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탄 사람들
휠체어에 올라탄 할머니의 등은 의자 아래로 푹 꺼져 들어갔다. 여러 개의 투명한 수액들은 일초에 한 방울씩 검은 혈관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가끔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흐릿한 시선으로 톡 톡 톡 떨어지는 수액방울을 쳐다보았다. 마치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거칠어진 호흡보다는,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액 방울들을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순간 수액 방울이 느리게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것으로 당장 숨이 멈추기라도 할 것처럼, 시간마다 힘들게 고개를 들어 링거액들을 확인하였다.
할머니는 휴지를 구겨놓은 것처럼, 둥글게 몸이 감겨 휠체어 안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작은 몸은 휠체어에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마치 화분 속 말라가는 화초처럼 보였다. 수분이 빠져버린 식물처럼, 뼈대만 남아있는 얼굴엔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14층 병동 복도를 오가며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하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삼주 가까이 장인어른 병실을 드나들다 보니 자주 보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눈에 들어왔다.
휠체어를 밀고 있는 청년의 눈매는 할머니와 닮아 있었다. 누가 봐도 할머니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표정을 잃어버린 할머니의 수척한 얼굴에 선한 눈매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앗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그대로 흔적이 되어, 할머니의 눈가와 입가에 표징처럼 남아있었다. 마치 그런 것들은 그 사람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려도, 그 사람임을 알게 해주는 눈동자처럼,
할머니와 아들은 어제도 휠체어를 밀고 복도를 서성였고, 봄 햇살이 가득 찬 휴게실과 사람들로 시끄러운 병원 일층으로, 병원 여기 저기를 소풍 다니듯 돌아 다녔다. 할머니에게 세상 전부를 보여주기라도 할 것처럼, 휠체어를 밀며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 봄햇살이 따뜻하다는 것과 미세 먼지가 심해 오 층 야외 산책로는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와 닮아있는, 보호자가 할머니와 이야기하고 휠체어를 밀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시간은 보통의 일상을 보여 주고픈 보호자의 시간과 산책한 듯 동행한다. 죽음은 암막커튼만 치면 밀치고 들어오는 햇살처럼 문밖을 서성이는 듯했다.
누구도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어쩌면 죽음은 암막커튼 뒤에서 반짝이고 있는 눈부신 햇살인지도 모른다. 마치 커튼만 치면 밀치고 들어오는, 그래서 너무 쉽게 침대밑 구석진 곳까지 어둠을 밀어내는, 너무나 가까운데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존재, 그게 죽음인지 모른다.
앞서가는 휠체어에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할머니의 하얀 머리는 오랫동안 감지를 못해 여러 갈래로 뭉쳐져 있었다. 아들은 어느새 빗을 꺼내 들고 할머니의 얼마 없는 머릿결을 빗겨 주었다.
장인어른의 시선이 자주 걷기 힘든 환자들에 닿아 있었다. 휠체어를 밀고 있는 장성한 아들과 그 안에 몸을 움츠린 채 앉아 있는 할머니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 낯선 시선이 싫지 않은 듯, 눈빛으로 위로를 보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