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길냥이에게 강펀치 맞을 수도 있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길냥이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2부-웃음과 사건이 있는 일상
아홉 번째 이야기-길냥이에게 강펀치 맞을 수도 있지



밤 산책길에는 제법 많은 길냥이들이 산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금빛 털이 번쩍이는 치즈냥이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곁눈질을 하고, 까만 깜냥이는 도도하게 꼬리를 세우고, 발끝으로 바람을 가르듯 느릿하게 움직인다. 호랑이 무늬를 두른 호피냥이는 가끔 산책길을 가로지르며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와 묘하게 서늘한 바람, 그리고 번쩍이는 눈빛이 이 산책길을 완성한다.


한때 나는 그 무리에 홀린 듯 정신을 놓곤 했다. 꼬리는 헬리콥터 마냥 급회전을 하고, 혀끝은 바닥을 스칠 만큼 늘어져 ‘헥헥’ 거렸다. 눈동자는 ‘또르르’ 굴러다니고,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똥꼬 발랄’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 순간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양이를 보면 그저 눈빛만 주고받는다. 절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아니, 다가갈 수 없다. 서로의 거리를 지키는 것이 예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계기는 6개월 전, 한밤의 산책에서 찾아왔다. 그날 밤,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습했다. 아파트 화단 한쪽에 치즈냥이가 앉아 있었다. 며칠 전부터 몇 번 마주쳤던 녀석이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했다. 리드줄이 허락하는 만큼만 다가가려 했고, 최대한 정중하게 코끝을 내밀었다.


그런데 어둠 속의 치즈냥이는 귀가 뒤로 젖혀지고, 꼬리가 부풀어 오르더니,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다음 순간, 번쩍이는 발톱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에 어리둥절해할 틈도 없이 눈 밑이 얼얼하게 타올랐다. 피가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분명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건 아니었다. 살점까지 떨어져 나가진 않았지만 마음은 산산이 뜯겨 나간 기분이었다.


리드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라울펀치 한 방 정도는 날릴 수 있었을 텐데… 그날은 억울하게도 얻어맞기만 했다. 윤 집사 품에 안겨 귀가하는 길, 나는 온몸이 굳은 채 숨만 고르려고 애썼다.


며칠간 억울함이 가시질 않았다. 물론 먼저 다가간 건 나였다. 그리고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윤 집사도 어쩌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 치즈냥이, 분명 나를 얕봤다. 내가 리드줄에 묶여 옴짝달싹 못한다는 걸 알았을 거다. 슬그머니 다가와 반가워하는 척하다가, 그 뾰족한 발톱을 휘두른 거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길냥이들에게 나만 당한 게 아니었다. 하늘이도, 다롱이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친구 (리락) 쿠마도 어둠 속에서 뒷다리를 물려 병원 응급실에서 열세 바늘을 꿰맸다. 길냥이는 생각보다 공격적이었다.


솔직히, 나는 길냥이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나처럼 큰 덩치(비만견이니 더 커 보였을 것이다)가 자신의 영역으로 다가오면, 그건 곧 위험 신호다. 살아남기 위해 선제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고양이를 보면 먼저 멈춘다. 임계거리, 그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그 거리는 종종 긴장과 호기심이 맞닿아 있는 곳이지만,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안전하다.


강펀치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알게 된 것도 있다. 세상에는 가까이 가면 다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거리를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는 것.


오늘 밤 산책길에서도 나는 가로등 아래 앉아 있는 깜냥이를 봤다. 예전 같으면 잔뜩 들뜬 발걸음으로 먼저 다가갔겠지만,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다롱이한테 배운 대로 허공을 바라보며 못 본 척했다. 길냥이도 나를 슬쩍 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서로의 바운더리를 지켜낸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지키는 이 거리,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존중하는 가장 단단한 약속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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