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ESI Aug 24. 2022

공백이라는 이름의 시차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조차 소리는 존재한다. 소리가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텅 빈 삶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어 보여도 그 안은 분명 무언가 존재할 것이다.
- 공백이라는 이름의 음악


 자칫 오만해보일 수 있는 용기로 글을 썼다.




 고백하자면, 첫 글을 썼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알아서 쓴 글이 아니라 일종의 다짐 내지는 선전포고에 불과했다. 남들이 보기엔 허송세월이겠지만 분명 내 삶은 가득 차있다는.


 걱정도 많았다. 이 이야기로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젠 안다. 내 삶은 18편의 글을 써도 모자랄 만큼 풍성했다.

 







 1만 시간은 나 혼자만의 투쟁이었다. 삶에 대한 회의, 이유, 존재, 원인, 감정,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그 모든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내 마음 속의 지하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아직도 나는 내 마음 속에 맺힌 것이 무엇인지 전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딱 하나,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내 마음속에 맺힌 건 ‘나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이었다. 나는 왜 나에게 실망했을까? 원망과 증오, 부끄러움, 쪽팔림, 실망.


 나를 괴롭히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벗겨내니 남은 건 이 생에 대한 애정뿐이었다. 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그걸 저버린 나.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잘 살고 싶은데 그럴 여력이 안돼서. 그래서 나는 이 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걸로 답은 충분했다.

 나는 살고 싶어,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완벽주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완벽주의는 100%를 구현하는 사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80%만 해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도 완벽주의다.


 왜냐고? 80%을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로 간주하니까. 중요한 건 수치가 아니라, 결과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거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


 ‘인서울만 하면 돼.’


 ‘집 한 채만 있으면 돼’


 ‘월급만 따박따박 나오면 돼.’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업이 아니면 모두 실패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이것들을 이루기 얼마나 힘든지. 그러니 이 사회에 실패자가 많을 수밖에.








 우울증 환자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다. 


 환자로서의 시간과 사회인으로서의 시간. 환자에게는 치료와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시간의 간극은 점점 커진다. 그 시차를 견뎌내는 것은 오로지 환자의 몫이다.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이건 성공일까, 실패일까.




  그 간극 어드메쯤에 나는 서 있다. 사는 것이 모두 그런 것 같다. 잘 사는 것도 못 사는 것도 아닌,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닌.


 우리는 늘 그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시간들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삶은 모순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 생긴 삶의 공백, 아니 시차도 조금은 괜찮게 느껴진다.

이전 16화 모든 이야기는 종결해야 한다, 좋든 싫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