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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Feb 17. 2024

맞춤법

가끔 초라하고 이상하리 만큼 나 자신이 어두워질 때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 무엇도 그 어떤 것도 붙일 것 없이 순수하게 좋아한 사람. 그때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닌 남들이 다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행처럼 하지만 정작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선택하고 시간이 지나 신호등이 바뀌는 것처럼 감정과, 추억과, 기억이 깜빡깜빡하며 기억은 점점 흩어지고 추억은 파스텔로 덧칠 되고 감정은 농밀해진다. 그러면서 왜인지 숙성된 음식처럼 쾌쾌 묵은 냄새는 나지만 정작 한번 맛을 보면 절대 끊을 수 없는 무언가로 바뀌어 버렸다. 별거였던 게 별거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삶의 무언가에 찌들리거나 인생의 바람에 휘청이거나 할 때면 고단함을 잊어보려고, 버텨보려고, 참아보려고 풍선 같은 쾌락을 좇는다. 밑바진 독에 물을 붓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퍼붓는다. 결국 빵 하고 터져 사라질 기분을 위해 하지만 어쩔수 없다. 그래도 일말에 갈증은 해소되니 하지만 어떨 땐 어찌하더하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그 어떤 것도 소용없이 진창에 빠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방안 구석에 쪼그려 앉아 옛날 스치듯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어떡해서든 기분을 내보려 소주 대신 마트에서 최선인 위스키를 사서 가장 근사한 잔에 따라 홀짝인다. 그렇게 음악에 술에 추적추적 젖다 보면 우연을 가장한 기억에 그 사람과 마주한다. 아무의미 없이 걸었던 기억, 아무 생각 없이 밥 먹었던 기억,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던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던 기억이 떠오른다. 늘 곁에 있었지만 왜면 했다. 다른 사람이 내 옆에서 날 위로할 때도, 혼자 외로이 삮힐때도 그 사람은 기억 얹저리에 어디에나 희미하게 있다. 그러다 어두워지면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짙어진다. 그렇게 잊으려 하지만 잊혀지지 않던 그 사람에게서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쑥 문자가 왔다. 처음은 누구인지 몰랐다. 전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달랑 문자로 “안녕” 이라고만 메시지가 왔으니깐. 답장을 “누구”라고 물으니. “OOO”이라는 세글자의 이름이 폰액정에 떴을 때 심장이 멎을 뻔했다. 아니 빨리 뛰었나 모르겠다 심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감정이라는 것이 여름날에 파도 같기도 겨울날의 바람 같기도 했으니. 이상하고 요상한 감정으로 조심스럽게 그 사람과 문자 메시지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이상했다. 처음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심장이 멎는 듯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얼음장처럼 식어 들어 같다. 그 사람과 만나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으니깐. 이런저런 이야기를 쓸려면 어떤 시리즈물보다 길게 쓸 자신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 속에서 많은 것을 알아 같다. 많은 것들 중 하나를 꼽자면 경계심이다. 경계심이라는 녀석은 양날의 검과 같다. 마음속에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좋으면서 나쁘니깐. 문득 어느 글이 생각이 난다.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피천득의 수필에 한 구절 어쩌면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체, 아니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왜곡된 기억이더라도 점하나로 남이 님이 되는 맘을 품었더라도 스스로를 기만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인체 죽을 날까지 평생을 그 기만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 사람 이름 세 글자를 보았을 때는 당장이라도 맨발로 뛰쳐나가 만나고 싶었지만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 듯 만나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정작 만나고 나서 아니 만나야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까 봐. 잘 그려진 피카소 그림옆에 퓰리쳐상을 받은 사진을 걸어 놓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문자내용들이 애매모호하게 겉돌았다. 그러다 예고 없이 먼저 그 사람이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심장이 철렁한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는 감정 때문에 그래도 만나기로 했다. 내심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건 사실이니깐 어영부영 시간을 약속을 잡고 예전에 시간을 죽이러 자주 가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카페에 만나기로 했다. 조금만 더 어렸을 때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집을 나오기 전 거울을 보면서 잠시... 했다. 그때에 비해 살도 찌고 얼굴에 턱선은 사라지고 눈은 힘든 노동자라는 것을 튀네듯 빨갛게 충혈되었다. 얼굴은 술독에 올라 발갛게 달아올랐다.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거울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괜히 거울을 보는 바람에 만나기 전부터 기분이 그렇게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자존감의 밑바닥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있을 때 조금은 변했지만 그대로인 그 사람이 상냥하게 웃으며 나에게 오며 인사를 한다. 언급하고 싶지 않은 말을 그 사람이 먼저 말했다. 어른이 다됐다는 말 결국은 얼굴이 삮았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사람은 세월이 조금 비켜가줬나 보다. 