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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Jun 22. 2022

당신의 인생 첫 문장은 무엇인가요?

나는 오늘 살기로 결심했다


 ‘유퀴즈온더블럭’에 -내 글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김영하 작가가 출연했다. 이날 유퀴즈의 공통질문은 ‘당신의 인생을 책으로 쓴다면, 그 첫 문장은 무엇인가?’였다. 김영하 작가는 그 명성에 걸맞게 아주 멋있는 문장을 말했다.


 흥미로운 질문이었기에 방송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우리의 인생 첫 문장을 뭐라고 할지 열심히 정했다. 나는 ‘나는 오늘 살기로 결심했다’라고 쓰겠다고 말했다.








 지난 세월 내가 가장 자주 한 말을 꼽으면 그중에는 분명 ‘살기 싫다’가 들어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어린 날의 치기였을 수도 있고 삶의 재미를 찾지 못한 이의 푸념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살기 싫었고, 조금 더 나아가 일찍 죽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절한 천재에 대한 동경심에 그런 마음을 품은 것 같다. 물론 그런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타고난 기질이나 예민한 감각, 심약한 정신상태 때문이었을지도.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결론을 확실했다.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 당시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게 매료되었다.


 그중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수메르 인의 인간관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던 수메르 인들은 삶은 죽을 때까지 고통받으며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많았던 만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삶이 곧 고통이라고 믿었다.




 옛날 사람들뿐일까, 현대인들도 삶이라는 고통 속을 헤매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다미 선교회 휴거 사건을 다룬 적이 있다. 다미 선교회 휴거 사건이란 종말론을 설파하며 공포를 조장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사건이다. 정작 그 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행복했다고 고백하는데,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다 같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고 한다.


 이게 맞나 싶지만, 이 또한 삶이 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리라.




 이외에도 사는 게 힘들어 투덜거린 위인들을 나는 몇은 더 댈 수 있다. 인류가 아직까지 존속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지 않아 했다.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 사는 게 고통스럽다고 했다고! 삶은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거고 그러니 내가 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거야.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딜레마를 마주한다.


 “나 지금까지 죽으려고만 생각했지, 한 번도 살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든지 일단 반박하고 보는 나의 청개구리 심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추측할 뿐. 다만 어느 날 이 질문이 떠올랐고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적은 없었다. 목적 없는 노력과 목적의 차이랄까.


 그 간극을 깨달았을 때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이 뒤집히고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걸 직접 목도한 기분? 또 한편으론 당연한 것이었다.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나는 생각했다. "정말 죽고자 한다면, 한 번쯤은 제대로 살아보고 죽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다. 나는 그때부터 죽기 위해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맘 다 잡고 새로 살아보려고 했더니, 제대로 사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죽을 용기로 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전부 틀렸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어렵더라.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태어난 김에 살게 된 거지, 살고자 해서 산 건 아니었다. 한 번 의문을 품자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잘 산다는 것은 뭐지? 제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난생 처음 마주한 질문 앞에 나는 맥을 추리지 못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책에서 첫 문장은 정말 중요하다. 어떤 문장은 그 자체로 책을 상징하기도 한다. 모비딕의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처럼. 한편,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와 같이 세상을 관통하는 문장도 있다.


 내 인생을 대표하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주는 한 문장. 그것이 바로 인생의 첫 문장이다.




 모 작가는 작품을 다 쓰고 나서야 첫 문장을 정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만큼 첫 문장이 가지는 무게감이 크다는 뜻이리라.


 나라는 책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정한 인생의 첫 문장이 떡밥으로 끝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결말을 향해 달려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인생을 대표하는 첫 문장은 무엇인가?

 아니, 어떤 문장으로 대표되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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