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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M Jul 23. 2021

[5] 지구를 지켜라! 병구의 광기는 원인이 아닌 결과

“근데…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영화 <지구를 지켜라!>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2003, Save The Green Planet!, 한국)


감독/각본 - 장준환
출연 - 신하균, 백윤식 외 다수
음악 - 이동준
배급 - 싸이더스


장르 - SF, 스릴러

시놉시스 - 병구는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곧 위험에 처할 거라고 믿는다. 이번 개기월식까지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구에는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엄청난 재앙이 몰려올 것이다.병구는 분명히 외계인이라고 믿는 유제화학의 사장 강만식을 납치해 왕자와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한편, 경찰청장의 사위인 강만식의 납치 사건으로 인해 경찰내부는 긴장감이 감돌고 지금은 뇌물비리 사건으로 물러나 있지만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명형사인 추형사는 병구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집까지 추적해 온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강사장은 기상천외한 고문을 견딜 수 없게 되자 급기야 병구가 수집해놓은 외계인 자료를 훔쳐보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제 승리는 누가 상대방을 잘 속여 넘기는가에 달려있다. 외계인의 음모를 밝히려는 병구와 외계인(으로 추궁 당하는) 강사장의 목숨을 건 진실 대결. 과연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병구는 개기월식이 끝나기 전에,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내용출처 : 네이버 영화




 ‘포스터 때문에 망한 영화’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 2003년에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으로, 작년 미국에서의 리메이크가 결정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 이 영화를 두고 비운의 명작이니 과대평가된 평작이니 평가가 엇갈리지만, 어떻게 보았던 영화의 반전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러닝타임이 약 5분 정도 남은 시점에 밝혀지는 이 반전은 허무하고 어이없고 황당하다. 그러나 결국 이 황당한 결말이 영화의 메시지를 완성한다. 지금부터 <지구를 지켜라!>의 결말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안드로메다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에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라 믿는 병구(신하균)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외계인 강 사장(백윤식)과 대립하는 내용이다. 영화의 반전은 이 모든 게 병구의 망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 사장은 실제 외계인, 그것도 안드로메다 PK -45 행성의 왕자였다.



 병구는 언제부터, 어째서 외계인의 존재를 믿었는가. 외계인은 병구가 내린 나름의 답이다. 병구의 피폐한 삶은 대체로 병구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은 그에게 언제나 폭력적이었고, 병구는 마땅한 이유 없이 괴로웠다. 이유를 찾아 헤매다 결국 병구는 이 모든 게 외계인의 소행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을 모조리 외계인으로 뭉뚱그려 이해한다. 강 사장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영화는 이 모든 게 병구의 망상이라고 믿게 만든다. 병구를 뒤쫓던 추상철은 그가 떨어뜨린 약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심한 우울증이나 화병에 쓰는 거야. 쉽게 말해서 병원에서 주는 히로뽕이지. 세 알만 먹으면 세상이 다 내 거야.”



 병구는 세 알만 먹어도 세상이 제 것으로 보이는 각성제를 모조리 털어먹는 등 약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를 멋지게 제압하며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는 상상을 하는 병구를 보며 그를 약에 취해 망상에 사로잡힌 인물이라 생각하게 된다. 병구의 망상은 복수를 위한 핑계이자 현실 도피를 위한 수단이다. 배경은 주로 병구의 집 지하인데, 그곳에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욕망한다. 자신을 버린 세상에 복수하고 싶고 또 인정받고 싶은 병구의 욕망이 지하에서는 마음껏 분출된다. 늘 주눅 들어있는 밖에서와 달리 지하에만 오면 꿱꿱 고성을 내지르기 일쑤이며,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외계인이라는 명목 아래 묶어두고 고문시키며 잔인하게 갚아준다. 현실에서는 동네 양아치에게도 무시 받는 무력하고 나약한 인물이지만, 지하에서 병구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킬 유일한 ‘영웅’이 된다.



“우습지, 나 같은 놈이 이러는 거. 무슨 미련이 있다고. 
하지만 곧 달라지겠지. 누가 지구를 구했는지, 누가 진짜 영웅인지 알게 되면 말이야.”



 영화 내내 외계인은 병구의 망상이라고 믿던 관객들은 나름 충격적인 결말에 뒤통수를 맞는다. <지구를 지켜라!>의 결말이 반전이었던 이유는 우리가 영화 내내 강 사장의 논리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구를 연민하면서도 그를 믿지 않았고, 강 사장을 비난하면서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반전이 있기 전까지 영화는 병구가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미쳐버려서, 외계인을 믿는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말을 통해 영화는 앞 문장의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다. 병구가 미쳐서 외계인을 믿는 게 아니다. 외계인이 병구를 미치게 만든 것이다. 병구의 믿음은 패배자의 현실 도피적 망상이 아니라 진실이다. 모든 일의 원흉은 병구의 광기가 아니라 외계인의 실험이다. 즉,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외계인의 실험대상이었던 병구와 병구의 어머니. 이들에 의해 병구와 가족의 삶은 완전히 망가진다. 이 반전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강 사장이 외계인이라는 증거가 보인다. 초반에 술에 취한 강 사장이 외계어로 중얼거리는 장면, 200V 고압의 전류에도 멀쩡히 살아있는 장면 등…. 다시 보면 병구의 확신에 찬 말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아주 황당한 결말도 아니다. 



 18년 전 개봉한 영화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건 여전히 영화의 메시지가 통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말을 통해 사태의 원인으로 개인의 광기가 아닌 강 사장, 즉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 시스템을 지목한다. 자본주의, 능력주의…. 사회는 언뜻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개인의 실패와 고통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적절한 논리로 움직인다. 영화에서 병구의 과거를 알고 난 뒤 강 사장이 “근데 그게 내 탓이냐?”라고 외치는 것처럼, 약자의 발악에 사회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노력을 안 해서, 네 능력이 부족해서, 네가 경쟁에서 밀려서…. 그리고 이 대답에 순응하는 우리가 있다. 외계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병구의 말은 그저 망상에 빠진 패배자의 헛소리로 치부하면서 말이다.


“근데…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


결국, 병구는 죽는다. 마지막까지 지구를 위해 싸우다가 비운의 용사처럼 죽어간다. 병구는 현실 사회의 곳곳에 존재하지만, 현실의 강 사장은 외계인이 아니다. 영화처럼 병들었다는 이유로 지구가 없어지지도 않는다. 외계인도 없고, 지구가 폭발할 위험도 없는 현실에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지구를 지켜야 하는가? 분명한 건 우리도 병구처럼 강 사장의 발등을 때밀이로 빡빡 문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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