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 영화 <조커(2019)>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조커]의 주제의식은 “선량한 개인이 어떻게 악인이 되었는가?”다. 아서 플렉은 첫 범죄를 저지르 기 직전까지 영화 내에서 철저히 피해자로 그려진다. 그리고 첫번째 범행 이후에도 아서 플렉이 겪는 일들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면서 그의 삶은 더욱 비참하게 변한다. 자신을 아껴주고 자신이 부양해야 하는 존재라고 여겼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의 삶을 가장 망가뜨린 원흉이었음을 깨닫 는 등 순간적인 살인의 쾌락과 해방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상황은 악화된다. 어머니를 죽 이고 그를 찾아온 전 동료 마저도 죽였지만 조커로서 완전히 각성하기 이전의 아서 플렉은 자신 의 우상이자 아버지 같았던 머레이 프랭클린을 만나면 기뻐했고 더 많은 범죄를 꿈꾸는 것이 아 닌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매듭지으려고 했다.
완벽하게 짓밟힌 아서 플렉의 삶을 그려내지만 감독은 단순히 그를 동정하는 대신 아서 플렉이 온전히 선량했는가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았다. 바로 그에게 망상장애라는 특성을 부여한 것이다. 망상장애로 인해 연인으로 착각한 이웃주민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을 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살인의 순간 마저도, 그저 피해자처럼 보이는 그가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의 가해자가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게다가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을 통해 끝내 이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보여준 영화의 암울함이 진정으로 그에게 닥친 불행이 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악의 탄생에 대한 경각심이라는 의도와 다양한 해석의 가 능성이라는 영화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감독의 좋은 판단과 이를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을 배우의 명연기로 [조커]라는 영화는 명작의 반 열에 성공적으로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이 지닌 모호함 속에 남아있는 악 에 대한 미화로 인해 많은 미국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배우가 직접 이 러한 비판이 기우에 불과하고 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라고 불평하기도 했을 정도로 나름의 이슈가 되었다. DC 코믹스에서 가져온 ‘조커’라는 캐릭터의 고유한 특성인 혼돈과 광기를 묘사함에 있어 본래 만화 속에서 어디까지나 영웅 ‘배트맨’에 대항하는 반동인물에 불과한 그를 주인공으로 격상하면서 악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악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에 대항하 는 정의가 되려 패배하는 연출로 악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번 주제를 진행하기에 앞서 몇 가지 정리해둘 것이 있다. 첫째로 감독이 의도적으로 이 모든 것이 아서 플렉의 망상인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으나 이웃과의 연애 처럼 명확히 아서 플렉의 망상이었음을 보여주지 않는 장면은 전부 사실로 간주할 것이다. 다만 끝의 상담장면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상담사를 죽이지 않았다고 가정할 것이다. 둘째로 아서 플렉이 토마스 웨인의 친자인지와 무관하게 페니 플렉이 과거 정신병동에 수감되었을 당시 기록된 정신질환 및 아서 플렉에 대한 학대는 사실로 취급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량 충돌에서 크게 다치지 않거나 총알 수가 안 맞는 등의 비현실적인 문제들은 무시할 것이다.
우선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의 정의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이 해당 유형에 속하는지 보일 것이다. 실제 진단을 위해서는 PCL-R과 같은 공인된 검사 과 정을 거쳐야 하지만 여기서는 공유하는 특성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서 플렉 개인의 사례에 국한하지 않고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으로 분류되는 범죄 유형에 대해 일반화하 여 이러한 범죄 행위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상황 등 외부 요인과 유전 인자 등 내부 요인들을 정 리해볼 것이다. 최종적으로 범죄자의 행위에 대한 개인의 책임과 사회가 제공하는 처벌의 타당성 에 대해 과학적 측면과 윤리적 측면을 두루 고려하여 숙고해볼 것이다.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감정 공감 능력의 결여, 죄의 식 부재, 강한 충동성과 공격성, 병적인 거짓말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 학대나 부모의 부재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던 경우가 많고 중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다양한 크고 작은 범죄 행위가 전조증상처럼 나타난다. 외부적 요인 이외에도 뇌 신경 과학 연구를 통해 전두엽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해 축소되어 있는 등 유전 생물학적 요인도 일부 파악할 수 있다. 실제 사회에서 약 1% 정도의 사람들이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중구금시설 재소자 중 비 율은 80~90%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인 범죄는 그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한 사건에서 발생한 피해자 수에 따라 1명이면 단일살인, 2명이면 이중살인 등으로 구분하고 ‘연쇄살인’은 각각의 범행 사이에 시간적 간격과 공 간적 분리가 특징이다. 이러한 시공간적 공백이 없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여러 사람을 죽이는 경 우는 다중 살인 등으로 분류한다. 이 때 시간적 간격을 ‘심리적 냉각기’라 칭하는데 범인이 범행 이후 만족감을 얻고 다음 범행을 계획하기까지의 시간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연쇄살인 범죄는 명확한 대상을 지정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범인이 적절한 대상을 발견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범행을 미루기도 한다.
