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 다잡기

지민이의 마음 다잡기

by 둥이

마음 다잡기


새벽 한 시가 가까운 시간,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방금 전에 확인한 시간이 열두 시가 넘었으니까 어렴풋이 새벽 한 시가 다되었을 꺼라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에 카톡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주 급한 일이 있다고 해도 회사 업무로 카톡이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카톡을 보낸 사람은 한두 명으로 좁혀진다. 난 핸드폰을 켜지 않고도 카톡을 보낸 사람을 누구일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음 분명 ♡♡가 보냈을 거야 확신을 한다.


어느 정도 확신을 갖는다 해도 핸드폰을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다른 누군가가 정말 급해 카톡을 보냈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핸드폰을 열어 보고 싶었지만 귀찮기도 하고 그렇게 늦은 시간에 또 바로 확인을 해서 보낸 사람의 수신 확인에 응답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 시간은 내가 분명 깊은 잠에 빠져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근데 어찌 된 일인지 의식이 또롯하게 시간의 흐름을 좇고 있었다.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염소 380마리와 별자리 이름들을 외워 보다가 음 그래 내가 잠들었군 이제야 잠이 들었어라고 생각하며 잠이 든 줄만 알았다. 그 순간 흐릿하게 내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의 야식을 싣고 요란하게 달려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코로 들이키는 호흡과 입으로 내뱉는 호흡이 묘하게 장단을 이루고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꼬르륵 배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뱃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라 그런지 굉장히 크게 들렸다. 위장에서 나는 소리인지 대장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다. 위층에 발자국 소리와 문 닫는 소리가 잊을만하면 들려왔다.


여기저기 잠 못 드는 밤이 지나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다행이건 겨울 이어서 풀벌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침대 위에는 쌍둥이가 잠들어 있다. 쌕쌕 거리는 숨소리가 깊은 잠에 빠져다는 걸 말해 주었다.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자세를 모로 뒤척여 오지 않은 잠을 기다렸다. 마치 오지 않는 5525번 버스를 기다리듯이, 그리고 지하철 사호선 급행열차가 제시간에 도착해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밀려드는 생각들을 지워나갔다. 생각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라서 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냥 무작정 고해성신 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잠을 쫓을수록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난 핸드폰 카톡을 확인했다.

핸드폰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시간에 카톡을 보낼 수 있는 사람 은 분명 지민일 거야 라고 생각 했었는데, 확인을 해보니 지민이었다.


몇 달 전 지민이가 보낸 카톡을 늦게 확인을 한 적이 있다. 늦게 확인을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참을만했는데, 그만 회신을 하지 못했다. 지민이는 화가 나서 다시는 고모부한테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모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효과가 있어서 난 그 날이후 꼬박꼬박 최대한 빨리 읽고 회신을 해준다. 그 많은 카톡중에서도 지민이의 카톡을 먼저 읽고 회신하는 데는 그만한 학습효과가 있었다. 나란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이런 것에 쉽게 물들고 길들여진다. 마치 수성물감 번지듯이, 놀랄만한 속도로 퍼져나가는 푸른곰팡이균처럼, 자생력을 갖춰 나간다.


지민이는 가끔 나에게 사진을 보낼 때가 있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사고 싶은 옷들을 컙쳐해서 보낸다. 고모부 이것 한번 봐봐 이쁘지

라고 보내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그냥 사진만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때는 대놓고 나 이거 사주면 안 돼라고 보낼 때도 있다. 아마도 고모부를 호구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가끔 나에게 신기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이런 건 대충 찍어도 틀리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열두 시가 넘었기 때문이다.


지민이는 올해 열일곱 살이 되었다.

더 예뻐지고 더 우아해졌다. 타고난 비율 덕분에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다. 그 와중에 고등학교 교복도 웬만한 정장보다 예뻐서 잘 나가는 카레우먼처럼 보였다. 지민이는 옷을 좋아한다. 문제는 쌓여가는 옷이 너무 많다는 것과 그렇게 많이 사들여도 줄어들지 않는 구매 욕구였다. 인터넷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는 날에는 머릿속은 하해져서 하루종일 그 옷이 생각이 나 결국엔 충동구매를 하고야 만다. 옷과 화장품과 스니커즈 운동화, 지민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지민이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물건들을 사기 위해 나름 계획을 세우고 고민을 한다. 아마도 지민이가 보낸 카톡은 인터넷쇼핑을 하다가 캡처해서 보낸 사진일 거라 생각을 했지만, 세로로 길게 늘어 쓴 카톡이었다. 그것도 이런 고민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는 내용이었다.


카톡의 내용은 첫마디부터가 지민이 답지 않게 무거웠다.


카톡은 이렇게 왔다.


"마음 다잡기가 힘들어.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 해야 할 게 많은데 마음 다잡기에 시간을 써버리면! 하고 싶은걸 다 못하고

하루가 지나가 "


이런 내용을 단어를 하나씩 밑으로 써 내려간 엄청 긴 장문의 톡이었다. 그렇니까 가로 본능이 아닌 세로 본능으로 글을 요즘 N세대들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난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지민이의 카톡을 읽고 아무 대답도 안 해주면 안 될 것 같아 꼰대 같아 보이지 않게 말을 골라 카톡을 보내주었다.


내가 보낸 카톡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마음을 잡을 수 없는 건,

모든 사람의 공통된 고민이지"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맹자도

심지어 신부와 목사도

너도 나도

주완이도 지완이도

같을 거야


다만 그 마음이 생각하는 대상만 다를 뿐이야


모두 다 마음을 잡으려고 수행을 하는 거고

책을 읽는 거고

글을 쓰는 거고

공부를 하는 거야

그 나이대에 마음이 가는 데가 다 다르거든. 70세 노인도 마음 잡기가 힘들어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지 말고

너의 마음을 이해해 봐

그리고 그 욕망(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한 가지 그래도 도움이 되는 게

(이건 모든 사람들이 마음 다잡기를 할 때 도움이 됐던)

책 읽기야

책을 읽으면 너의 마음이

한 군데 멈추게 돼

처음은 힘들어도 조금씩 마음이 동요할 거야


원래 인간이 그래

욕망의 동물이라 그래

어쩔 수가 없어


하고 싶은 게 (욕망)

해야 될 것들보다 훨씬 많거든


근데 나이가 들면

이게 반대로 되어간다

즉 욕망은 줄어들고 해야 될 것들이 늘어나지

늙는다는 게 다 나쁜 거는 아냐

욕망이 둥글둥글 해져


너무 고민하지 마 지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잖아


그 시간을 그냥 즐겨도 충분히

너의 인생은 원더풀 라이프가 될 거야


특별히 되고 싶은 꿈이 있는 것도 좋지만 그 반대로 꿈이 없이 너의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는 것도 좋은 거야


인생은 정말 복잡한 것 같아도

아주 심플해

그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거야

그래서 힘든 거야

" 마음은 "



대충 이렇게 긴 톡을 보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카톡을 읽었다는 표시로 1자가 사라졌다.


나의 긴 장문에 비해 비교적 짧은 두문장이 띠딩 들어왔다.


지민이는 바로 톡을 보내왔다.


"알겠어"

"마음먹어볼게"


역시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