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호흡기를 달다.
산소호흡기를 달다.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진한 비냄새가 자욱하다. 굵은 빗줄기는 흙냄새를 토해낸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봄비를 마실 것이다. 머지않아 죽은 것처럼 누워있는 마른 들풀도 부푼 흙을 뚫고 움틀 것이다. 그렇게 소리 내며 봄은 오고 있다.
조용한 병실 안 보글거리는 기포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 소리는 가까운 어딘가에서 물을 끓이고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여왔다. 가느다란 투명 호스가 코로 연결되어 있었다. 뽀글 거리며 쉴 새 없이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으로 산소호흡기가 설치된 건 이틀 전이였다. 점점 장인어른 몸속으로 연결된 호스들이 많아지고 있다. 수많은 수액들이 번갈아 교체되어 갔고 영양제와 항생제가 계속해서 들어갔다. 모든 수치가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장인어른은 누워서도 호흡이 불편하다며 힘들어했다. 그전까지는 걷기 불편한 정도였다면 지금은 누워서도 호흡이 힘들어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간호사들은 손가락 끝으로 체내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조그만 집게장치를 달았다. 빨간 신호가 몇 번 깜박이다가 삐익 소리가 들려오면 간호사는 작은 집게를 빼내 산소포화도는를 말해 주었다.
호흡이 불편해도 체내 산소포화도는 정상수치로 나왔다. 아침마다 회진을 오는 담당의사는 간 전체로 퍼져버린 암세포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도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암세포가 심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담당의사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새로운 사실을 처음 말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두 눈에 지긋히 힘이 들어갔고, 진심을 담았다는 듯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가볍게 누르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거친 호흡이 조금은 편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빨대처럼 얇고 투명한 호스가 코로 연결되어 있었고, 계속해서 산소방울이 보글거리며 콧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그 단순함을 보글거리는 산소기포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토록 갈망한 편안한 호흡이었다. 한 번의 편안한 호흡으로 심장까지 밀치고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기체는 장인어른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편안한 숨소리가 1407호실로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이대로만, 숨이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지나친 욕심이란 걸 알아간다.
숨소리는 들숨과 날숨의 정박자 리듬으로, 오케스트라의 중후한 화음이 되어 편안함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힐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편안해 보였다. 난 편안한 숨소리와 산소방울이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들리는 소리라곤 산소호흡기에 시 기포가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밖에 없다. 간혹 병실밖 차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빼면, 지독한 침묵이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간 거친 숨소리로 힘들어하던 장인어른은 그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 산소흐흡기에 기대어 편안히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어찌 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장인어른의 통증은 짧아져 갔고 또 깊어져 갔다. 마약성진통제 용량이 계속 늘어났다. 한알이던 진통제가 한알에서 두 알로, 두 알에서 세알로, 어느 순간 수시로 진통이 올 때마다 투약되기 시작했다. 시간마다 수액으로 들어가는 진통제는 혈압과 맥박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정확히는 지금의 시간들은 진통제로 버티고 있는 시간들이었다. 네 시간 간격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누구나 그렇듯 통증이 극에 다다를 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모든 시간과 풍경이 사라진 그곳에는 오직 자기 자신만 홀로 남게 된다고 한다. 극도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져야 하는 짐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아간다고 한다. 그건 마치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연상케 한다. 어쩌면 통증과 고통은 죽음을 깨닫고 알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학교인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소설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남편인 내가 느끼는 고통이라곤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통증을 지켜보는 마음의 고통일 뿐이다. 그건 직접적 일수도 없고 보편적 일수도 없는 그냥 아픔일 뿐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고통은 오직 아내의 몫이기에 슬프다고 했다.
죽음은 창밖 햇살처럼, 커튼만 치면, 밀치고 들어올 것 같았다. 거친 숨소리만이 살아있다는 걸 말해 주었다. 이미 모든 것은 죽어 있는 듯했다. 이제는 보호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의 손을 먼저 찾아 더듬는다. 마치 그 손이 자기를 안전하게 지켜주기라도 할 것처럼, 뼈만 남은 왼손 위로 나의 손을 움켜잡는다. 어디에도 쓸려가지 않으려는 듯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그 순간 따뜻한 온기가 전류처럼 흘러든다. 살아 있다는 건 이토록 따뜻하다. 봄볕이 피해 가지 않은 듯했다. 장인어른의 손은 흔들렸고 그렇게 따뜻했다. 삶의 고단함이 배어있는 빈손 안에는 남아있는 게 없었다. 아마도 움켜 잡고 싶은 게 없어서인지 모른다. 그 긴 고단함을 그만 내려놓고 싶은지도 모른다.
죽음은 오로지 남은 자가 목도한다. 그 슬픔은 그리 길지도, 또 영원하지도, 또 빈번하지도 않다. 깊은 슬픔은 많게는 세네 번 찾아오지만, 그 외에 죽음은 빈소로만 남는다.
봄이 창궐한 어느 날엔가 장인어른은 홀연히 떠나갈 것이다.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어느 날엔가
장인어른은 그렇게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