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학습] 무지의 지

학습

by 오 영택

# 무지의 지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앎의 시작이다.


이를 간결하게 말하면, ‘무지(無知)의 지(知)’라고 한다. 관심 분야가 넓어질수록 공감하게 되는 표현 중 하나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각을 정립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정보들로 가득하다. 또한, 검색하거나 ChatGPT에게 물어보면 쉽게 궁금함을 해결할 수 있기에 추론이나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나 답을 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그램의 릴스 같은 30~60초의 짧은 영상들의 범람은 우리를 콘텐츠 소비자로 만들었다.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고,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만큼 깊이 생각하거나 곱씹어 볼 시간은 줄어들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앎의 시작”이라는 말은 단순한 겸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진정한 앎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 함을 뜻한다. 달리 말해, 알고 싶은 것에 대한 마음은 있는데 현재 아는 것이 미천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또한,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처럼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만 필요를 찾아 움직인다.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와 이유가 있을 때, 현재의 미미함을 인지할 수 있다.


또한, 아는 게 많아질수록 내가 모르는 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앎의 표면적이 넓어질수록 맞닿는 미지의 범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의 모른다는 사실과는 다른 아는 게 없다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이유이다.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잘 모른다’라고 겸손을 떠는 게 아니다. 아는 만큼 미지의 영역이 넓어져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극히 작은 것처럼 보여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긴 하겠지만 자신 있게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공부와 경험을 통해 세상에는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은 늘 존재하고, 안다고 자신했던 것들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 독서를 하면서 아는 것이 늘어났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겠는데?” 이 생각은 머지않아 무너졌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게 됐을 때, 바로 접혔다. 새로운 정의와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에도 벅참을 느꼈다. 이전에 알고 있던 것들도 다른 관점에서 보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섣불리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분명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면서 아는 지식의 총량은 늘어났지만 자신 있게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사라졌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떨어진 것도, 의욕이 꺾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됐다. 이전에는 시험을 위해 정해진 범위를 외우고 이해해보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인식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정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체적으로 공부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르는 것에 대해 인정할 용기를 배운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또 다른 편안함을 선물한다. 아는 척했다가 사람들이 더 물어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져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아는 척은 어디까지나 연기에 불과하기에 금방 드러난다. 반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얻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진정성 있는 태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른다고 했기에 선택지가 생긴다. 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또는 스스로 공부하며 알아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아는 척하는 순간, 선택지는 하나로 강제된다. 아는 것들을 끌어다가 얼버무리다가 흐지부지 넘어가는 방법뿐이다. 이는 창피함을 피하려다가 더 큰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 느끼거나 아는 척하는 게 들통나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아는 척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체면을 지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배움의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배움이란 결국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채우기 위해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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