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20. 마지막 이야기
흙으로 돌아가리라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라.” -창세기 3,19-
벚꽃이 아름답게 피던 날 장인어른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길고 고단했을 병마의 통증을 내려놓았다. 자욱한 침묵처럼 슬픔이 스며들었다.
처남들은 예약해 둔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었다. 이제 편안히 장인어른을 모셔야 했다. 하늘길이 열리는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오른손엔 나무십자가가 쥐어져 있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기 전날밤, 신부님은 임종이 임박한 장인어른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상태가 위급한것을 안 신부님은 십자가를 손에 쥐어주었다. 장인어른은 그 십자가를 눈을 감는순간 까지 꼭 쥐고 있었다. 손의 악력이 안으로 굳어지면서 십자가를 더 세개 잡고 있었다.
그 십자가는 장인어른 손에 쥐어져 같이 재가 되었다.
새벽 다섯 시경 장인어른을 장례식장으로 모셨다.
11시나 돼서야 빈소 배정이 되었다. 영정사진을 단위에 올려두었다. 그 옆으로 하얀 국화꽃이 하얀 구름처럼 포근히 장인어른을 감싸주었다. 사진 속에 장인어른은 따뜻해 보였다. 방금 전 마지막호흡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첫날부터 빈소는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주었다. 빈소 옆으로 하얀 삼단화환들이 장난감 병정처럼 세워져 갔다. 그렇게 장인어른 가는 길이 꽃길로 채워져 갔다.
장인어른은 마지막 가는 길에 성당에서 장례미사 집전을 원했다.
부활절이 다가오는 사순절주간에는 성당미사가 안된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산본성당 신부님은 신도들과 함께 빈소로 찾아주셨다. 신부님은 장인어른 영정사진 앞에서 장례미사를 집전해 주셨다. 신부님은 장인어른의 신앙이 두 외손주와 사위에게 심어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순간 눌러왔던 슬픔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훌쩍 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자부회 형제님들과 자모회 자매들님들의 따뜻한 위로가 상처 난 마음을 토닥였다. 나누는 슬픔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장인어른의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아 보였다.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을 붙들고 있었고, 떠난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장례식장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검은 옷을 입은 상주들은 문상객들을 받고 있었다. 장례예식은 모두가 같은 모습이었다.
죽은 자와 산자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삼 일간의 시간은 마치 꿈속을 걷는듯한 시간이었다.
영정사진과 위폐를 들고 운구 앞에 섰다. 화장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운구차가 보였다. 검은 옷을 입은 상주들이 운구차 앞으로 모여들였다. 마치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남아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붙잡고 있었다. 죽은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예식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신축으로 지어진 화장장은 마치 막 개장한 아웃렛처럼 보였다. 밝고 화사한 화장장안은 향냄새도 풍겨나지 않았다. 장인어른의 운구가 화장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조회사 팀장은 일동 목례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1시간 40분
한 사람이 한 줌의 재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화면에는 소각중이란 문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한 줌의 재가 되어 하얀 유골함에 담겨 있었다. 화장터 직원들은 유골함을 열어 하얀 가루가 쌓여있는 비닐을 보여주었다. 손으로 표면을 다져주고 다시 뚜껑을 덮었다. 봉인함의 공기를 빼내 진공상태로 만든 후 질소가스를 넣어주었다. 장인어른의 몸은 하얀 가루가 되었다.
언제 가는 그 가루마저 보이지 않은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아마 그때쯤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질 것이다.
봉안실 10호
10-4-137번 장인어른을 선반 4층에 안치시켰다. 성당 연령회장이 구슬픈 위령가를 읊조렸다. 가시는 분에 대한 성당 예절은 극진했다. 슬픔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봉안실 밖은 따뜻한 봄바람에 벚꽃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변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인어른이 누워 있던 침대를 들어냈다. 그 자리를 닦으면서 아내는 한참을 울었다. 그 자리에 항상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 텅 빈자리가 되었다. 영정사진 찍을 때 입었던 옷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아내가 사준 옷들 이였다. 슬픔은 유품 속에 스며 있었다. 옷가지에 배어있는 시간들이 마치 영화처럼 생각나기 시작했다. 슬픔을 싸매 밖으로 내놓았다.
지난겨울, 따뜻한 봄이 오면 벚꽃을 보며 떠나고 싶어 했던 장인어른은 그렇게 벚꽃을 보며 흙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