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식당에서 생긴 일
합석의 의미
앞자리에 두 명의 남자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자리에는 두 명의 여자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두 팀이 식사하는 자리 뒤편에서 무관심한 듯 두 팀을 눈여겨보며 지인분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훔쳐본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식사하는 앞자리에 그렇게 젊은 두 팀의 남녀가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난 우연히 두 테이블에서 만들어지는 묘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건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는 묘한 감촉 같은 것이어서 식사하는 중간중간마다 난 앞 테이블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은 강릉 경포대에서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두 팀은 서로를 슬쩍슬쩍 쳐다보며 서로가 두 명씩 짝이 맞다는 걸 의식하는 듯했다. 여자들의 옷차림은 10월 초였는데도 가볍게 입고 있었다. 한 명의 여자는 얇은 하얀색 카디건을 어깨선까지 내려 속옷의 레이스끈이 밖으로 보이게끔 옷차림새가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신경 안 쓴 듯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듯한 옷차림새는 그녀를 다시 한번 더 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까 얼핏 보면 상반신은 한여름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빨간 립스틱에 광대뼈에 타투점을 그려놓았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적당히 풀어헤쳐 해변가에 잘 어울려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다른 한 명의 옷차림에 비하면 순수해 보였지만 이분도 얇은 카디건에 가슴부근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있었다.
옆자리 두 명의 남자는 사촌형과 조카사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지나가다 듵었다. 한 명은 체크무늬 난방을 단추를 잠그지 않고 입었고 헐렁한 베이지색바지에 가벼운 운동화를 싣고 있었다. 그 맞은편 남자는 사촌 형으로 보였다. 상의는 푸른색 니트를 입고 있었고 역시 바지는 약간 헐렁한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두 명이 입고 있는 바지핏은 내가 입고 바지핏과는 정반대였다. 나이차이가 나는 만큼 바지핏도 그렇게 차이가 나는 듯했다. 한참 서로를 흘낏흘낏 쳐다보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때마침 한 분의 여자분이 자리를 비운사이 옆자리 남자가(그중 좀 어려 보이는 남자가) 눈 맞춤으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거의 동시에 남자와 여자는 고개를 서로에게 돌렸고 또 가장 자연스럽게 눈인사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말을 걸기까지 두 명의 남녀는 두 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을 내가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먼저 그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가 있었다. 눈인사와 미소 그다음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지인분들과의 대화보다 앞 테이블의 대화가 더 궁금해져 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자리를 비웠던 여자분 한분이 돌아왔고 앉아있던 여자분이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빨간 립스틱의 화투점을 한 여자는 카디건을 더 깊게 내려 입고 있었다. 그리곤 주의에 신경을 안 준다는 것을 내색하기라도 하듯이 핸드폰을 눈앞으로 붙여서 검색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의 남자는 빨간 립스틱의 여자에게는 쉬 말을 걸지 못했다. 좀 더 포스가 있어 보였는지 아니면 좀 더 예뻐 보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도 프로야구 일위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것인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말 걸낼 시기를 놓쳤을 수도 있을것이고 이것도 아니라면 두명 모두 빨간 립스틱의 여자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서로 눈치 채지 못하게 내숭을 떨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지 간에 빨간 립스틱의 여자는 차분하게 앉아서 하얀색 가디건을 가끔씩 한손으로 걷어 올리며 한손으론 열심히 검색을 하고 있었다. 모를것이 사람 마음 속인지라 "빨리 내게 말을 걸어 지금이 기회야 혼자 있는 시간 이때가 찬스야 어서" 이렇게 되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실한건 두 테이블 사이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강한 감정의 교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였다. 눈여겨 보지 않아도 그런것은 늘 눈에 띄기 마련 이다. 그런 묘한 감정은 잘 숨겨 지지도 않지만 오히려 숨기려 하다보면 더 빨리 번져 버려 마치 매마른 들판에 불이 번져가는 속도처럼 제어할수 없게 되버린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것은 아주 단순해서 관계로 꼬여 있는 감정이 아닌 어느날 친구와 놀러온 해변가 에서나 혹은 혼자 쉬러온 관광지에서 우연히 서로에게 관심을 갇는 이성을 만나게 되는 그 과정과 순간에 스며있는 너무나 달콤하고 황홀한 감촉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감촉은 무거운 진중함 보다는 가벼운 육감적인 것에 가깝다. 그냥 이유 없이 온종일 바라만 봐도 좋은 푸른 바다 처럼,
내가 지인분들과 술 몇 잔을 더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그 두 팀은 합석 한 체 네 명의 한 팀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치 원하던 것을 선물로 받은 말 잘 들은 아이들 같았다.어떤 분위기에 누가 먼저 합석을 제안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가게 CCTV라도 돌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쪽은 남자 둘 반대편에는 여자 둘
막 서로의 이름과 사는 곳 나이 어떻게 둘이 경포대에 놀러 왔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눈의 총기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멀리서 바라본 그 테이블에는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며 상대방에 말을 경청하며 웃으며 리액션해 주는 대화와 웃음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 숙소로 이동하면서도 한 테이블로 합석한 네 명의 남녀들의 대화와 그 이후의 시간들이 너무 궁금했다. 아마도 내가 궁금해 했던건 젊었을 때의 나는 왜 저러지 못했을까 였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 그나마 몇번 있던 소개팅 자리에서도 쭈뼛쭈뼛 말도 못하고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순백하기 짝이 없는 한사람이 생각나서 였는지 모른다. 원래 나라는 사람이 가진 소심함이 싫어서 인지도 모른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눈치를 보며 서로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모습들이 마냥 흥미로워 보였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날것 그대로의 로드 드라마 같았다. 한창 아름다울 젊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바로 눈앞에서 보는 재미는 솔솔 했다. 거기에는 남녀가 만들어가는 긴장감과 애틋함과 청순함 그리고 관능미도 있었다.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한것은 가끔 젊다는 것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게 해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순간이 그런 축에 속한다라고 말할수 있다. 관계를 궁금해 한다거나 배경을 생각 하거나 그 사람의 직업을 궁금해 하거나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그 사람의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직급은 어떻게 되는지는 별로 궁금한 생각이 들지가 않게 된다. 내 또래의 사람을 만난다거나 학부모들을 만나게 될때와는 그 궁금함 부터 달라진다. 그냥 그 사람이 가진 그 젊은 시간이 한없이 부러워서 하염없이 쳐다보게 되고 순식간에 저 멀리 지나가버린 이십대의 나의 강릉 경포대를 소환하게 해준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만큼 ,
재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에게는 그런 말로 설명이 잘 안 되는 이상한 면이 있다.
타인의 일상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일반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인간극장이나 자연인 프로의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
커피숍에 앉아 길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해변가에 앉아 놀러 나온 젊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타인의 일상에서 우리는 묘한 동질감을 얻기도 하고 격한 위로도 받게 된다.
자리에 앉아 합석하기까지 네 분이 보여준
이야기 한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