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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16

시간이 빼앗지 못하는 보물

by 둥이 Ma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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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빼앗아 가지 못하는 보물이 있다.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암세포도 장인어른에게서 빼앗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습관들과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성품들은 사경을 헤매고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에게서 빼앗아 가지 못했다. 그 사람을 온전히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들은 암세포로 전이되어 없어지지도 않은 채, 지워지지 않은 흔적으로 남아 존재하고 있었다. 그 보물들은 마치 예수님의 두 손에 남은 못자국의 흔적처럼, 장인어른을 장인어른이게 만들어 주었다.


3월 20일 입원한 지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서서히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사위를 알아보고 재치 있는 농담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런 장인어른이 한없이 안쓰러워 두 팔로 와락 껴앉아 드렸다.


"어서 오게 내가 살이 좀 붙었던가 얼굴색이 보기 좋지"



마치 이런 유머감각은 기력을 잃어가면서도 이것만은 꼭 지니고 싶어 하는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장인어른은 힘든 순간순간에도 눈을 맞추며 우산모양처럼 눈꺼풀을 펼쳐 보였다. 침대에 누워 수액줄에 연결돼 있어도 언제나 몸에 베인 여유와 농담 섞인 말인사로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오지 않는 한 보여질 수 없는 성품이었다. 아마도 시간이 그것 하나만큼은 빼앗아 가지 못하게 질끗 움켜 잡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라도 하면 온전히 남아있기라도 할 것처럼,


침대에 누워 있는 장인어른은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침대 가장자리에 모로 누워 잠이 들들 었다. 이제 편하게 누워 있는 것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파란색 이불 끝으로 퉁퉁 부어오른 두발이 마치 부어오른 복어처럼 나와있었다. 파란색 이불이 짧아 보여 이불을 끌어당겨 긴 방향으로 이불을 돌려주었다. 목까지 끌어올린 이불을 덮고 있는

장인어른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순간순간 환청을 들은 건지 꿈을 꾼 건지 장인어른은 잠꼬대를 했다. 울음소리 같다가도, 누구와 대화를 하는 것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헛것이 보이는 걸까, 섬망증세 일까, 문뜩 눈을 번쩍 뜨고 침대난간을 부여잡은 장인어른은 다시 내 눈동자를 찾아 얼굴을 돌렸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집으로 가다가 어느 회사로 들어갔어 이게 무슨 꿈이야 도대체"


"집에 가고 싶으시죠 아버님 다음 주에 보내준다고 담당의사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밥 잘 드셔야 돼요"


간호사들은 수시로 병실을 드나들었다. 시간 맞춰 들어가야 되는 수액들이 많았다.  염증 수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서 항생제가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이마저도 내성이 생길까 봐 종류를 바꿔가며 투약된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수액들의 종류와 투약 시간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었다. 매번 수액을 달기전이나 혈액을 뽑기 전이나 식후 약을 전해줄 때면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았다. 장인어른은 그때마다 자다가도 시암송 하듯이 자기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이야기했다. 청력이 안 좋은데도 보청기를 끼고 있지 않을 때도, 마치 간호사의 의중을 미리 알기라도 한 사람처럼, 생년월일을 말해주었다. 정말 그렇게라도 또렷하게 대답하면 병이 낫기라도 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아주 잠시 기력을 되찾은 사람처럼 보였다.


혈액검사실에서 새벽녘 비슷한 시간에 피를 뽑아갔다. 피검사결과 헤모글로빈 수치가 급격하게 낮아져서 수혈을 해야 된다고 했다. 정상수치가 14, 어제까지는 11 정도였는데 오늘은 7 이 나왔다고 했다. 빈혈이 심해지면 쓰러진다고 했다. 혈액 담당 간호사가 태블릿피씨를 들고 와 수혈로 인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담당 간호사는 할머니가 곱게 늙으셨다고 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할아버지세요 " 난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영양제와 항생제가 계속해서 혈관 속으로 들어갔다. 저녁 무렵 체온이 37.9도까지 올라갔다. 간호사는 38도가 넘어야 해열제가 처방된다고 했다. 오래 누워 있다 보니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제대로 누워있기도 힘이 들었다.