아서 플렉은 유아기부터 학대를 당했다. 이에 따른 신체적 상흔이 남아있고 여러 정신질환과 장 애를 앓고 있다. 정상적인 교감이 가능한 부모의 부재로 인해 정서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했고 이로 인해 공감 능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또한 범행 이후에 만족감과 해방감을 느끼는 등 죄의식이 결여된 모습도 보인다.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계속해서 공격하는 등 충동 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병적인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나 공식적인 과거 범죄 이력은 없으나 불쾌한 상황에서 주변 사물을 파괴하는 식의 경미한 범행이 목격된 바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아서 플렉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사건 발생 시기를 보면 각각의 범행 사이에 명확히 심리적 냉각기가 존재한다. 범행 대상을 적극 적으로 물색하는 대부분의 연쇄살인범과는 달리 각각의 범행이 모두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던 첫 범행을 제외하면 범행 대상이 모두 자신에게 지속적으 로 무례한 사람이었다는 점과 치밀한 계획이 연쇄살인으로 분류함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특이한 사례이기는 하나 기존의 분류 체계에 따라 연쇄살인으로 분류하기에 큰 무리가 있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아서 플렉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연쇄살인범으로 소위 말 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대한 정의에서 다뤘듯이 ‘사이코패스’는 전두엽 등의 뇌기능에 문제가 있다. 외부 충격에 의한 손상의 가능성도 있지만 대개 유전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문제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러한 뇌 구조를 지닌 모든 사람이 연쇄살인이나 기타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성장과정에서 가정환경이 어떠했는지 혹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그저 공감 능력이 부족 한 사회인이 될 수도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우세하다고 정량적으로 비율을 정하기는 어려우나 유전적 요인이 외부 요인보다 시간 순서상 우선한다는 점에서 내부 요인이 더 주요하다 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까지는 악의 탄생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유전자와 사회적 환경 중 어느 쪽이 개인의 행위에 더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하지만 양쪽 모두 개인이 선택하거나 조절할 수 없 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들이다. 둘 다 자아가 생기기도 전에 결정되는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책임과 처벌은 이 두 항목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책임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은 외부 환경이나 유전자는 통제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내면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내 면에 대한 통제는 자유의지를 의미한다. 요약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외부 조건 속에서 죄 를 짓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형사사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언행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법률 에 정의된 행위능력 등의 개념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자유의지에 대한 막연하고 도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고 각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따른 결과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전히 그러한 믿음을 지닌 자들이 많지만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결 과들이 나오고 있다. 무의식의 영역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며 자의 식 내지 자유의지는 아예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미약할 것이라는 주장이 점차 주류 의견 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태어남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운명론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자유의지와는 다른 ‘뇌 가소성'의 개념을 통해 뇌의 구조가 인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뇌과학자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인간이 자유의지로 행동한다는 전통적인 입 장을 뒤집고 개인의 의지에 기대는 것이 아닌 외부적 환경을 통제하여 뇌 신경회로를 바꾸는 등 의 변화 방식이 더욱 현실성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이와는 반대되는 입장을 지닌 전통적인 입장의 학자들도 많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 범죄 심리학자들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많은 사람들 중에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일부이고 죄를 짓기 로 결정하는 행위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들은 자신의 행 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적 요소 등에 의한 불가피한 사례 등을 인정하여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죄를 짓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구분하고 죄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을 견지한다.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당장에 결론이 지어질 단계는 아니지만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는 만큼 지금의 형사사법 제도는 그 정당성을 위협받게 된다 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여태까지 다룬 주제는 자유의지의 과학적 실체와 책임이라 는 도덕적 의제의 대립에 한정되었지만, 과학은 본질적으로 인과율에 따라 사건을 설명하는 학문 이고 옳고 그름에 대한 당위성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관념과 도덕률 등이 흔들리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 서는 많은 양의 논리적으로 정교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70기 강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