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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Aug 21. 2024

아내의 능력

아내와 시간 보내기

아내의 능력


아내는 쇼핑을 좋아한다.

어느 날은  아이쇼핑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지난주 입어 봤던 옷을 사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내들이 그러하듯이 아이들 옷이나 남편에게 어울릴 만한 옷들을 쇼핑하며 시간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아내와 쇼핑을 하는 날이면 마치 비행기 모드 아이콘 버튼을 클릭하여 쇼핑 외엔 다른 것이 접속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아내가 물어보는 "이거 어때"라는 물음에 진심을 다해 답을 한다. 아내의 민감한 더듬이에 혹여나 지루해한다거나 다른데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대한  강한 리액션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쇼핑 자체가 싫은 거는 아니어서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보다 보면 내 몸에 딱 맞는 핏 좋은 옷을 고르는 행운이 덤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아내는 무척이나 꼼꼼한 편이어서 같은 옷이라도 한 번에 사는 적이 없다. 같은 브랜드의 옷이라도 품질 차이가 난다며  여러 점포를 돌아다니며 비교를 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지역마다 있는 다른 아웃렛까지 골고루 쇼핑을 하며 비교한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  그 차이점 이란 게 보이지는 않지만 아내는 그런 작은 차이를 찾아낸다. 그건 웬만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들 이여서 물건을 파는 주인도 가끔 놀랄 때도 있다. 마침표처럼 구석에 붙어 있는 작은 얼룩과 안쪽 안감의 바느질이 볼록하게 튀어나왔다던가 왼쪽 어깨의 볼륨이 오른쪽과 다르다는 것을, 아내는 전문가의 눈으로 찾아낸다. 그건 아내의 능력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이 꼼꼼함 덕분에 어쩌면 나의 빈틈이 메워지는지도 모른다. 이런 능력은 옷에 극한 되지 않고 전자제품과 책상과 의자 그리고 화분을 고를 때도 적용이 된다. 재래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에도 아내의 꼼꼼함은 빛을 발하는데 제조일자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구성성분과 포장상태 그리고 어디 무르거나 상한 데는 없는지 하나씩 꼼꼼히 살펴본 후 필요한 만큼만  소량 구매를 한다. 좀 더 사고 보는 나와 는 다르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아내는 변하지 않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아내와 자주 가는 국숫집이 하나 있다. 아내는 거의 새콤달콤한 비빔국수를,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국물이 있는 멸치국수 곱빼기를 주문한다. 국물까지 들이켜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정도를 남긴다. 국물은 거의 먹지 않는다. 그리고 비빔국수 그릇을 내 앞으로 슬며시 밀어 놓는다. 먹으라며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맛보라는 의미로 그릇과  내 눈동자를 번갈아 가며 눈짓을 할 때도 있다. 이상한 건 배가 불러도 그 한 젓가락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안 먹어도 되는데 아내의 배려를 생각해 바닥까지 발우공양 하듯 깨끗이 비운다. 나의 버릴 수 없는, 없어지지 않는 식탐 때문 일거라 생각 들때도 있지만 부득 왜 한 젓가락을 남기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배가 불러서 일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데로 나를 배려해서 일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중요한 건 남겨진 한 젓가락의 국수는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복잡한 서울에서 지도 한 장만으로 원하는 장소를 정확히 찾아가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이다. 내가 워낙 길눈이 어두운 편인 것도 있지만 그런 것에 비해 아내는 평균 이상의 지정학적 공간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비게이션도 없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미로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뿐인가 아내의 능력 중 가장 감탄할 만한 능력은  매뉴얼과 서류를 다루는 세심함이다.

아내는 선풍기와 냉장고 때론 아주 작은 상자에 넣어 있는 제품 설명서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정독을 한다. 마치 중요한 시험 과목을 공부하듯이, 천천히 세심하게 그리고 정확히 알 때까지,

그 덕분인지 아내는 웬만한 전자제품이 고장이 나거나  TV 와이파이가 연결이 안 되거나 냉장고의 보관온도가 조금이라도 변할 때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순식간에 몰입을 한다.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겐 없는 이런 능력들은 무엇이든 대단한 이란 부사로 퉁쳐지게 된다.


아내와 처음 수상스키를 배우는 날, 그때 같이 배운 회사 동기들은 모두 쩍벌남이 되어 일어서지를 못했다. 아내는 이런 것쯤은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듯이 물살을 가르고 멋지게 물 위로 올라왔다. 아내는 지구력과 근력이 필요한 수영과 스키 같은 운동을 근사하게 해냈다.



무엇보다 아내는 주어지는 행복의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오늘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게 있어 행복이란 무척 간단하다.

아내와 같이 시간을 보내며,

아내의 능력에 감동하며 살아가는 것 ᆢ그것이 내겐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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