젓가락을 움켜쥘 힘이 없었다. 난 생선가시를 발라내 죽 위에 하나씩 올려드렸다. 오물오물 입안에 맴돌던 죽과 생선이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갔다. 산다는 건 이렇게 단순한 일임을, 아프고서야 알게 된다. 먹는다는 것에 위대함은 그 어떤 언어와 문학이 가진 힘보다 강함을 알아간다. 먹기 위해, 그래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먹어야 함을 알아간다.


점심 무렵 아내가 팥죽과 찹쌀도넛을 사가지고 왔다. 장인어른은 팥죽 한 그릇과 찹쌀도넛을 조금 드셨다. 나는 휠체어에 장인어른을 태웠다. 아직은 걸을 기력은 있으셔서 조심히 손을 잡아드렸다. 아내는 장인어른의  머리를 손봐드렸다. 귓불을 덮은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정리가 되어갔다. 귀가 드러나게끔 깔끔하게 다듬어진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주만에 머리를 감고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씻겨 드렸다. 신장이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병동 복도를 걷는 것도 힘이 부쳐 숨이 찼다. 아빠의 머리를 감겨 주는 아내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다. 아마도 이게 마지막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이 오랫동안 나에게 그리움으로 찾아올 것 같았다. 14층 병동의 사람들은 자주 바뀌었다. 항암을 받더라도 이틀을 넘기는 사람은 없었다. 입원기간과 살아 있는 시간이 막대그래프로 그어 놓은 것처럼, 여명시간이 가까웠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얇은 면수건으로 장인어른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휑하니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타닥타닥 물기를 닦아 드렸다. 슬픔이 타닥타닥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장인어른은 머리를 감는 동안 바지에 대변을 보셨다. 그게 언제 나왔는지 당신 몸에서 대변이 빠져나간 것도 모르고 있었다. 먹은 것이 없다 보니 나온 것도 별로 없었고 냄새도 역하지 않았다. 나는 장인어른의 환자복을 벗겨 드렸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엉덩이를 물티슈로 닦아 드렸다. 엉덩이는 벌겋게 짓물러져 있었다. 욕창이 생긴 부위에 큰 밴드가 붙여 있었다. 물티슈를 여러 장 빼네 장인어른의 항문을 닦아드렸다. 항문 안까지 깨끗하게  닦으려면 손가락으로 깊숙이 문질러야 했다.

혹여나 아프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장인어른은 조용히 사위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렇게 되었나 내가 이제 못쓸 정도가 되었어"


장인어른의 조용한 목소리로 읇조렸다.


"아니에요 아버지 약 기운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냥 편하게 맡기시면 돼요 "


깨끗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장인어른은 침대 위로 다시 누우셨다.


평소 단정하고 깔끔하신 장인어른 성격에 얼마나 힘이 드실까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어도 사는 게 아닌 시간들이었다. 순간순간 통증이 밀려올 때면 마약성진통제가 처방되었다. 담당의사는 지금 퇴원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해주는 것들을 지금 해드리고 있다고 했다. 달리 치유를 위한 처방이 아니라는 것과 고통 없이 남을 시간을 지낼 수 있게 해 드리겠다고 항암 초기 면담 때 들은 이야기를 다시 해주었다. 슬픈 생각들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칠 때쯤,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마치 불길을 잡으려는 숙련된 소방수처럼, 슬픔은 잠시 자리를 비워주었다.


한 달, 이제 곧 사월이 온다.

그리고 햇볕이 비치는 모든 곳에 꽃이 필 것이다. 아마 그때쯤, 모든 것들이 봄햇볕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그때쯤, 장인어른은 홀연히 떠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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