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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겪어야만 아는 아이

30년 입어야 할 자켓

by Funny Mar 17. 2024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들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로, 콘센트가 위험하다고 말해주면 그런가보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여자아이고, 굳이 콘센트에 젓가락을 쑤셔보고 그제서야 아, 위험하구나를 깨닫는 것이 남자아이라는 걸 들어 본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듣는 순간 나는 남자아이인가? 싶었다.


위험하다, 알아서 좋을 게 없다, 도움이 안된다, 크면 안다, 이런 말들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말 인지 궁금하게 되고, 한번 궁금하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말해주지 않으면 몰랐을 텐데 위험을 경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보제공의 장이 되기도 했다. 불량학생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금지된 담배와 술을 마셔대는 것만 봐도 경고는 오히려 선전효과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15세 미만 시청금지 공포영화를 본 꼬맹이는 수개월간 귀신이 무서워 목욕을 하는데 두려움을 떨었고, 몇 년 동안 이불로 발을 꽁꽁 싸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 경험들이 하나 둘 쌓이고 쌓여도 금붕어 처럼 잊어버리고 호기심에 지고는 했다.


아직 나이로 사람들과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른 경력이 미성년자 경력과 비슷해지다 보니, 호기심보다는 편견과 지레짐작으로 인한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이 늘어간다.


여행을 갈 때 분명 해당 도시의 일주일간의 날씨를 찾아봤었는데, 그 것 또한 편견과 지레짐작의 한 종류 인줄은 몰랐다. 봄날씨 같은 일기예보를 보고 따뜻한 옷들은 과감하게 다 뺐는데, 그 다음주의 날씨는 영하였다. 한국에서도 삼한 사온이다, 꽃샘추위다, 날씨가 널을 뛰고 있다. 매주 평균기온이 아주 다른데 다른 나라에서는 1주일 정도 기온을 체크했다는 것 만으로 날씨는 충분하게 안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나 오만한 지레짐작인가.


하지만 괜찮다. 이런 일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예측하고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겠는가. 닥쳐오는 일들에 조금은 불합리하고 낭비가 있어도 그런가 보다하고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당장 유니클로로 달려갔다. 한국에서 국뽕에 차오르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지만 현실에서 유니클로 자라 말고는 보이는 옷브랜드는 없었고, 추워서 감기가 올 것 같고 밤에 잠도 잘 수 없었기에 보온성이 있는 옷을 팔 것 같은 아는 브랜드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유니클로 내부는 아주 익숙하다. 가난한 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유니클로는 나의 놀이터였고, 퇴사를 꿈꾸기 시작하고는 입사 지원을 하기도 했었던 그런 곳이다. 매주 유니클로의 치라시를 보며 유일하게 맘껏 살 수 있는 브랜드의 옷들이 세일 하는가 확인했고, 한국에서 돌아와서도 세일 정보를 확인하고 원하는 모델의 사이즈를 사기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뒤져보던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미국 유니클로 내부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똑같은 유니클로의 냄새가 났지만, 규모도 어느정도 컸지만, 유니클로에서 팔아야할 따뜻한 옷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데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이정도의 기온은 봄인 건지 온통 봄옷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하긴 나는 패딩을 입고 있지만 낮에 조금 기온이 오른다고 현지인들은 브라탑을 내놓고 있는 것을 많이 보기는 했다. 그래도 지하에는 오히려 재고가 된 겨울 옷이 많이 있겠지 세일코너에 쌓여있을 바구니를 노려야겠다.


그러나 세일 바구니는 없었고, 세일 행거에는 6개 정도의 옷이 쓸쓸하게 걸려있을 뿐이었다. 일본과도 한국과도 너무 달랐다. 겨울옷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몇 종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고르지 않았을 라이트 다운 자켓이 세일 중이었다. 60달러라니 너무 비싸지만 그래도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낫다. 80달러위에 세일 가격이 60달러라고 빨간색으로 붙어있는 것도 확인 했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색깔을 꼼꼼히 고르고 사이즈도 여러개 입어보고 결제를 했고 허리춤에 옷을 묶어 추운 하반신에 온도를 더했다.


다운타운에서 돌아와 저녁에 먹을 식재료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유니클로에서 결제한 금액이 이상하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는 60달러 다운 자켓과 세일하는 폴라를 10달러에 샀는데 100달러를 계산했다. 70달러보다 무려 30달러가 더 많다. 뭐지? 미국은 이것저것 다 엉망 진창이라 세일이 적용이 안된 것인데 서두르다 결제를 하고 온 것인가? 전화도 없는데 어떻게 전화해서 보상받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숙소에 돌아오자 마자 쓰레기통을 뒤져 영수증과 태그를 찾아냈다. 영수증에는 당당히 원래 가격 80달러가 찍혀 있었다. 역시 세일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빨간색으로 가격이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 하고 산 것 인데 내가 산 옷의 태그에는 가격이 바뀌어있지 않다. 


현지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미국의 유니클로에서는 혹은 미국에서는 색깔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한다...


……그렇구나. 미국은 자본주의의 나라라 옷의 모델이 같아도 색깔에 따라 가격이 다르구나. 미국은 세금과 써있지 않아서 계산할 때 10%가 붙는구나. 그래서 나는 20달러를 할인 받지 못했고, 세금이 10%붙어서 100달러를 계산해야 했구나.


익숙한 무언가가 있으면 전혀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다 아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미국 유니클로와 한국 유니클로는 브랜드는 같아도 다른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다 아는 듯한 착각으로 나의 편견과 지레짐작으로 구매를 했다. (아니 세일한 옷을 색깔과 사이즈까지 다 꼼꼼히 알아보고 샀다며 역시 나는 유니클로 전문자 잘쇼핑했다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어디 유니클로 뿐이랴. 한국에서 내가 겪는 일들이 다 이런 일들이 아닐까.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비슷한 성장배경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나를 대하고, 나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사람들을 대했다. 나 자신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한국사람, 지역사람, 성별, 세대라는 허상과 편견으로 대한다며 서로가 서운하거나 어쩔 때는 편견보다 더 편견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왜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걸까. 계산 할 때 잘 보는 습관이 있었다면 늦기 전에 20달러 할인하는 색으로 바꿔 올 수 있었을 텐데. 한국사람으로 보여도 편리하게 비슷할 거라 짐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더 집중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에 구입한 자켓의 색깔은 20달러를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알았다면 똥색 자켓이라도 감사하며 브라운 색상을 골랐겠지. 20달러나 비싼 베이지색 자켓이 안타깝게도 옷장에 당당히 자리하게 되었다. 앞으로 30년 동안 함께 하자. 또 실수를 하겠지만 또 잊어버리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30년동안 무언가를 결제 할 때 결제금액을 확인하라고 베이지색 자켓이 경종을 울려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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