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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Apr 13. 2022

무음도 음악이 될 수 있을까?

공백이라는 이름의 음악

내 삶에 공백이 늘어난다. 이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아니, 나는 벗어나고 싶긴 한 건가.
 -21. 1. 23. 일기




 1952년 8월, 뉴욕의 한 공연장에 긴장감이 맴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음악계의 슈퍼스타라 불리는 아방가르드 작곡가의 새 작품이 공개될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음악으로 우릴 놀라게 할까?’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이 시작되고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관객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무대에 집중했다.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반주자가 의자에 앉아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공연장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제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앉아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지? 무대사고인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미동도 하지 않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다. 정확히 4분 33초가 흐른 후, 데이비드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무대를 내려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사람들은 황당해했지만 그는 악보에 적힌 대로 연주했을 뿐이다. 악보에는 단 하나의 기호만 적혀있었다. TACET, 연주하지 말고 쉬어라.






 그날 공연은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 초연이었다.


 






 존 케이지의 대표작 ‘4분 33초’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 그냥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전부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 곡이 발매되기 1년 전, 존 케이지는 세상에서 가장 정적인 공간을 찾아다녔다. 그는 공간 안의 모든 소리를 흡수하도록 설계된 하버드 대학 녹음실이야 말로 가장 정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해,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하버드대 녹음실에서조차 알 수 없는 반복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의아해하는 존 케이지에게 엔지니어가 말했다.


 “높은 소리는 당신의 신경체계가 작동하는 소리고, 낮은 소리는 당신의 피가 순환하고 있는 소리예요.”


 그 이야기를 들은 존 케이지는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정적인 공간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4분 33초를 작곡했다.







 그는 자신의 곡 4분 33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 소리는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음악의 미래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정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바로 <4분 33초>라는 곡을 만들게 했습니다.








 자, 지금부터 '4분 33초'를 연주해보자.


 조용한 공간으로 가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에 집중해보자.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겠지만, 점점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부드러운 바람 소리, 쌔근쌔근한 숨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수돗물 소리까지. 온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차있다. 그렇다. 음악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다.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삶에 공백이 있기 마련이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인간관계가 모두 단절되거나, 사회로부터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나? 혹시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롭히고 있진 않은가?






 한국 사회에는 공백이 없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학교에 가고,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다.


 그 일련의 과정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빽빽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잠깐이라도 쉬면 삶이 멈추는 것 마냥.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제 삶의 공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낙오자 또는 패배자라고 규정해버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20대에 내 삶에 커다란 공백이 생겨버렸다. 난생처음 마주한 공백이었고 실패였다.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부단히 외면했다.


 내가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내 안의 공백은 더 커져만 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버려졌다고 생각한 시간도 분명 삶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빽빽하진 않지만, 서류에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분명 내 삶이었다.






 나는 삶에 공백이 생겨버린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공백을 채우지 못해 급급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때는 내 삶에 공백이 생겼다는 사실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4분 33초의 정적에도 음악은 계속되듯이 삶의 공백에도 인생은 계속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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