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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M Aug 31. 2023

[1] 완벽한 서사를 위한 2가지 법칙

<쓰리 빌보드> 그리고 <아메리칸 뷰티>


    모든 영화는 저마다 장점이 있다.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 출중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영화, 스

토리 라인이 첨예한 영화. 이 글은 그중 이야기를 주안점으로 삼아, 완벽한 서사를 구현하기 위해

서 어떠한 방법을 쓸 수 있는지 소개한다. 앞으로 나열될 두 소제목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얼마

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혹시라도 시나리오를 쓰느라 골머리를 앓는 독자가 있다면 후

술되는 내용을 눈여겨보길 조언한다.


첫 번째: 심리를 관찰해라 

    자, 아무거나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떠올려보자. 그 영화에는 우선 인물과 그 인물을

추동하는 주요한 욕망이 등장할 것이다. 이야기에서 목표 없는 인물은 조명할 가치가 없으므로,

모든 인물은 반드시 불완전하며, 불완전함으로 인한 결핍을 소유 중이고, 그 결핍을 메꾸기 위해

하나의 목표를 세워 나아간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발단 과정이다. 발단을 구상하는 건 신선한 아

이디어 하나로도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존경하

는 작품과 맞먹을 만한 수작을 계획 중이라면, 어떤 전개 과정을 거쳐 어떤 결말로 마무리지을지

정할 때부터는 상당한 노력을 요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에 관해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필자의 편파적 애정이 담긴 사견으로, 맥도나는 캐릭터 간 관계성을 세상에서 가장 잘 이용해

먹는 감독이다.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밀도 있는 욕망과 기저심리에 기반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예측불가하고, 절대적인 선악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쓰리 빌보드>는 이러한 맥도나적 서사

의 특징을 분석하기에 좋은 예시다. 영화에는 강간살인사건으로 딸을 잃은 밀드레드, 경찰서장 윌

러비, 백인우월주의자 경관 딕슨이 등장한다. 밀드레드는 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광고판을

마을 어귀에 내걸어, 세간의 관심과 경찰을 비롯한 주민들의 빈축을 동시에 산다. 이 발단 이후에

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뻔한 복수극일 것 같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예측불가성을

내세워 관객을 쥐락펴락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사실들이 정말 중요할까?  

<쓰리 빌보드>를 보면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윌러비의 죽음 이후 밀드레드와 딕슨, 두 앙숙이

겪는 심리 변화다. 밀드레드는 그녀를 추동하는 분노 그리고 죄책감과 함께 움직이며 법에 저촉

되는 사적 복수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딕슨은 레이시스트와 호모포비아 타이틀을 겸직하며

약자들을 못살게 굴면서도 비뚤어진 인정 욕구로 인해 집에서만큼은 한낱 마마보이로 전락하는

인물이다. 딕슨은 윌러비를 비난하는 밀드레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밀드레드는 주어진 일도 제대

로 해 내지 못하면서 경찰이란 이름표를 앞세워 시시껄렁하게 구는 딕슨이 꼴사납다. 한데 재밌

게도 이 대립 양상은 몇 가지 오해와 착각을 거쳐 흐릿해진다. 밀드레드는 딕슨이 범인을 잡기

위해 행하는 노력을 보며 그에 대한 생각을 약간은 수정하게 되고, 딕슨은 기존의 태도를 바꿔

그가 점찍은 용의자 단죄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렇듯 두 캐릭터의 관계가 마이너스에

서 0을 넘어 플러스로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납득 가능하도록 설계한 감독의 노력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이다. 인물의 배경을 입체적으로 상정하고, 기저심리를 상상하고, 그를 바탕

으로 인물들의 심리적 동선을 미리 예측해보는 것. 쉬워 보이지만 뛰어난 통찰력과 수없는 연습

을 요구하는 단계다.


    맥도나는 인물들을 촘촘히 엮고 나서야 영화의 진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분노는 분노

를 낳는다(Anger begets anger)’는 지극히 뻔한 격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외치는 위로의 대목

이기도 하다. 되갚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의 고통과, 서로가 살아가는 삶의 기제를 있는 그

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상호작용이다. 때로는 그것을 베푸는 당사자조차 영문 모를 헤아림과

아량이 이야기를 매듭 짓는 열쇠가 되곤 한다. 밀드레드가 경찰서 방화범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와 함께하길 선택한 딕슨처럼. 옆 병상에 들어온 환자가 자신을 2층에서 밀어 떨어뜨린 딕슨

임을 알면서도 그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네는 레드 윌비처럼. 어떤 비극의 결말은 관용이며 분노

의 해체 도구는 비로소 사랑이다.



