력이 길러질 수 있을까요?


참고서로서 그런 책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갑자기 그런 책을 주고 공부하라고 한다면? 그때 이런 서적의 문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사고력과 논리력, 상상력은 맥락없는 지문의 독해나 요점 정리 위주의 글쓰기 책으로는 길러질 수 없습니다. 잘 쓴 글이 치열한 생각과 기획하에 통일성을 갖춰 만들어지는 반면, 단문과 맥락없는 독해 위주의 지문은 창조적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없는 글이기때문입니다.

둘째, 대학 시험이나 입사 시험처럼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맞붙는 시험에서는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생각과 글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논술과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것인 동시에 매력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아이들이 하는 공부가 진학이나 취업에 국한되고 실생활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긴 인생의 호흡 속에 공부는 무용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공부는 공부일 뿐이라고 여긴 아이가 과연 앞으로도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배우고, 그 지식을 응용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철학공부를 통한 생각과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저 역시 대학 진학 이전까지 비슷한 공부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 이후, 다양한 사상가와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글쓰기는 깊어지고 생각 역시 더 넓어졌습니다. 덕분에 문학상도 수상하고, 방송사와 언론사 취업의 논술, 작문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문화콘텐츠학 박사학위를 받고 스토리텔링 책을 쓰기도 했고, 창조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필요한 방송사에서 PD와 부장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 역시 철학이 알려준 생각과 글쓰기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게 훌륭한 글쓰기를 가능케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생각은 물고기를 잡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기자의 양심이란 무엇인가?'란 주제가 시험문제로 나왔다고 해봅시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느 지문이나 책에서 배운 대로 '언론은 공기다', 또 '언론의 힘은 제4의 권력으로서, 시민의 지지로부터 윤리적 정당성과 힘을 얻는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쓰게 됩니다. 그것과 연결시켜 몇 가지 사례를 나열한 뒤 기자와 언론사에게 양심이 갖는 중요성이나, 당위에 대해 쓰겠지요. 하지만 이런 글과 흐름은 너무도 당연해서 평이한 글이 될 것이고 심사자의 눈에 전혀 들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아무리 논술 작문 책을 많이 봤다 하더라도, 양심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선 한 줄도 명확히 쓸 수 없습니다. 배운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이 시작될 때부터 아주 중요하게 다뤄온 개념입니다. 소크라테스만 해도 앎(지식)이 있으면 윤리에 어긋나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말했을 만큼, 지식과 양심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철학이 모이는 저수지라는 평가를 받는 위대한 칸트는 양심을 정언명법이라 표현하면서도 공감적 상상력으로 그 양심의 소리를 끊임없이 보편화할 것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을 한 번이라도 읽고 곱씹어 본 사람은 남들과 다른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평가자라고 한다면 언론은 공기고, 시민과 독자가 권력을 준 것이니 기자는 양심적이어야 한다... 는 수백 명이 똑같이 써 내려간 답안지에 점수를 줄까요? 아니면 앎이 양심이 될 수 있고, 그 앎은 공감적 상상력이 바탕이 된 보편성에서 출발한 양심이어야 한다...라는, 양심의 핵심 정의에서 출발한 글에 점수를 줄까요?

시험은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뻔한 답을 쓰지 않는 아이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는 데 있다고 봅니다.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철학자들이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심했던 것을 함께 의심하고 생각해 본 경험은 남들과 전혀 다른 생각의 출발점을 갖게 만듭니다. 긴 인생에서 잠깐 흐름을 놓치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도 뻔한 위로와 조언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생각하는 힘만으로 스스로 배의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즉 철학과 논술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삶을 가능토록 문제를 객관화하여 해결할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 향상에 있습니다.

진짜 공부는 그런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꼭 맞는 답을 찾아내는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의 결과를 스스로가 납득하고 남에게도 조리 있고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수백 명이 같은 답안지를 내고 넓은 길에서 서로에게 떠밀려 갈 때조차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선택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생. 떠밀리리지 않고 선택하는 삶을 살게 만드는 진짜 공부가 필요합니다.  

철학을 하기에 어린 나이는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스치듯 들었던 개념과 철학자들의 질문은 씨앗이 되어 마음밭에 떨어졌다가 어느 순간 싹을 틔우게 됩니다. 초등학생들이니만큼 철학자들의 말을 아이의 언어로 바꾸어 준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부터 한나 아렌트까지, 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 발전되어갔는지 순서대로 배우다 보면 인류 사상사를 마치 한 사람이 하는 사고의 과정처럼 알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머리가 커가며 했던 생각들이, 위대한 철학자로 추앙받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되는 뿌듯함은 사고능력에 대한 자긍심을 길러주게 될 것입니다.

철학은 당연한 세상에 의문을 갖고 동물보다 월등하게 우월한 생각의 힘을 신뢰하며, 상상력을 우주 끝까지 밀어붙이는 학문의 왕입니다. 철학을 배운 아이는 저마다 끝없이 팽창하는 소우주를 가슴에 갖게 됩니다. 그런 우주를 선물하는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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