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ESI Jun 01. 2022

예민한 사람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나요?

 취미로 주역을 공부하는 분께서 내 관상을 봐주신 적이 있다.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하는 말,


 “너 인복이 없는 편이구나?”


 그의 말에 따르면, 광대는 얼굴에서 산을 의미하는데 내 광대는 히말라야 산이라고 했다. -나는 광대가 큰 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에 오르지 않지만, 간혹 그 산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나를 시험하거나 건드는 사람들이 인생에 계속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궁금한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인복이 없는 편이긴 했다. 정확히는 이상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할까? 지금이야 살다 보면 또라이 한 둘 쯤 만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냐며 개의치 않겠지만, 어렸을 땐 그러지 못했다. 막상 겪어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거든.


 하필 성격도 예민해 지나가는 말도 쉬이 넘기질 못했다. 그러니 버틸 수 있으랴.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매일같이 울었다. 오죽하면 지인들이 먼저 너는 혼자 일하는 게 낫지 않겠냐, 사회생활 못해서 어떡하냐며 걱정할 정도였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사회생활과 맞지 않았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나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암 그렇고 말고.


“아무래도 나는 혼자 사는 게 맞는 것 같아.”


 다짐하듯 말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너는 항상 사람한테 과몰입하는 것 같아서 신기해.” 


 이게 무슨 말이지? 친구가 말하길,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성격이 무뎌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잘 기억나질 않고, 심각한 수준이 아니면 그냥 지나친다고 했다. 굳이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며.




 너무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살면 정말 편할 것 같았지만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예민하고, -부정적인 쪽으로- 기억력이 좋으니까. 그 모든 것을 잊고 사는 건 불가능했다.


 ‘이건 타고난 거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데에 이르렀다. 나만의 공간에 숨어들어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편했다. 상처받을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건 삶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평생 이렇게는 살 수 없어. 나는 상담을 받으러 갔다.




 “선생님 저는요, 누굴 만나고 나면 그날 밤에 제가 한 말을 다시 복기해요. 혹여 제가 잘못 말하진 않았나 싶어서요. 그리고 누가 지나가듯 하는 말에도 불안해요. 혹시 나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닐까 걱정돼요.”


 “그렇게 살면 너무 힘들지 않나요?”


 “맞아요. 저 너무 힘들어요.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요.”


 선생님께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잊으세요. 무조건 잊으세요.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의미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기억해서 혼자 상처받고 힘들어하면 본인 손해잖아요?”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자신의 뇌의 10%도 못 쓴다고 한다. 즉,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은 대부분 무의식적이다.


 어떤 사람이 미간을 찡그렸을 때,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어쩌면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거나 몸이 불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자신이 미간을 찡그렸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내가 그렇다.- 이런 심리를 '자의식 과잉'이라고 한다.


 자신이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고 관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중심이고 삶의 주인이지만, 사실 우리가 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 대단하고 중요한 존재라고 인식한 나머지,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자의식 과잉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내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세상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을 당할까 무섭다는 이유로 피하기만 한다면, 좋은 일도 마주할 수 없다.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묻는 내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어쩌면 처음부터 사람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겪은 안 좋은 경험들이 쌓여 '사람을 만나는 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 수 있어요. 그러니 좋은 관계에 대한 경험을 많이 쌓으세요. 그러면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그 뒤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고, 일기에 쓰지도 않았다. 간혹 속상한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털어버렸다.


 대신 좋은 기억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나가듯 흘린 말도 놓치지 않았다. 예의상 한 말이어도 어떠한가, 그런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작은 호의들을 하나씩 모아 힘들 때마다 그것들을 다시 읽곤 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아. 그러니 안 맞는 사람 한 명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자.’




 내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일부러 피했다.


 ‘나는 저런 나쁜 말을 들을 깜냥이 못 돼. 저 말을 듣고 힘들어할 바엔 차라리 피할래.’


 그들을 피하면 내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예상과는 달리 안 만나도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더 편하고 즐거웠다. 내게 쏟아지는 비난들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고치려 했던 과거의 내가 어리석었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굳이 나와 안 맞는 사람들을 만나며 스트레스받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노력들이 별 의미가 없어 보였으나 달이 넘고, 해가 넘자 좋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말 뿐인 문장이 현실로 다가왔다. 나중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다.




 지금 나는 많이 밝아졌다. 주위에서 긍정적인 말을 많이 들으면서 나 또한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말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낯설 정도로, 나는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안전 기지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의 힘을 키우길 바란다. 그 작은 힘이 사회에서 당신을 지켜주는 무기가 될 것이다.

이전 10화 나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