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마무리
탈레스부터 신플라톤주의에 이르기까지, 나는 사랑과 연애를 둘러싼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 걸었다. 중세와 근대의 사상은 기회가 된다면 또 다루고자 한다.
이번 여정은 “사랑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인간 내면의 결핍을 들여다보고, 결국에는 보편적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사랑은 정의하려는 순간 그 정의를 빠져나간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신비화하지도, 과학적 호르몬으로 환원하지도 않았다. 윤리로 이상화하는 일도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모호함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았기에, 되도록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사랑의 성격을 드러내고자 했다.
사랑은 혼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물질로 환원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단순한 관계 맺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질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에서 사랑은 비로소 나타난다.
과학은 대상을 고정시키고 외부 변인을 통제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간다. 하지만 사랑은 통제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억지로 사랑하게 만들 수 없고, 사랑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다.
윤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은 존경과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분노와 절망, 슬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혼란과 집착, 광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광기를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사랑은 무엇이라 규정하는 순간, 이미 그것이 아니게 된다.
사랑은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으며, 이것과 저것 모두이거나 이것과 저것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현실을 넘어선 신비로운 초월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이란 거다. 사랑은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언젠가는 겪는 감정이며,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아프며,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랑은 형태를 필요로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가 아니라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규정한 사랑만이 사랑일 수는 없다. 형식 없는 사랑은 공허한 추상에 불과하다.
사랑은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사랑에 대해 다 담지 못했다.
그리스 철학에 국한된 탐구였고, 내가 가진 생각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정은 사랑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을 다시 사유할 수 있어서, 나는 만족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히 사랑을 모른다.
그것은 모든 철학적 사유가 도달하는 아이러니다.
많이 생각할수록 더 알게 되지만, 많이 알수록 더 모르게 된다.
사랑은 이성과 감정, 존재와 부재, 타자성과 자기 동일성 사이를 끊임없이 가로지르는 어떤 것이다.
사랑은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질문도 달라졌다. 그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이해하고 싶어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하고 있다.
글쓰기는 그런 성찰을 언어로 붙잡아두는 일이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한 우리의 질문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도 계속 써내려갈 수밖에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