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
벚꽃 엔딩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 게 될 것이다."
(요한 10, 31~42)
오늘 벚꽃이 피었다.
꽃들은 마치 오늘만 필 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그리 짧게 피고 질 것도 모르는 체 , 하얀 꽃잎을 펼쳐 보였다. 잔가지 끝으로 하얀 꽃잎들이 빼곡하게 피어났다. 누군가 나무 가지에 심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곧 하얀 눈송이 날리듯 꽃잎들은 떨어질 것이다. 아마 장인어른도 꽃잎과 같이 어느 날 떠날 것 같았다.
임종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호스피스 병원으로 전원이 결정된 건 며칠 전이였다. 전원 전까지 사흘이 남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기도 힘들어 보었다.
더 이상 다인실에서 간병이 힘들었다. 간호사실에 일인실 병실로 전실 요청을 하였다.
수액 진통제와 알약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는 통증은 임종 며칠을 앞두고 모르핀 진통제로 바뀌었다.
모르핀 진통제로 바뀐 후 혈압은 점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식이 흐려져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상태였다. 차라리 통증으로 죽어가는 것보다 모르핀 진통제로 의식이 사라지는 게 나아 보였다. 삶의 마지막 단계 장인어른의 거친 호흡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 시간마다 찾아오는 극도의 통증은 까만 입속에서 터져 나왔다. 허공으로 손을 벌려 죽여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마저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죽게 해 줘 죽게 해 줘 너무 힘들어."
죽음의 고통보다 통증의 고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의식은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었다. 극도의 통증 12시간을 난 장인어른 옆에서 간병을 하고 있었다. 모르핀량을 늘려가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호스피스로 전원 하루 전에 통증을 잡기 위해 모르핀 진통제의 양을 늘려 나갔다.
최대 하루 정해진 양만큼의 한도 안에서 0.5cc씩 최대 하루 3cc 정도까지 투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 단위로 들어가는 진통제로도 통증이 안 잡힐 경우에, 보호자의 선택으로 투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내는 선뜻 모르핀 진통제의 증량을 두려워했다. 모르핀진통제가 증량된 만큼 의식과 맥박이 떨어질 거라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의 선택으로 아버지의 시간이 더 짧아지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다.
장인어른은 밤새도록 통증으로 소리를 질렀다. 쓸 수 있는 모든 진통제를 투약했다. 12시간이 넘도록 지족 되던 통증은 다음날 정오가 돼서야 사라 지는 듯했다. 장인어른의 오른손에는 나무십자가가 쥐어져 있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신부님은 마지막 기도를 해주었다. 기도로 부족했는지 가방에서 나무십자기를 꺼내 손에 쥐어 주었다.
장인어른이 호스피스로 옮기는 날 차가운 봄비가 내렸다. 호스피스로 옮긴 그날 모르핀 진통제가 10cc 단위로 네 번 투약되었다. 다음날 새벽 02시 30분경 아내는 큰처남의 전화를 받았다. 십 분 거리에 있는 병원 이었지만, 그 거리가 길게 느껴졌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느리게 깜박거렸고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601호 하얀 병실문을 열었다.
장인어른은 평온해 보였다. 마치 잠자고 있는 듯했다. 병실 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의 소리, 죽음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난 아주 짧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죽음이 실체로 느껴졌다. 시간은 블랙홀로 빠져버린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 숨이 빠져나간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까만 입속으로 더 이상 빨려 들어가는 게 없었다. 이미 죽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무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이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내는 차가워지는 장인어른의 몸을 붙잡고 흐느꼈다. 장인어른의 오른손에는 신부님이 쥐어주신 나무십자가 있었다. 임종 그 순간까지 십자가를 놓치 않고 붙잡고 있었다.
슬픔의 고통이 몰려왔다.
숨을 쉬지 않는 장인어른의 몸은 차츰 굳어져 갔다. 심장에서 먼 곳부터 차가워져 갔다. 두발과 손등이 차가워져 갔다. 온기가 사라져 가면서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져 갔다. 살아있음은 이토록 간결하고 단순했다. 장인어른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장인어른이 이제 곁에 없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던 날, 하늘은 겨울처럼 추웠다. 봄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있었고 하얀 벚꽃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2025년 4월 15일 새벽 두 시 이십이 분
장인어른은 돌아가셨다.
그날 새벽이 먼 곳에서 오고 있었고 똑같은 하루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고 있었다. 병실 창문으로 보이는 산본성당이 장인어른에게 하늘나라처럼 따뜻하게 보였으리라,
장인어른은 벚꽃처럼 우리 곁을 떠나갔다. 나에겐 한 편의 아름다운 벚꽃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