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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Aug 17. 2022

모든 이야기는 종결해야 한다, 좋든 싫든.

*본고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는데 그중 ‘미결(未結)’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서래(탕웨이 분)는 해준(박해일 분)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미결’을 택한다.


 흔히 망각은 인간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잊히지 않는 것은 신이 내린 형벌인 걸까. 서래는 해준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그 형벌 속으로 들어갔다. 관계의 ‘미결’로 영화는 ‘종결’을 맞이한다.




 나는 본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플랫폼에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주제에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하겠냐만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왜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내성적이어서라고 했고, 누군가는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는 오늘 ‘종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래 일기로부터 시작한다.


오늘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내가 모든 걸 용서하지 못했다는 것,
두 번째는 내 이야기를 끝내기 전까지는 그 어떤 이야기도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마지막은 사실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19. 9. 27. 일기


 내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끝내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물었는데, 나는 그 점이 항상 불만스러웠다.


 ‘선생님은 왜 자꾸 똑같은 걸 물어보시지?’


 ‘왜 자꾸 힘든 이야기를 꺼내게 하지?’


 나는 빨리 문제를 해결해 정상적으로 살고 싶은데, 왜 자꾸 변죽 잡는 이야기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나는 늘 그랬듯이 모든 게 빨리 끝나길 바랐다.






상담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때로는 트라우마를 끊어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을 위해서요.”


“어떻게 끊어내야 하는데요?”


“말하세요. 전부 다.”


“지금도 말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말한다고요.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요.

그리고 저도 그만 말하고 싶어요. 지긋지긋해요. 그만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힘들단 거 알아요. 그래도 해야 해요.

벗어나기 위해서는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야 해요.”


“뭘요?”


“전부 다.”






 선문답 같은 대화가 나는 참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상담사의 말처럼 괜찮을 법한 사람을 찾아서 대뜸 이야기를 꺼내는 일을 반복하곤 하였다. 커피를 마시다, 햄버거를 먹다, 두서없이 내뱉곤 하였다. 상대방의 반응보다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계속 말하다 보면 언젠간 끝나겠지.’라는 마음으로.




 놀랍게도 처음 말할 때보다 두 번째가 편했고, 세 번째는 쉬웠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나는 눈물 없이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들을 쉴 새 없이 퍼내자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끝이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이쯤에서 이 이야기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알렉산더는 고르디우스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냈다. 물론 자력으로 풀어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는 차선을 택해 결론에 도달했고 선언했다. 자신이 아시아를 제패할 거라고. 일종의 종결에 도달한 셈이다.






 나 역시 내 안의 문제들을 끊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나의 목표는 내 안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종결시키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건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완벽한 해결에 집착하는 순간, 나는 이 문제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떤 흉터는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기 마련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냥 생각하지 말자.’


 의식적으로 생각하기를 멈췄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오늘만 생각했다. 나는 오늘을 살기도 힘들었던 사람이니까, 오늘만 그럴듯하게 살아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앞으로 뭐하고 살 거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답했다.


 “어떻게든 되겠죠.” 웃고 말았다.


 나를 한심하게 보는 눈빛들에게 말없이 대꾸했다.


 “내가 살아있으면 된 거지 뭘 더 바라.”






 그래도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날들이 있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기에 놀랍진 않았다. 그냥 받아들였다. 나의 예민함과 감수성을 트집 잡아 휘두르던 사람들에게 직접 말했다.


 “맞아, 나 예민하고 감정적이야. 그러니까 네가 날 배려해. 너에게 날 맞추지 말고.”






 바꿀 수 없는 문제로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았다.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원인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과거, 나는 내 안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는 비슷한 아픔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완벽하게 해결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문제에 매몰시켰다.


 어떤 문제는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재발하기도 한다. 그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삶에 순서가 있진 않지만 일종의 ‘종결’은 있다고 본다. 한 때는 내 삶이 장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가 미래에 영향을 주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삶은 여러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어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끝나지만, 어떤 이야기는  스스로 끝내야 할 때도 있다.


 때론 찝찝하고 억울해도 이야기는 끝나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고르디움 신전에 자신의 수레를 매듭지어 묶은 뒤 예언을 남긴다.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할 것이다.” 전국에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매듭을 풀어보려 했지만, 매듭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아시아 정복을 하던 알렉산 대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대해 듣게 된다. 매듭을 유심히 살펴보던 알렉산더 대왕은 칼로 매듭을 끊어버린다. 그리고 선언한다. “나는 아시아를 제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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