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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M Jul 16. 2021

[4] 이야기의 괴물 같은 힘에 대하여

이야기는 외로움을 덜어주고 용기를 주곤 한다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영화 <몬스터콜>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있습니다




몬스터콜 (A Monster Calls 2016, 스페인)


감독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원작 - 페트릭 네스 <괴물의 부름> 
출연 - 시거니 워버, 펄리시티 존스, 토비 케벨, 루이스 맥두걸, 리엄 니슨
음악 - 페르난도 벨라스케스
촬영 - 오스카르 파우라
제작/배급 - 아파치 엔터테인먼트 외 4 / 포커스 피쳐스(미국), 유니버셜 스튜디오(스페인), 서밋 엔터테인먼트 (세계)


장르 - 드라마, 판타지

시놉시스 - 기댈 곳 없이 빛을 잃어가던 소년 ‘코너’. 어느 날 밤, ‘코너’의 방으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거대한 ‘몬스터’가 찾아온다. ‘코너’는 매일 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면했던 마음 속 상처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내용출처 : 위키백과



 인생은 예측보다는 대응이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련에 ‘대응’하는 자세다. 치명적인 슬픔 앞에 고꾸라져 재기하지 못하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탄력적으로 회복하는 부류도 있다. 하지만, 극도로 슬프고 비극적인 사건을 맞닥뜨릴 때 인간은 대게 도피한다. <몬스터 콜>의 주인공 코너 또한 아픈 엄마를 지켜봐야 하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몬스터와 모순 그리고 이야기]

 코너의 엄마는 암 투병 중이고 아빠는 미국에서 새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코너는 주로 그림을 그리며 곤두서 있는 신경을 달래고 현실을 버틴다. 하지만 엄마의 병세는 악화되고, 그는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한다. 코너가 의지할 대상은 하나, 그가 불러낸 상상 속 나무 몬스터다. 나무 몬스터는 코너를 찾아와서 말한다. 본인이 세 개의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마지막 네 번째로는 너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몬스터는 거대하며 그의 눈은 시뻘겋다. 한눈에 봐서는 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생김새다. 때문에 그의 제안이 코너를 위한 것인지는 불투명해 보이지만, 몬스터는 코너의 상실과 분노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돕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모순적인 이미지는 영화를 관통한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인물들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컨대 첫 번째 이야기의 ‘마녀’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고 단지 권력의 희생양이었다. 이야기는 외로움을 덜어주고 용기를 주곤 한다그것이 전하는 메시지가 수신자의 고뇌와 맞닿아 있을 때 더 그렇다이야기를 통해 코너는 자신의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바람을 수용한다. 엄마가 죽지 않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의 유예 기간이 끝나고 자신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네 번째 이야기, 즉 코너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몬스터의 압박에 의해 그는 이를 표현하며 감정의 응어리를 해소한다.  


[주인공의 연령]

 12살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특징적이다. 노련함과 경험치 없는 코너는 미성숙한 채로 곪아 있는 몇몇 관객의 내면을 대입하기에 알맞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코너에게 이입해 함께 요동치고 함께 성장할 기회를 제공받는다. 특히 코너를 연기한 배우 루이스 맥더겔의 연기는 즉각적인 몰입을 유도하는데, 슬픔과 분노가 일렁이는 눈빛이 압권이다. 영화 초반에 드러나듯 그는 혼자 옷을 입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빨래한다. 12살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나이이지만 사랑하는 존재와 이별하는 슬픔을 직면하기에는 턱없이 연약한 시기다. 아직 자립하지 못한 나이에 세상에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이의 감정과 내면에 오롯이 집중하며 그 불안과 상실과 우울과 분노의 감각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판타지와 결말]


 <몬스터 콜>은, 아이가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펼쳐 보이며 그것을 마주하고 소화하는 인물의 심리적 여정을 그려낸다. 나아가, 고난을 이겨낸 인물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는 동화적인 봉합을 거부한다. 나무 몬스터와의 교류 등 판타지를 녹여낸 이야기이지만 그 내용은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을 살아갈 동력을 얻는 이야기. 영화는 창문 너머를 응시하는 코너의 모습으로 끝이 나는데, 실제로 그 장면에서 배우의 대본은 공백이었다고 한다. 열린 결말인 셈이다. 밝은 창밖은 분명 낙관적인 미래를 암시한다. 나아가 몬스터가 엄마와 코너를 연결해주는 대상이라는 점이 드러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이때, 몬스터가 수명이 길고 흙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마치 언제나 코너의 곁을 지키고 있겠다는 엄마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는 동시에 이 영화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액자식 구성이다. 코너가 이야기로 치유 받았듯 관객도 영화를 통해 치유 받는다. 유년기의 트라우마 혹은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다가왔으리라. 죽음과 삶이 모두 등장하는 영화 <몬스터 콜>. 언젠가 우리 앞에 닥칠 시련들에 대응할 수 있게 돕는 작품이지 않을까. 


73기 하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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