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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Apr 08. 2024

레깅스를 입은 여자 이야기

우연히 길을 걷다가 생긴 일

길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레깅스를 입은 여자와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었다. 그 상황만 따로 잡고 본다면야 우연히 아니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나는 건강검진을 받은 후 사거리를 지나 우체국 앞 큰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으로 보행기를 밀고 있는 할머니와 바빠 보이는 학생들이 있었다. 녹색등이 켜지자 일제히 사람들은 한 곳을 향해 걷기라도 듯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각자의 방향으로 사라진 사람들 틈사이로 방금 운동을 마친듯한  젊은 여성분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색 오버핏 후드티는 엉덩이 아래로 딱 알맞은 사이즈를 유지한 체 핏의 정석을 보여주었고  검은색 레깅스는 두 다리를 더 돋보이게 해 주었다. 뭐 그냥 청바지나 면바지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얀색 양말과 하얀색 운동화까지,

뒷모습은 완벽에 가까웠다. 내 앞으로 걷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온 건 그래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체 꽤 긴 거리를 마치 행진하듯 걷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걸으라고 시킨 것만 같았다. 어깨선 밑으로 내려오는 검은색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일정한 보폭과 곧은 자세로 걷고 있는 여자는 마치 걷기 대회를 하고 있는 듯 건강해 보였다. 두 정거장 정도를 걷기까지 레깅스 여자는 앞만 보고 걸었다. 때 맞춰 지나가는 지하철도 바라보지 않았다. 사월을 가득 채운 햇살과 바람과 하얀 목련꽃과 목련보다 더 하얀 벚꽃들을 지나쳐 갔다.


어찌 된 일인지 이렇게나 긴 거리를 내가 뒤에서 따라가게 되는 모습이 되어 버려서 혹시나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 번째 신호등 앞 사거리,

이곳마저 가는 방향이 같다면 꼭 앞으로 달려가서 얼굴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레깅스 여자는 신호등 앞으로 걸어갔고  나는 좌회전하여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짧았던 순간 나는 멈칫하며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그래 얼굴이라도 보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생각이 모두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멀어져 가는 레깅스 여자는 이제 사 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옆모습을 보여주며 걸어가고 있었다.  


커피 한잔이 나오는 삼 분 삼십 초의 시간

사 차선 도로 끝 골목길로 사라져 가는 레깅스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 걸까"

"운동을 하고 오는 걸까 "


이런저런 생각들은

커피 향기에 묻혀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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