정통으로 맞은 나보다는 몇 년은 젊어 보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잘 가꾼 숲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분위기를 지녔다. 그렇게 겉치레 인사 후 커피를 시켜놓고 커피를 몇 목음을 홀짝이는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로의 눈을 보기만 했다. 눈 맞춤 손짓 분위속에 흐르는 공기만으로도 소리 내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렇게 시끄러운 적막함 속에서 커피를 다 마실 때쯤 그 사람이 먼저 입술을 땠다. “잘 지내는 이야기는 들었고, 뭐 하는 지도 알고... 풋~ 만나며 엄청 수다 떨 것 같았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할 말이 없네”..... 그래서 불편해라고 질문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더 불편하게 만 들것 같아 물어보지 못하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입술을 다시땟다 “여전히 맞춤법을 많이 틀리더라 풋~ 처음에는 너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했는데 문자메시지에서 늘 틀리는 맞춤법 보고 너라는 걸 확신했잖아 풋~” 속으로 난감했다. 밖으로는 소리 내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끄응하고 앓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래” 만날 때도 내가 맞춤법을 틀리 때면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 웃긴 건 그 많은 구박을 받는데도 고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받아쓰기라면 정말이지 치를 떨고 싫어했던 기억이 났다. 잡동산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다시 그 사람이 입술을 땠다 “예전에는 네가 맞춤법을 틀리면 정말이지 한심하게 느껴졌거든 그런데 밖에 나와 이 사람 저 사람을 수없이 만나면서 알았지 뭐야~ 내가 알고 있던 맞춤법이 다 맞는 게 아니였 다라는 거, 난 정말 하나도 안 틀리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틀리거나 다른 게 있더라. 가끔은 그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한소리 들을 때도 있었어 그럴 때면 내가 너한테 잔소리하면 네가 나한테 하던 말 있지 그게 생각이나 그 이야기를 나도 하고 있지 뭐야 풋~” 내가 했던 말? 무논리에 아무 때나 생각이 나는 데로 이야기했기에 생각이 안 난다. 내가 무슨 소리를 했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먼저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막 잔소리를 하면 네가 세종대왕님은 그러라고 한글을 만든게 아니다라며 그렇게 맞춤법 따질 거면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대로 써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랬잖아” 맞다 그때 한참 세종대왕님이 글씨를 창제하는 소재로 만든 드라마를 봤었다. 그게 생각이나 어는날 또 맞춤법으로 머라 하기에 드라마가 생각이 나서 생각나는 대로 말했던 기억이 났다. 나조차 기억을 못 하는 것을 기억한다. 자기 말에 몇 안되게 따졌던 기억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도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또다시 정막 해진 공간을 커피 향과 주위사람들의 말소리가 채우고 있을 때 정작 질문해야 했던 것을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문자메시지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모래알처럼 느껴져 묻지 않았던 질문 이 질문을 답을 듣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경계심이었는데 가장 먼저 물어봤어야 했던 질문이었는데 망설이고 망설이다 물었다. “왜... 왜 연락하게 된 거야?” 조용했다. 내 눈을 잠시 마주치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찻잔을 꼼지락거리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그냥 해봤어” 나도 모르게 녹음된 테입을 다시 재생하듣 그 사람의 말을 따라 말했다. “그냥...” 많은 것들이 내 안에서 스쳐 지나갔다. 어떠한 감정과 기억이 계속 날 흔들었다. 다시 그 사람이 말을 했다. “생각이 났어. 사실 최근에 조금 그랬는데 이상하게 너 생각이 나더라.... 난 항상 정답을 찾는 사람이었는데... 넌 항상 매번 뭘 계속 틀려도 늘 그런값다 그려녀니 하는 네 모습이 싫었거든 근데 요즘 들어 그런 너의 모습이 생각이 나더라... 뭔가 어떤 식으로 힘이 나고 싶었나 봐” 그 사람의 말에 잠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향이 낱다. 오래전 나조차도 잊어버린 나의 모습을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비록 멋지고 좋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이 드는 관계라는 것을 맺는 것 같다. “가끔... 아니 자주 나도 생각했어 백색소음처럼만 느껴지던 너의 잔소리가 뼈 앞은 말이었다는 걸 요즘 들어 느끼고 있었거든 그때는 왜 좋은 노래를 듣는 것처럼만 느껴졌던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 시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계절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날씨가 날짜가 장소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현재라는 감각이 사라지곤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누군가와의 대화에 ‘무아지경’ 느끼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날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공간을 채우는 존재로 이 사람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는데 그때 왜 다른 길을 가기로 선택한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심결에 나도 모르게 이 질문이 입으로 세어 나왔다. “우리는 왜 다른 길을 간 걸까?” 무심결에 한 나의 질문에 그 사람은 창사이로 비치는 먼발치를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무언가 갈무리를 했는지 입술을 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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