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독서를 이어가다 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다. 역사를 통해서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가운데,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상황을 대표적인 사례로 살펴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친일 행위를 통해 같은 조선인을 착취하고 불신을 조장했지만, 어떤 이들은 독립운동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강조했다. 철학을 통해서는 같은 현상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결과로 보고, 계급 투쟁을 통해 사유재산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슘페터는 혁신과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람의 본성에 대해 맹자는 본성은 원래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設)을 주장했고, 순자는 본성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만 봐도 같은 상황임에도 판이하게 다른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흔히 ‘위기’라고 불리는 상황에 누군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누군가는 살아갈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결국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주장하거나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념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메논의 대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메논의 대화는 ‘탁월함(아레테)이 가르쳐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메논은 탁월함이 교육을 통해 습득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탁월함이 가르쳐질 수 있다면, 반드시 이를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이 존재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에는 확실하게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없었고, 심지어 명망 높은 정치인들조차도 자녀들에게 탁월함을 가르치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이는 곧 탁월함이 단순한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메논에게 ‘메논의 역설’을 제시한다. 그는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모른다면, 그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으며, 반대로 이미 알고 있다면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본래 태어나기 전, 영혼의 세계에서 모든 진리를 알고 있으며, 학습이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기(想起)’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메논의 하인을 불러 기하학 문제를 제시하는데, 하인은 처음에는 답을 모른다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따라가며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앎이란 단순히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사고하고 질문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이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바른 행동을 이끄는 ‘올바른 의견(정견)’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훌륭한 정치가들이 항상 논리적으로 탁월함을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하지만, 때때로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것을 예로 든다. 이러한 올바른 의견은 마치 신탁이나 직관처럼 작용하여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지만, 지식처럼 확고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탁월함은 온전히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의견을 유지하고 실천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이 일반적인 지식처럼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를 통해 ‘철학적 탐구’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는 과정이야말로 탁월함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특정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탐구하는 태도를 갖춰야 함을 시사한다. 결국, 탁월함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내면에서 발견하고 갈고 닦아야 함을 보여준다. 이를 한 줄로 요약하면 “탁월함은 가르칠 수 없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 줄로 표현되는 과정에는 긴 내용과 생각들이 세워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의 신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모습을 모방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바꾸거나 접하면서 신념을 형성해 나간다. 그러나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며 경험을 통해 내면화 과정을 거쳐 신념이 형성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처럼, 탁월함은 단순히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그렇기에 끊임없는 사고와 실천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유명인들의 모습을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고유의 것을 형성해야 한다. 모방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게 중요하다. 또한, 많이 배운 사람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며, 많은 이들이 한다고 무조건 타당한 것도 아니다. 결국,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근거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