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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그리고 마지막 호흡

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18.

by 둥이

-마지막 인사

-마지막 호흡


이른 오전 회진을 돌던 담당의사는 보호자를 급히 찾았다. 간호사실에서 보호자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은 아내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회진을 돌더라도 보호자가 묻는 질문 외엔 간단한 설명만 해주던 터라 안 좋은 소식 일 거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들었다. 오후 두 시 삼십 분에 면담이 예약되었다. 아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서둘러 오후에 잡혀있는 회의를 내일로 미루었다. 두 시 삼십 분 혈액종양내과가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와서일까 항암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암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몇 달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났다.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얼굴엔 핏기가 없어 보였다. 복도를 서성이며 전화를 하는 사람들과 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들, 하염없이 한숨을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쯤 간호사가 장인어른의 이름을 불렀다.


***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간호사는 그래야 한다는 듯이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의자에 앉으면서 습관처럼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위로 피검사 수치가 붉은 숫자로 적혀있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담당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맥박은 빨라지고 있었다. 아내는 슬픔은 댐이 무너지듯이 터져 나왔다. 흐느끼는 아내 곁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덮쳐오는 슬픔에서 아내를 잡아주어야 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몇 번의 면담에서 아내는 꼼꼼하게 궁금한 내용들을 기억하고 질문을 했다. 이날 아내는 아무 말도 못 한 체 울고만 있었다.


"이번 주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


담당의사는 피검사 염증수치가 220이 넘어가고 있다고 했다. 암크기가 커져감에 따라 폐혈증 증세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이 상태로 염증수치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온몸으로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다발성장기부전 증상이 나오고 있어서 이대로 라면 열 명 중에 여섯 명은 이삼일 내로 돌아가신다고 했다. 급하게 항생제를 바꾸었다는 것과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의 슬픔이 옮기라도 한 걸까 담당의사의 얼굴이 붉어져 갔다. 쉽게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해 주던 의사의 슬픔이 그대로 보호자에게 전해졌다. 의사도 더이상 죽음의 속도를 느출수 없었다. 몇개월간 살뜰히 호스피스처방으로 장인어른을 진찰해주었던 담당의사는 죽음의 시기가 다다랐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몇 달간 진료한 환자의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걸 느꼈다. 그것만으로 위로가 된 걸까 흐느끼는 아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이제 분초를 다투며 통증은 밀려오고 있었다. 이미 장인어른의 장기는 항생제로 막을 수 없는 단계까지 와 있었다.


가족 단톡방에 녹음된 파일을 올렸다. 그래야만 정확한 전달이 가능했다. 오늘 중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게 좋다는 담당의사의 소견을 정리해서 올렸다. 아내는 장인어른의 머리를 손질해 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렸다. 손주들을 만나기 전 가글도 잊지 않았다. 예민하고 꼼꼼한 아내의 성격은 그대로 장인어른을 닮아있었다. 아내는 향기까지야 아니겠지만, 몸에서 풍겨 나는 냄새를 지워드리고 싶었다. 아내는 발등과 손등에 로션을 바르고 얼굴에도 발라드렸다.


오후로 접어들수록 통증은 심해져 갔다. 통증은 극에 다다르고 있었고 장인어른의 세계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시간과 풍경이 사라진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자신 뿐이었다.


장인어른은 죽음의 문턱에서 딸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딸의 눈물이 아빠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정말 이대로 죽을 것 같아서 두렵고 무서웠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움 마저 가져가 주지는 않았다.


"내가 이대로 죽는가 보다. 너무 아프다."


아내는 아파하는 아빠의 몸을 부둥켜안아주었다.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었다. 서로의 슬픔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울었다. 옆침대에 누워있는 보호자도 같이 울었다. 슬픔은 너무 쉽게 우리에게 달라붙었다. 자식들이 번갈아 가며 간병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고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자식들을 보면서 자기는 왜 그 말을 못 했는지 후회했다고 했다. 손주들과 자녀들의 사랑을 받고 떠나시는 어르신은 행복하실 거라고 했다. 슬픔은 너무 쉽게 사람을 옭아맨다.


늦은 저녁 장인어른은 손주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었다. 눈을 맞추고 한참 동안 손주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두 눈에 다시 슬픔이 가라앉았다. 말라버린 두 눈에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손주들이 눈에 밟히는 걸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건네어주셨다.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른 손녀들도 장인어른 곁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게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마지막 만남 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마치 며칠은, 몇 달은, 당연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걸 믿고 싶어 했다. 허락된 며칠을 꽉 붙들고 싶었다. 시간은 이렇게 순간이 되어 간다. 장인어른을 부둥켜안고 생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들이 한 장의 이미지로 박제되어 간다. 아마도 먼 훗날 우리는, 오늘을 이야기할 것이다.


어쩌면 장인어른은 남은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호흡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단한 삶을 정리해 줄 마지막호흡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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