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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Mar 10. 2020

오늘이 고통스럽다면

보통의 하루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보는데 이런 류의 대사가 나왔다.


"매일 아침 도살장 끌려나가는 것처럼 회사 다니는 당신 얼굴 보는 것도 지겹다..."


그 사람 좋고 능력 있는 박동훈 부장(이선균 분)도 아내에게 욕을 먹을 만큼

어지간히 회사 다니는 건 고통스러웠나 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어떤 날은 학교 가기 싫어 꼼지락대는 아이처럼

밝아오는 동창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때가 많았다.


왜 삶은 이다지도 고통스러운 걸까?

어쩌면 갈등과 고통의 근저에 자리한

회사가, 돈을 벌고 쓰는 문명이

실은 삶의 지루함을 견뎌내도록 만들어낸 시스템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매트릭스의 신을 닮은 로봇의 말처럼

인간에게 완벽하게 행복한 삶과 환경을 제공해주면 비실거리며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생각, 즉 왜 삶이 고통스러울까는 우리만의 새삼스러운 생각은 아니다.


Q방법론을 만들기도 했던 미디어학자 윌리엄 스티븐슨은

일과 놀이를 구분하면서 그 기준을 고통이 수반되는가로 판가름했다.


놀이엔 고통이 따르지 않고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


아무리 놀이처럼 보이는 청룡열차 타기도 관리상태 점검을 위해 탄다면 고통스러울 테니

그것은 일이 된다. 반대로 웃음이 실실 비집고 나올 정도로 즐겁다면 엑셀표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놀이가 된다.

제법 현명한 구분법이다.


고통을 주목한 철학 중에 가장 지고의 철학은 아마도 불교철학일 듯하다.

그중 불교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사성제는 고통의 현상을 구분하고, 고통의 원인을 파헤친 다음 이를 없애는 방법론을 강의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제자들에게 이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또 해탈이란 무엇인지를

오롯이 고통을 중심으로 불교철학의 정수를 세웠다.  


도덕론에선 공리주의와 칸트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공리주의가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행복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효율적인 선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보다 우리가 아는 양심에 가까운 의미의 칸트주의는

고통이 있을 때만이 진정한 도덕과 양심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란 용어로 친숙한 사드는 고통을 가하는 자와 고통을 당하는 자의 이분법으로 세계를 봤다. 인간욕구 중 가장 기본적이고 강렬한 에로티시즘에 고통을 끌어들임으로써

계급, 성별, 권력에 의한 폭력적 위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하고,

결국은 허울 좋은 근대적, 현대적, 사회적 도덕률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들 사상이 지시하거나 매개로 삼는 건 한결 같이 고통이다.


위대한 종교 사상, 육체적 성욕, 우리가 매일 뒤돌아보는 도덕관념과 양심, 그리고 회사에서의 일조차

그 끝에는 고통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안락한 엄마 품을 떠나 낯선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기에

행복 대신 고통을 가장 처음 맛본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고통의 상황을 우렁찬 울음으로 표현한다.


반면 뇌에 회로가 만들어지고 의식이 생성되고 나서야

고통의 반대편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행복의 존재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고통은 현실적이고, 즉물적이며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험적 존재다.

반면 행복은, 어딘가에 있겠지...라고 의식을 통해 추리하고 추측해야 찾아오는 관념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행복하고 싶다... 란 다짐을 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고통과 한 몸으로 태어나 고통 속에 살다가 고통 속에 가리란 것.

고통은 육체적이고 현실적이며,

행복은 관념적이고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모두가 깨닫고 있기 때문 아닐까?  


굳이 오늘의 고통에 대해

나는 왜 이럴까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선각자들이 남긴 위로가 있다면


오늘의 고통은

오늘 살아 있었다는 의미일 뿐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보통의 하루였을 뿐입니다.... 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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