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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Jul 27. 2022

나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기

“야, 나 어젯밤에 너 봤다.”

“진짜? 근데 왜 나는 너 못 봤지?”

“그야 네가 엄청 빨리 달려갔으니까. 왜 그렇게 달리는 거야, 큭큭.”


 밤마다 도시를 달리는 소녀가 있었다. 어찌나 빠르게 달리는지 ‘지나가다 마주쳤는데 너무 빨리 달리길래 인사도 못했다’는 얘길 자주 듣곤 했다. 소녀는 밤 10시에 학원이 끝나면 1 시간 거리의 집까지 전력 질주했다. 소녀의 엄마는 위험하니 제발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소녀는 엄마 몰래 열심히 뛰어다녔다.


 어디 대회라도 나가는 걸까? 밤마다 쏜살같이 달리는 소녀가 궁금했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뛰어다니냐고 물었다. 그럴 때면 소녀는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요.’ 라며 어물쩍 답을 넘겼다.


 한밤의 명물, 아니 괴담이었던 '어둠을 달리는 소녀'는 수능을 끝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소녀는 다시는 달리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 누워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있기 싫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들 예상했겠지만, 이 괴담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다. 고3, 모든 게 답답한 나이였다. 하루 종일 한 공간에 갇혀서 엉덩이 한 번을 떼질 못하니 미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매일 밤 달렸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차오른 숨을 한 번에 몰아쉴 때면 내가 짊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열게 뛰고 나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용기가 생겼다. 그땐 그게 뭔지 몰랐다. 그냥 달리고 싶었고, 달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했을 뿐.


 나의 질주본능은 대입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간혹 시험기간이 되면 학교 언덕배기를 미친 듯이 달리긴 했으나, 밤마다 달리던 때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에 가면 의사는 항상 똑같은 질문을 한다.


 "밥은 제 때 먹었나요? 잠은 제때 자나요? 하루에 30분 이상 햇빛을 쬐나요?"


 정신과 계의 국룰이랄까. 환자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병원을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만난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늘 똑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기 위해 매주 병원에 가야 하는 건가, 회의감이 들 정도로. 그날도 그랬다. 의사는 내게 어느 때와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항상 똑같죠, 뭐. 아시잖아요."


 나의 대답에서 무언가를 느낀 걸까? 그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음이 움직이길 기다리다가 계속 그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어요.”


 할 수 있다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점차 변할 거라며 용기를 주던 평소와는 달랐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정신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체력이 다했을 때 정신의 힘을 끌어다 쓰는 거예요. 다시 말해, 정신이 지쳐있을 때는 몸이 정신을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움직이세요. 생각하지 말고 일단 움직이세요. 몸을 먼저 움직이다 보면 정신은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안경 너머 주름진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평소와 다른 의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의사가 한 말이니 치료의 일환이라 생각해 따랐을 뿐. 아침마다 이불 정리를 하고, 30분씩 걷는 게 그 시작이었다.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나는 더욱 몸을 움직였다. 공원도 자주 걷고 운동도 배우면서 더 활동적으로 변하였다. 운동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주위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나도 함께 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즈음에 아래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 그제야 의사가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위는 웹툰 '미생'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 무릎을 탁… 치진 않았고 그에 준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체력을 길러야 하는구나!”


 그전부터 나는 친구들을 붙잡고 투덜거리곤 했다. 나는 내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억제하는 데 쓰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 그것만 안 해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그 불만에 대한 답이 찾은 거다. 운동을 해라!




 운동의 중요성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제기되어 왔다. 광기(?) 어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10km씩 달린다고 한다. -그의 손목보다 무릎이 더 걱정되는 대목이다- 그는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를 낼 만큼 러닝을 사랑하는데, 운동을 통해 체력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체력과 정신력이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불 정리를 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상통한다. 침대에 누워 눈만 끔뻑이며 ‘오늘 뭘 해야 하지?’를 생각하다 보면 다시 잠들기 일쑤다. 그러지 말고 일단 일어나 움직이는 거다. 이불을 정리하며 몸을 한 번 깨운 뒤 천천히 생각하는 거지.





 

 나는 다시 달리고 있다. 다행히(?) 어둠을 달리진 않고, 적당히 밝은 시간에 안전하게 달린다. 왜 다시 달리냐고? 일주일만 달리지 않아도 몸이 찌뿌둥 해지는 것을 느낀다. 더 심각한 건 기분이 다운된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몰려오고 모든 것이 싫어지려 한다. 그때 밖으로 나가 달리면 마법처럼 기분이 상쾌해진다.


 나를 괴롭히는 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달려보는 건 어떨까? 있는 힘껏 발을 내디뎌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모든 근심과 각정으로부터 벗어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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