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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Aug 24. 2022

공백이라는 이름의 시차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조차 소리는 존재한다. 소리가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텅 빈 삶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어 보여도 그 안은 분명 무언가 존재할 것이다.
- 공백이라는 이름의 음악


 자칫 오만해보일 수 있는 용기로 글을 썼다.




 고백하자면, 첫 글을 썼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알아서 쓴 글이 아니라 일종의 다짐 내지는 선전포고에 불과했다. 남들이 보기엔 허송세월이겠지만 분명 내 삶은 가득 차있다는.


 걱정도 많았다. 이 이야기로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젠 안다. 내 삶은 18편의 글을 써도 모자랄 만큼 풍성했다.

 







 1만 시간은 나 혼자만의 투쟁이었다. 삶에 대한 회의, 이유, 존재, 원인, 감정,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그 모든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내 마음 속의 지하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아직도 나는 내 마음 속에 맺힌 것이 무엇인지 전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딱 하나,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내 마음속에 맺힌 건 ‘나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이었다. 나는 왜 나에게 실망했을까? 원망과 증오, 부끄러움, 쪽팔림, 실망.


 나를 괴롭히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벗겨내니 남은 건 이 생에 대한 애정뿐이었다. 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그걸 저버린 나.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잘 살고 싶은데 그럴 여력이 안돼서. 그래서 나는 이 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걸로 답은 충분했다.

 나는 살고 싶어,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완벽주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완벽주의는 100%를 구현하는 사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80%만 해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도 완벽주의다.


 왜냐고? 80%을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로 간주하니까. 중요한 건 수치가 아니라, 결과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거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


 ‘인서울만 하면 돼.’


 ‘집 한 채만 있으면 돼’


 ‘월급만 따박따박 나오면 돼.’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업이 아니면 모두 실패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이것들을 이루기 얼마나 힘든지. 그러니 이 사회에 실패자가 많을 수밖에.








 우울증 환자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다. 


 환자로서의 시간과 사회인으로서의 시간. 환자에게는 치료와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시간의 간극은 점점 커진다. 그 시차를 견뎌내는 것은 오로지 환자의 몫이다.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이건 성공일까, 실패일까.




  그 간극 어드메쯤에 나는 서 있다. 사는 것이 모두 그런 것 같다. 잘 사는 것도 못 사는 것도 아닌,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닌.


 우리는 늘 그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시간들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삶은 모순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 생긴 삶의 공백, 아니 시차도 조금은 괜찮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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