두 번째: 아이러니를 활용해라

    이제 인물에서 상황으로 시선을 확장해 보자. 샘 멘데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1999)는 색채 대비부터 프레임 속의 프레임 연출까지 다양한 미장센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의 서사적 매력 포인트는 바로 ‘상황적 아이러니’의 쓰임새다.  

상황적 아이러니란 말 그대로 긍정과 부정, 양면의 정서를 동시에 지닌 아이러니가 특정 상황

에서 발현되는 것을 뜻한다. 영화 속 아이러니한 진행에는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하는데, (1) 항상 원

하던 것을 손에 넣었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어버린 경우, (2) 목표를 향해 열심히 돌진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줄곧 곁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 (3) 목표를 위해 한 행동이 오히려 거기서 멀

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던 경우, (4) 거부했던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던 경우 등이

그 예시다. <아메리칸 뷰티>에 등장하는 레스터, 캐롤린, 제인, 안젤라, 심지어 리키의 아버지 프

랭크까지 대부분의 인물이 이러한 아이러니를 수반한다.  


    먼저 주인공 레스터를 추동하는 것은 딸 제인의 친구 안젤라를 향한 성적 욕망인데, 영화의 후

반부는 전반부의 이 주된 목표를 완전히 꺾어버릴 뿐만 아니라 그 좌절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일

궈 낸다. 몰락해가는 중산층 가장인 그는 안젤라와 관계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며 피폐했던 지

난 날을 뒤로 하고 진정한 자아 찾기에 돌입한다. 그러나 정작 기회의 순간 레스터가 안젤라를 놓

아줌으로써, 지금껏 그를 채찍질해 온 욕망과, 그동안 이 영화가 목적해 온 서사의 주축은 무너지

고 만다. 안젤라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중후반부까지 자신을 선망하는 남자들과 자고 다

니는 연애박사 흉내를 내며 제인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첫경험도 안 해봤으며

제인과 비슷하게 자존감이 낮은 소녀에 불과하다는 진실이 밝혀진다. 이처럼 영화가 진행되는 동

안 레스터와 안젤라는 각각 아이러니를 수행하며, 이 둘의 관계 역시 ‘줄곧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왔으나 더 이상 그것을 추구하지 않게 된’ 상황적 아이러니에 해당한다.

    서브 캐릭터인 프랭크의 아이러니도 꽤나 흥미롭다. 그는 군인 출신으로 옆집에 사는 게이 부

부를 대놓고 혐오할 만큼 보수적이며, 엄격한 성격을 휘둘러 아들 리키를 정신병원으로 내몬 전

적도 있는 흉폭한 인물이다. 이런 그가 리키에게 “인생에는 틀이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해당 대사는 프랭크가 자기 삶 속에 틀, 즉 ‘성소수자는 비정상적이며 모든 인간은 이성애

라는 당연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내재화한 채 살아가는 중임을 암시한다. 이후

절정에서 프랭크 본인이 게이였다는 반전이 등장할 때, 관객들은 앞선 대사가 실은 리키가 아닌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세뇌였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결국 프랭크는 평생 그 틀 안에

갇혀 자기 자신을 억압하고 증오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때 아이러니는 충격적인 진실과 더불어

인물의 행동심리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이중적 도구로 기능한다.


    <아메리칸 뷰티>에 쓰인 모든 형식적 아이러니는 곧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직결된다.

인물들은 영화 내내 스스로 지어낸 틀의 붕괴를 목격하고, 깨진 알 껍질 속에 잠들어 있던 본인

의 실체와 대면한다. 줄곧 구축되어 온 이미지를 깨뜨리는 이 반전의 연속을 경험하며, 관객 역시

개인의 주체성과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정확히 영화가 의도한 대로 말이다. 만

약 당신이 주제와 형식이 합치된 서사를 희망한다면, 아이러니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라.



결론 

    소설이든 영화든 관계없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생활상을 담아내는 창구였다. 혹

자는 각본의 중요성을 경시하기도 하지만, 서사가 면밀하게 직조될수록 작품에서 우러나는 애착

의 밀도 또한 깊어진다. 우리는 잘 쓰인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체험하고, 캐릭터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아가 그들이 사는 허구적 세계에 삽입되길 욕망하거나 혹은 그 사회

의 추악한 본질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이 마법적인 효과는 서사가 가진 힘인 동시에 영화가 제공

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의 기틀이다. 그러니 위대한 창작의 첫 걸음은 인간이란 동물의 내면을

그만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재해석할 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당신에게 맥도나와 멘데스의 가호

가 깃들길!


71기 최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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